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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끗 Mar 28. 2023

나이가 들수록 충고를 들을 일이 적어진다

만 서른의 나이.

이쯤 되니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적정 선을 지킨다.

선을 넘거나 무례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고, 동시에 그만큼 그 선을 넘어 가까워지는 게 어려워진 나이.

하하 호호, 하며 모두 본인의 선을 표현하며 타인을 향해 적정 예의를 지키지만 속으로 안 맞는다 판단이 되면 가차 없이 관계가 정리되고 더 높은 선을 긋는다.


예전에는 솔직함이 무기라고 생각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며 충고를 아끼지 않고, 그들이 좋은 길로만 가기를 바랐는데 이제 나는 별로 솔직하지도 또 그들이 그들 나름의 길을 가고 스스로를 책임지도록 지켜보기만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성인이 된 다른 사람에게 충고를 하는 행위조차 무례하고 선 넘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 대해 조금 무책임해졌고, 동시에 그들에게 부리는 오지랖이 줄었다.


내가 이렇게 관계를 대하며 뜨거운 데서 뜨뜻미지근하고 무심하게 변했듯, 마찬가지로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심경의 변화를 겪고 있는 듯하다.

죽고 못살듯, 영원히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친구들에게도 조심스러워진다.

그리고 그들도 내게 조심스럽다.

아마도 나와 너를 포함한 환경과 여러 가지의 요소가 변해온 탓에 이 관계가 언제든 한 사람에게라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거슬리기 시작하면 끊어질 수 있다는 걸 알아서일까?

나는 매우 조심스러워졌고, 동시에 한결 비밀스러워졌다.

속마음과 솔직함은 접어둬야 이러한 관계 속에서는 내게 유리하다.


비슷하게 나를 대하는 사람들도 변했다.

그들도 내게 더 이상 충고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어떤 선택을 하거나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으면, 주변 사람들이 핀잔을 주거나 장난을 치듯이 내게 무어라 했을 법도한데, 이제는 나 스스로 그런 걸 알아차리고 제한해야만 한다.

아니면 침묵의 연 끊음이나 외면으로 쓰디쓴 결과를 대하며 나 스스로 깨달아야만 한다.

이 막연함에 답답하고 억울한 순간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내게도 누군가에게 감히 충고할 만한 배짱도, 안 맞는 사람과의 인연을 억지로 이어갈 만한 여력도 남아있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배우자, 자녀, 직장, 그리고 딸려오는 여러 가지 사회적 책임들로 인해 소진될 대로 소진된 에너지를 단지 이 관계를 위해서만 억지로 끌어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서 내게 아무 말 없이 상냥하게 웃는 낯으로 선을 그어야만 했던 그들이 동시에 이해가 된다.

그리고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속마음을 숨긴 채 나를 대해야만 했던, 그리고 대하는 그들도.

그리고 비슷하게 행동하는 나도.


나를 향한 너무 주관적인 의견은 피곤하지만, 인생에 값진 충고가 없으니 나는 더더욱 도태되고 굳어지는 느낌이 든다.

나름의 유연성도 사라지고 점점 더 내가 옳다고, 나의 방식만 옳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만 같다.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한 사람들과 편한 환경들만 찾아다니는 내 모습과 편한 사람들에게만 받아들여지는 내 모습에 이게 맞을까,라는 가끔씩 든다.

나는 이대로 더더욱 나와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유연성을 잃고 굳어져버리는 게 아닐까.

더 나아가 세상을 향한 귀를 닫아버리고 본인의 것만 맞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처럼 나도 변해버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 막연히 두렵다.


점점 더 독립적이고 책임질 줄 아는 나이가 되어갈수록 이러한 모습을 더더욱 마주하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진실된 충고를 좀 해줬으면, 하는 어린아이 같은 바람에 적어 내린 글이 길어졌다.

더더욱 스스로를 돌아보아 점검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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