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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피형아 Mar 27. 2021

#14. 특명! S.E.S. 숙소를 찾아라

14화 특명! S.E.S. 숙소를 찾아라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https://brunch.co.kr/@forsea5999/13

13화 <G고릴라 & 새천년의 피자헛>



https://brunch.co.kr/@forsea5999/1

1화 <1997년 11월 28일>





14화.


S.E.S. 4.5집 (2001)


세기말, 그리고 새천년의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서울의 명소 중 하나였고 나아가서는 대한민국의 명소 중 하나이기도 한 그런 곳이었다. 로데오거리에 있던 2층짜리의 피자헛은 덕질로 허기진 우리의 배를, 팬질로 허기진 우리의 배를 채워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거의 분기별로 찾았던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당시 피자헛은 외식의 선두주자이면서도 특히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대기를 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었으니까. 특히나 우리 <요정 베이커리> 중 '적향루진' 누나가 피자헛을 많이 애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메뉴 선택은 '적향루진' 누나가 대신했다. 피자 메뉴는 뭘 먹었는지 당연히 기억에 없고 한 가지 정확히 기억나는 건 우리는 늘 콜라를 피쳐로 주문했다. '적향루진' 누나는 언제나 피자헛 직원에게 피쳐를 달라고 얘기했다.


"피자는 이걸로 주시고 콜라는 피쳐로 주세요"



그때는 피쳐가 유행 아닌 유행이었다. 그리고 2001년의 피자헛 샐러드바 역시 지금과 다르게 메뉴가 굉장히 다양했고 거의 뷔페(?) 수준이어서 피자헛은 그야말로 범접할 수 없을 만한 레스토랑이었다. 항상 북적거렸던 기억의 피자헛. 가장 자주 갔던 곳이 갤러리아 백화점 맞은편에 있던 맥도날드였고 거의 살인적인 덕질로 인해 모두가 피폐해지려고 할 때는 돈 좀 모아 피자헛을 가곤 했다. 맥도날드에 자리가 없으면 바로 옆 건물에 있던 파파이스를 가기도 했고 파파이스 건물을 앞에 두고서 왼쪽으로 끼고 돌기 직전엔 'MF'가 있었다. 당시 패션에 관심 좀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알만한 힙합 브랜드인데 참 잘 나갔던 브랜드다. 그 MF를 끼고돌면 '영양센터'라는 삼계탕집이 나왔고 그 옆에는 뚝배기 불고기가 꽤나 맛있었던 '초가집'이라는 식당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 식당에서도 밥을 자주 먹곤 했다.


2000년대 초반 압구정 로데오

로데오거리 후문이라고 해야 하나? 굳이 정문과 후문이 구분되어 있지는 않았는데 우리는 노란색 건물의 '디자이너 클럽' 쪽 입구를 후문으로 불렀다. 그쪽엔 1층에 롯데리아가 있었고 (2002년 월드컵 때는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다 같이 여기 롯데리아에 앉아 응원을 한 적이 있다) 롯데리아 옆에는 지하에 '정성본'이라는 칼국수집이 있었는데 '정성본'은 우리가 '피자헛'을 애정 하는 만큼이나 종종 방문한 곳이기도 했다. 그 당시 강남의 물가, 특히나 로데오거리의 물가는 확실히 강북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쌌지만 '정성본'이라는 칼국수집은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담감이 크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칼국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정성본'을 좋아했던 이유는 마지막에 볶아주는 밥이 끝내줬기 때문이다. 볶음밥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죽으로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칼국수 국물에 밥을 넣어서 양념과 함께 계속 저어준다. 그렇게 되면 거의 죽처럼 되는데 이게 정말 환상적인 맛을 자랑했다. 그래서 항상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누나들의 숙소에서 놀다가 배가 고프거나 오늘은 햄버거가 당기지 않을 때는 늘 '정성본'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칼국수보다는 마지막에 먹는 죽을 더 좋아한 우리들이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어렸던 그때의 나를 만나게 되니까 오랜만에 '정성본'을 찾아 다시 한번 그 죽을 먹어보고 싶다.


잘 나가던 MF

2001년 어느 날, 누나들의 숙소가 바뀌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토끼굴 쪽, SM 뒤쪽에 있던 하얀색의 목ㅎ빌라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 것. 스케줄에 대한 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숙소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런데 언제였지? 어디서 였지? 누나들의 숙소, 즉 새로운 숙소가 된 빌라 이름을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 빌라의 이름은 바로 청ㄷ빌라. 언제였더라? 스케줄이 없던 어느 날에 혜진 누나를 필두로 '까꿍유진', '팬더유진', '빠샤유진', '영원불멸', '수영유치원', '수영어린이', '수영유괴범', '바다동생', '샤샤성희', ‘고도리유진’, ‘슈야럽’ 등등의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압구정부터 청담동의 모든 골목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단서는 단 하나! 청ㄷ빌라. 지금 생각해보면 집념이 정말 대단했던 것 같다. 다들 중학생, 고등학생이었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 또한 단 한 명도 없어서 주소를 찾기란 서울에서 김서방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으니까. 설령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고 해도 주소를 찾는 데 있어서는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처럼 스마트폰 시대도 아니었을뿐더러 도로명 주소가 등장하지 않았을 때니까. 군대에서 했던 행군만큼 걸었다. 정확히 압구정 로데오거리 쪽부터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오전부터 만나서 거의 초저녁까지 돌아다닌 것 같다. 누나들이 이사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공방을 뛰는 같은 팬들 중에서도 새로운 숙소를 아는 팬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버거킹' 뒷 골못을 먼저 훑기 시작했다. 그 뒤쪽으로 가면 빌라들이 많았으니까. 10명이 넘는 아이들이 압구정동부터 청담동까지 훑고 다녔으니 남들이 보기에 얼마나 웃겼을까? 그때는 덕후라는 표현이 없어서 우리 같은 팬들은 늘 빠돌이 또는 빠순이로 불리곤 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우리를 봤을 때 아마 다들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딱 봐도 빠돌이, 빠순이들이네?"


