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위의 첫 경험 '스파링'
[오늘도 복싱 07] 흥분은 패배의 요인
"이따 A랑 스파링 해볼래요?"
스트레칭을 하는 데 관장님이 물었다.
복싱 다닌 지 한 달. 관장님과 가벼운 매스 스파링은 해봤지만 회원과 붙는 건 처음이었다. 긴장과 설렘 속에 몸을 풀었다.
상대인 A는 중3 남학생이다. 운동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 있다. 가벼운 스텝과 어깨를 퉁퉁 튀기는 모션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체급은 내가 높았지만 복싱 경력은 A가 많았다.
체급 vs 경력.
투기 종목에서 우위를 점하는 건
어느 쪽일까?
링위에 올랐다.
스파링용 16온스 글러브. 팔을 뻗을때 마다 무겁다. 마우스피스와 헤드기어의 낯선 착용감이 몸을 무겁게 만들었다. 긴장은 했지만 질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A의 경력이 많다 해도 중학생이었다. 스파링 무대에 올랐다는 떨림만 있을 뿐, A에게 위축되진 않았다.
'땡'
타임벨 소리와 함께 1라운드가 시작됐다. 관장님께 배운 대로 앞뒤로 스텝을 밟으며 주먹을 뻗었다.
'잽, 잽, 원투' 계속해서 안면을 방어하는 A의 글러브 위로 잽과 스트레이트를 날렸다. 방어만 하는 A의 모습을 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크게 한방 휘두르려고 거리를 좁히는 순간 A의 앞손이 시야를 가리며 스트레이트가 날아왔다.
'딩~'
골이 흔들렸다. 충격은 적었지만 머리가 흔들리는 느낌은 정말 불쾌했다. 그동안 매스 스파링에서 관장님이 나를 많이 봐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주먹의 강도가 달랐다.
이후 A의 공격이 매섭게 이어졌다. 잽과 스트레이트가 연달아 나왔다. 리치는 내가 훨씬 더 길었음에도 거리싸움에서 밀렸다.
골이 계속 흔들렸다. 맞다 보니 아팠다. 갑자기 화가 났다. 30 넘고 중학생한테 맞다니,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체격차가 있으니 힘으로 밀어붙이며 펀치를 날렸다. 하지만 형세는 바뀌지 않았다. A는 가드를 단단히 굳히며 방어했다. 큰 주먹은 흘려보내면서 카운터로 반격했다.
A의 침착함이 내 공격을 원천 봉쇄했다.
스파링 2라운드가 끝나고 나는 그만하자고 말했다.
너무 힘들었다. 마우스피스 때문에 숨 쉬기도 어려웠다.
체력 안배 없이 큰 주먹만 뻗다 보니 금방 지쳤다.
관장님은 '힘을 빼야 한다. 흥분하면 절대 안 된다'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찍은 스파링 영상을 보내줄 테니 복기해보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 스파링 영상을 봤다.
흥분하기 전과 후의 움직임은 확연히 달랐다. 보기만 해도 몸은 무거웠고 어깨에는 힘이 가득 실려 답답했다.
맞은 게 화가 나서 상대에게 분풀이하는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나는 스포츠가 아닌 마구잡이 싸움을 하고 있었다.
배운 기술을 하나씩 쓰지 못하고 막무가내 싸움을 벌여 부끄러웠다. 냉정함, 체력, 거리 조절 등 부족함을 많이 느낀 스파링이었다.
복싱 첫 스파링은 좋은 경험이었다.
2021년 7월에 복싱을 시작해서 딱 일 년이 된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실력이 늘었다고 확신하긴 힘들지만...(관장님께 거리 조절 못한다고 매일 혼난다)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한두 대 세게 맞아도 흥분하지 않고 상대를 어떻게 공략할지 고민한다. 주먹을 마구 휘두르지 않으니 체력 낭비가 없어 라운드를 모두 채울 수 있게됐다.
무엇보다 스파링을 하며 겸손함을 배웠고, 겉모습만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세상에는 강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맞으면서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