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시 조교글 EP.12
만학도. 나이가 들어 뒤늦게 공부하는 학생을 일컫는 말입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만학도를 찾기는 쉽지가 않았으나, 가족을 위해, 생계를 위해 학업은 뒷전으로 두고 치열하게 살아온 부모님, 조부모님 세대의 노후 시기가 시작되면서, 주변에서 종종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평생학습원의 교육을 통해 초등/중학 학력을 인정받은 만학도부터, 2024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응시한 만학도까지 그 범위는 다양합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만학도 한 분을 소개해볼까 해요.
바로 <함씨네 토종콩식품> 대표 함정희 씨입니다.
함정희 씨는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고, 두부 공장 집 장남인 남편분을 만나 결혼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두부를 만들어 판매하는 업무를 해왔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 콩이 많이 수입되던 1990년대에, 수입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학교 급식실, 대형 마트, 슈퍼마켓 등등 매우 다양한 곳에 납품하기 시작했고, 큰 매출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2001년, 수입된 콩의 유전자 유해성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된 후, 자신의 공장이 얼마나 나쁜 콩과 두부를 소비자들에게 팔아왔는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해요. 이때 듣게 된 강의가 함정희 씨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거죠.
함정희 씨는 수입된 콩의 유해성에 대해 알자마자, “용기란, 뜻한 바를 72시간 안에 행동하는 것이다.”라는 신을 실천하기 시작했어요. 먼저, 함씨네 토종콩식품에서 사용하는 수입콩을 모두 국산콩으로 바꾸기 시작했는데요. 당시에는 국산콩이 수입콩의 가격보다 7배 이상 높아 상품을 국산콩으로 생산한다는 것 자체가 함정희 씨게는 부담이자 도전이었을 거예요. 가장 든든한 지원자였어도 모자랄 남편마저 수입콩 사용을 중단한다는 데에 격하게 반대했고, 수입콩 두부로 계약된 대형 마트의 계약을 해지했을 때도, 대형 마트 직원은 함정희 씨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지만, 함정희 씨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유해한 수입콩을 사용했다는 죄책감을 씻기 위해, 몸에 좋은 우리 국산콩을 이용한 두부를 만들겠다는 단단한 신념을 바탕으로, 국산콩, 즉 토종 콩의 장점과 수입콩의 유해성에 대해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중년 아주머니의 말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죠.
그래서 함정희 씨는 대학교에 입학해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52세, 05학번으로 전문대학교 식품 생명학과에 입학해 두부, 콩물, 청국장 등의 제품을 생산하는 일은 물론 학업도 놓지 않으면서 장학생으로 졸업할 수 있었고, 입학한 지 16년 만인 69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합니다.
함정희 씨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는 <한국인의 건강관점에서 콩의 영양, 기원 및 유전자원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학위 논문 주제에서부터, 국산콩에 대한 함정희 씨의 열정과 사랑이 가득 느껴지지 않나요?
평범한 중년 여성이 50세가 넘는 나이에 대학교에 들어가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쳤던 만학도 함정희 씨의 열정. 어떻게 느껴지셨나요?
수입콩보다 20배, 30배나 비싼 콩을 사용해 식품을 만들다 보니, 함정희 씨의 함씨네 토종콩식품은 몇 년째 적자 상태라고 합니다. 이런 힘든 재정 상황에도 불구하고, 20여 년 동안 이어진 숱한 남편의 가정폭력을 이겨낼 만큼, 또 아들의 차를 팔아 직원들의 급여를 챙겨주면서까지 국산콩 사용을 고집할 만큼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바로, 수입콩을 사용해 왔던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신념이었는데요. 함정희 씨가 국산콩으로 세계 최고의 식품을 만들겠다는 바로 이 신념이 꿈을 빛낼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신념으로 어떤 곳에서 이런 열정과 꿈을 느끼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