라고 말이다. 뭐 그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만의 세계에 갇힌 게 참 재밌었으니까. 등산이 취미인 사람, 영화 감상이 취미인 사람, 그때는 없었지만 캠핑이 취미인 사람처럼 우리의 취미는 팬질이었으니 말이다. '버거킹' 바로 위쪽에는 당시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숙소가 있었는데 누나들의 숙소를 찾는 도중에 건진(?) 것이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숙소도 빌라였고 그 앞을 지나가니까 10명쯤 되는 '플투스' 팬들이 우리를 의식하기도 했다. 아마도 <요정 베이커리> 중에서 포스 하면 어디에 내놔도 꿇리지 않던 '적향루진' 누나 아니면 혜진 누나가 '플투스' 팬들에게


"저희는 S.E.S. 팬들인데 여기 혹시 누구 숙소예요?"


"플라이 투 더 스카이요"


그때 아마도 몇몇 팬들이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숙소라고 대답을 해 준 것 같다. 이때가 아마 돌아다닌 지 꽤 되었을 때로 기억을 하는데 본의 아니게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숙소를 알게 된 순간, 혜진 누나가 말하기를.


"야, 그럼 언니들 숙소도 분명히 이 근처에 있겠다"


뭔가 성공한 느낌이었다. 덥고 배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발도 아파 죽기 직전이었는데 마치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그냥 뭔가 느낌이 왔었다. 왠지 근처에 누나들의 새 숙소가 있을 것 같았다. 덕질의 또 다른 기본이자 덕후로서 지녀야 할 또 다른 신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촉을 무시하지 마라. 그래서 '버거킹' 뒤쪽 골목,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숙소 근처를 매의 눈으로, 개의 후각처럼 킁킁대며 냄새(?)를 찾는데 더 몰입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돌았을까...? 못해도 그 근처를 2시간 정도는 더 돌았던 것 같다. 청담동에 청ㄷ빌라가 얼마나 많겠는가?라고 생각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청ㄷ이라는 이름을 가진 빌라가 없었다. 어쨌든 1,2시간 정도 돌아다니다가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는지.


"얘들아, 이제는 건너가 보자"


혜진 누나가 입을 열었고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 중 누구였더라? 나도 그랬고 '까꿍유진'도 그랬던 것 같은데


"누나, 길 건너서는 없을 것 같아"


"맞아, 길 건너서는 SM 하고도 거리가 너무 먼데?"


혜진 누나가 제시한 방향은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청담 '맥도날드' 건너편이었는데 사실 SM하고의 거리와도 먼 곳인 건 맞는 사실이었다. 그렇게까지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 더 아닐 거라고 생각이 들었던 건 바로 전 숙소였던 목ㅎ빌라와의 거리 하고는 아예 정반대였으니 말이다.


영동고등학교 후문 쪽 골목 (출처: 구글)


하지만 혜진 누나의 완강한 태도로 인해서 우리는 청담 '맥도날드' 건너편, 그러니까 '방주병원' 사거리에서 '영동 고등학교' 쪽으로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때 또 본의 아니게 알게 된 것 중 하나가 '핑클'의 숙소가 '영동 고등학교' 쪽에 있던 걸로 알고 있고 '스페이스 A' 숙소인지, 기획사인지 모르겠지만 골목을 걷던 중에 '루루'(스페이스 A 멤버)와 남자 멤버가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뭔가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쪽 골목에도 이런 빌라들이 많이 있는 걸로 보아서 누나들의 숙소가 있을 것 같다는 촉을 말이다.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거의 저녁을 바라보고 있을 때로 기억을 하는데.


"여기는 태사자 숙소였나 봐"


영동고 후문 & 당시 태사자 전 숙소 및 S.E.S. 새 숙소로 올라가는 골목 (출처 : 구글)


어떤 빌라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태사자'가 생활했던 것으로 보이는 어느 한 빌라의 벽에 새겨진 엄청난 낙서들. 형준이라는 글씨부터 동윤, 준석, 영민 등의 이름을 각종 매직으로 쓰여 있었던 것. 그렇게 우리는 '태사자'의 전 숙소로 보인 그 빌라 위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골목이라는 골목은 다 뒤졌고 작은 빌라였어도 그 빌라가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확인했는데 그때!


"청ㄷ빌라다!"


정확히 빌라의 입구에 금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청ㄷ빌라>


찾았다. 드디어 찾았다. 누나들이 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주던 것 하고는 비교가 할 수 없을 만큼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다시 한 번 최초로 누나들의 숙소를 알아내는데 성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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