오늘이라는 선물에 대해서
삶은 강합니다.
생은 질깁니다.
몇몇 사람은 삶을 끝내기 위해, 생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지만 죽지 못하고 다시 살아나 이어갑니다. 매일 밤 잠들 때마다, 눈을 감으며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없는 이들이 기도하지만 그래도 삶은 끈질기게 이어집니다. 원하지 않은 선물 같은 하루를 죽지 못해서 억지로, 못 이긴 척 살아내고 나면 똑같은 일이 또 반복이 됩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생명을 주관하는 누군가가 손에 억지로 또 다른 하루를 쥐어줍니다. 그런 걸 보면 정말 누군가의 삶이란 굉장히 강하고 질긴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 삶은 약합니다.
생은 쉽게 끊어집니다.
당연히 내일이 오리라고 생각하며 잠든 누군가, 내일에 이룰 일을 한가득 적어둔 누군가는 그다음 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아니, 내일이 오기도 전에 그는 어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습니다. 이루지 못한 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그 사람은 운명의 장난에 대해서 항의 한 번도 해보지 못하고 찰나의 순간에 생을 마감합니다. 그럼 마치 생명을 주관하는 누군가가 그들의 손에서 소중한 생명을 약탈하듯이 빼앗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게 허망하게 누군가가 예기치 못한 채 삶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 마음속에서 절로 허한 마음이 듭니다. 너무나도 쉽게 거둬지는 누군가의 삶을 보며, 내게 주어진 오늘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다가올 내일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겸손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죽지 않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운동하고, 건강한 음식만 골라먹으며 우리를 스쳐 지나가려고 하는 젊음을 유지하려고 하고 또 나날이 발전하는 의학으로 생을 연장하기 위해서 최대한으로 도움을 받습니다. 또 편한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애를 씁니다. 편리하지만 위험한 사고를 유발하는 기계들을 이용하면서 우리는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 안전을 최대한으로 신경 씁니다.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서 말이죠.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 생이 끝나면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고 말 거라는 생각에 우리는 삶의 끈을 최대한 꼭 잡고 있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해 꽉 잡아도, 운명이라는 피할 수 없는 힘이 우리의 손을 한대 쳐버리면 우리는 그 끈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그 운명이라는 불가항력이 우리의 손에 삶을 억지로 쥐어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요.
가까운 지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한순간, 젊은 나이에 사고로 져버렸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죽음. 허망한 죽음입니다. 아름다우시고 외모와 걸맞게 선한 일을 하던 그분은 너무나도 어이없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누구보다 건강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데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멋진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순간의 사고로 인해서 그분은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인간의 삶이 이토록 약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너무나도 대단한 것처럼 보이던 삶이 운명의 힘에 의해서 이토록 쉽게 바스러집니다.
그에 비해 게으르고,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나는 이렇게 떳떳이 오늘을 맞이했습니다.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습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부터 느껴지는 무거운 공기.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는 수많은 다른 장례식장을 지나며 오늘도 이 세상에 숨이 멎는 이들이 이렇게 많았구나,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장례식 장 벽에 화려한 문구와 장식으로 꾸며진 화환들을 지나면서, 저것들이 유족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겠지만 고인이 된 이에게는 무슨 의미가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비관적인 생각이라고 느낄 수도 있지만요.
슬픔이 묵직하게 깃든 내 마음이, 검은 상복을 입은 유족들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 없이 무겁게 변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눈물이 되어 흘러넘쳤습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릅니다. 힘이 빠진 유족들의 얼굴을 보고, 유족도 아닌 내가 도가 지나칠 정도로 눈물을 흘리지 말자라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은 고인이 된 이의 영정사진과 유족들의 얼굴을 보니 와르르 무너집니다.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유족이 아닌 주제에 이렇게 눈물 흘릴 자격이 있는 것인지.
젊은 나이에 먼저 떠나버린 그가 야속하고,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이 안타까워서. 그리고 아무런 이유 없이 생명이 끊어진 고인과 아무런 이유 없이 생명이 이어지고 있는 내 삶이 허망하고, 오늘을 이어갈 수 있는 운명의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어쩔 줄 몰라서. 그래서 장례식 장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허망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끊어진 삶에.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이어지고 있는 삶에. 누가 이런 것을 결정하는지. 누가 됐든지, 그가 야속합니다.
하지만 고인이 가지지 못한 내일을 선물 받은 나는,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원했지만 받아내지 못한 오늘을 받았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착실하게 살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차라리 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죽었다면 이 세상에 도움이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이 세상을 떠났고, 반대로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오늘을 살게 됐기에 아무리 슬퍼도, 삶의 무게가 버거워도 살아 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깁니다. 평소에는 물 흐르듯 살리라, 생각했던 오늘 하루가 감사해야 하는 부분으로 다가옵니다.
오늘로 이어진 내 삶은 참으로 질기다고 생각이 됩니다. 누군가 쉽게 끊을 수 없는 정도로 강한 것. 어제로 끊어진 그 사람의 삶은 참으로 약하디 약하게 느껴집니다. 한순간에 와장창 깨져버리는 연약한 유리구슬과 같은 것.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삶을 어떻게 살아냈느냐에 대한 것으로 결정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악한 사람들이 숨 쉬고 있고,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참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선물 받았습니다. 오늘이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지, 우리는 전혀 모릅니다. 오늘이 몇 시간뿐이 남지 않았을 수도 있고, 몇 분밖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50년이 넘는, 무병장수의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아니, 죽기 직전까지도 잃게 될 줄 몰랐던 오늘은 그냥 무의미하게 보내기에는 조금 아까운 것이라는 것이죠.
죽지 못해 살아가는 나의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이에게 간절한 마음을 다해서 선물해 주고 싶은 것이라는 것. 우리는 기억해야만 합니다.
당연히 이어지는 오늘을 보며, 수많은 오늘이 찾아오는 것을 보며 우리는 무감각해질 수도 있지만 억지로라도 다시 한번 이날의 감사함을 되새겨 봐야 합니다. 비록 오늘이 억지로 우리 손에 쥐어졌다 할지라도, 원치 않았음에도 불청객처럼 불쑥 찾아왔다 할지라도 우리는 억지로라도 감사의 마음을 가지려 노력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선물은 선물이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절대 갈 수 없는, 그렇게 나에게만 오롯이 찾아와 준 선물입니다.
누군가가 받지 못한 선물을 받은 나. 거부할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는 선물을 받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빛내 봐야겠습니다. 누군가의 삶의 기회를 빼앗아서, 누군가의 생명을 빨아먹으며 기생충처럼 살아가는 게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찾아가지 못한 오늘이라는 기회를 잡은 나는 오늘을 최대한으로 살아봐야겠습니다. 오늘이 찾아왔다는 게 결코 슬픈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한 게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하며 살아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