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라니까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의 의사가 신경질 섞인 말투로 말했다. 왜 자꾸 귀찮게 묻냐는 것만 같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수술도,항암치료도 어려워요. 처방약 드시고 유산소 운동 열심히 하시고… 주사는 3개월에 한 번씩 내원해서 맞으시면 돼요. 자세한 것은 간호사가 설명해 줄 거예요.”
유산소 운동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먹지 말아야 것은 무엇인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다음 환자를 호출하는 간호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자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월드컵은 볼 수 있을까?’
왜 갑자기 카타르 월드컵 생각이 났을까.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코미디언 이주일은 내게 ‘암’의 대명사였다. 그의 모습을 보고 담배를 끊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경험의 힘을 빌어 내게 찾아온 불청객을 거절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 운명에 과부 사주는 없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로 나온 내 어깨에 아내가 얼굴을 파묻었다.
작년 9월 초, 소변이 불편하여 동네 비뇨기과를 찾았었다. 자청한 피검사에서 PSA 수치(혈액에 포함된 단백질 수치로, 전립선암을 진단하는 척도로 사용된다.)가 395였다. 빨리 큰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의 말에 집에서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다. 작년 초 간호대학을 졸업한 둘째 딸이 입사한 지 두 달 남짓 된 병원이었다. PSA수치는 430으로 뛰었고, 암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사 진단이 이어졌다. 2주일에 걸쳐 조직검사, 초음파검사, MRI, 뼈 스캔이 진행되었다. 전립선암 4기! 이미 뼈까지 전이되었다는 것이었다.
죽음이 코앞이라는 두려움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최종 진단을 받기까지의 2주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나 아내와 두 딸아이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겉으로는 괜찮다며 아내 어깨를 토닥였지만…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병이 왜 내게 찾아왔는지 억울하기도 했다.
검사를 위해 입원한 날! 큰 딸이 <맨발로 걸어라>라는 책을 소개해 주었다. 때마침 전립선암 말기 환자가 맨발걷기를 통해 6개월 만에 완치되었다는 기사가 휴대폰에 검색되었다. 그의 PSA 수치는 935였다.
‘난 그분보다 PSA 수치가 반도 안 되니… 3개월이면 완치될 수 있지 않을까.’
불안과 두려움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링겔을 꽂고 병원 근처 흙길을 찾아 무작정 맨발로 나섰다.
맨발로 걸은 지 한 달 후 PSA 수치가 43으로 떨어졌다. 맨발로 걸은 지 173일 되던 날! PSA 수치가 0.15로 떨어졌다. 뼈로 전이되었던 암세포가 사라졌다는 의사의 설명을 들었지만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기적이었다.
‘그래! 암은 내 삶에 노란 신호등이었어!’
집으로 돌아가는 차. 노란 신호등 앞에서 급정거를 했지만 한참 동안이나 그 아래를 떠날 수 없었다.
* 아직 완치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도 맨발 걷기와 채식, 명상으로 기적같은 치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족한 글로나마 그 경험을 함께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