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피형아 Mar 25. 2021

#13. G고릴라 & 새천년의 피자헛

#13. G고릴라의 실물 & 새천년의 피자헛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https://brunch.co.kr/@forsea5999/12

12화 <녹사평역 카페 '클라쎄'>


https://brunch.co.kr/@forsea5999/1

1화 <1997년 11월 28일>





13화.


2001년 여름이었다. 정말 뜨거웠을 여름. 언젠가 한 번 수원에서 스케줄이 있었고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아주 당연하듯 수원까지 신나게 달려갔다. 수원의 한 밀리오레였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 그때는 동대문의 '두타'(두산타워)나 '밀리오레', '헬로APM' 등이 대유행이었다. 동대문을 포함한 명동, 회현에 있는 밀리오레 같은 대형 쇼핑몰 앞에서는 거의 매일 밤에 댄스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새천년에는 옷을 굳이 사지 않아도 바깥에 설치된 무대에서 춤을 추는 지역 댄스팀을 보는 재미가 참 쏠쏠했다. 어쨌든 수원의 한 밀리오레 야외에서 누나들의 공방이 있었고 지금도 기억하는 건 규모가 생각보다 꽤 컸었다. 밀리오레 오픈 기념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였는지는 당최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우리에게 중요한 건 오직 누나들 뿐이었다. 그때 <요정 베이커리>에서 20명 정도는 갔던 것 같다. 수원 스케줄을 20명이나 갔다는 건 여러모로 대단한 의미로서, 무튼 S.E.S. 팬들 중 역시나 <요정 베이커리>가 가장 많았다. <요정 베이커리> 회원들 중 수원에 살던 친구들도 꽤나 많아서 당시 '슈야럽' 형을 비롯해 '바다동생', '욱이', '금빛바다', '롯데제과'(닉네임이 이거였다) 등은 당연히 참석했고 쌍문에 살던 나를 포함한 '팬더유진', '바다토마토', 면목동에 살던 '유진낭자', '적향루진' 누나, 그리고 인천에 살던 '빠샤유진', '수영유치원', '수영유괴범', 송파에 살던 '까꿍유진', 강남에 살던 '고도리유진', '새벽하늘' 누나 등등 역시나 참석한 스케줄이었다. 다른 가수들도 함께 나오는 공개방송이었고 '이브'와 '문차일드'(현 M.C the Max) 등이 기억난다. 다른 가수들도 나왔을텐데 내 기억엔 이 두 팀만 선명하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때 원래 가장 앞좌석을 차지했었는데 일반 시민들도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잠시 멍을 때리다가 자리를 뺏겼던 것 같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아주 선명한 기억으로 정확히 두 자리만 뺏겼었다. 두 명만 함께 앉을 수가 없던 것. 두 명은 맨 뒤로 가서 앉아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 것이었다. 그때 '수영유치원'은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나오는 공방이어서 아직은 신입 회원이었고 시샵이던 나는 내 자리를 '수영유치원'에게 기꺼이 양보했다. 그리고 한 자리 더 누군가에게 양보를 했었는데 그게 누구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어쨌든 나와 '고도리유진', 이렇게 둘은 맨 뒷좌석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나중에 '수영유치원'이 <요정 베이커리>의 정예 멤버가 되면서 모두와 친해졌을 때 내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오빠가 그때 수원 공방에서 나 신입이라고 자리 양보해줬을 때 기억 나? 그때 나 엄청 감동했잖아, 이런 게 시샵이구나라고"


비주얼 락밴드 '이브'

정확히 이 얘기였다. 무려 20년 전, 그중에서도 수많은 나날들 중 어느 한 날의 대화일 뿐이지만 나는 지금도 '수영유치원'의 이 말이 기억난다. 뭐 이런 얘기를 들으려고 내가 자리를 양보한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동안 누나들을 가까이서 많이 봐왔기 때문에 신입 회원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한 행동이었다. 새천년, 지금도 활동 중이지만 그때의 '이브'는 웬만한 아이돌만큼이나 그 인기가 참으로 대단했다. 여전히 보수적인 문화였던 한국에서 비주얼 락밴드를 한다는 건 대중적이지 않은 활동이었을 텐데 '이브'는 매번 내는 앨범마다 항상 히트를 쳤고 당시 남학생들에게 있어서는 노래방 애창곡 중 꼭 '이브'의 노래는 하나씩 들어가 있었으니까. 아마도 그날 '이브'의 팬클럽을 실제로는 처음 봤던 것 같다. 풍선 색깔이 파란색이었나? 색깔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락밴드임에도 그날 '이브'의 팬클럽 규모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을 만큼이나 대단했다. 거의 50명 정도 왔던 것 같은데 현장을 뛰는 팬들이 50명 정도 온다는 건 굉장히 대단한 것이었다. 같은 날 '문차일드'의 팬클럽 역시 '이브'의 팬클럽 숫자와 비슷한 규모였으니 '이브'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어느 정도는 상상이 가능한 일이다.


'이브'의 G고릴라 리즈시절

그 당시 '이브'의 멤버들 미모(?) 또한 아이돌에 꿇리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특히나 G.고릴라의 인기가 참 많았다. 비슷한 시기에 KBS 화장실을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내 옆 소변기에 G.고릴라가 있던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화장실에서 그렇게 연예인들과 많이 마주친다) 바로 눈앞에서 봤었는데 G.고릴라의 그때 실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진짜 연예인이구나 했으니 말이다. (물론 메이크업의 힘도 있었겠지만)


'문차일드'의 팬클럽 풍선 색깔은 상아색이었다. 흰색은 H.O.T. 것이었고 무튼 '문차일드'의 풍선은 상아색이 확실하다. 그때 상아색 풍선을 역시나 처음 본 기억이 난다. 약간 누런 색깔이라고 해야 하나? 내 기억으로는 '투야'도 활동이 겹쳤던 걸로 아는데 수원 밀리오레 공방 때도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공개방송에서 '투야'의 무대를 본 기억이 남아 있는 건 맞지만 그게 수원 밀리오레인지는 모르겠다. 잠시 '투야' 얘기를 해보자면 그때 나는 '아이 러브 스타', '틴스타'라는 연예 잡지를 이미 전부터 끼고 살았던 때라서 '투야'가 누군지 데뷔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투야'

국내 데뷔보다 일본에서 먼저 데뷔를 한 '투야'는 여성 3인조 그룹으로서 '김지혜'를 필두로 '안진경', '류은주' 등으로 만들어진 팀이었다. '김지혜'는 '씨야'의 '남규리'처럼 '투야'에서 항상 센터였고 긴 생머리에 얼굴이 CD로 가려지는 여자 가수로 유명했을 만큼이나 상당한 미모를 자랑한 멤버였다. '젝스키스'가 주인공이었던 영화 <세븐틴>에서 '강성훈'의 여자 친구 역할이었나? 아마 그럴 것이다. 그 '김지혜'가 몇 년 뒤에 '투야'라는 그룹으로 데뷔를 한 것. 워낙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그룹이었다. '김지혜'의 실물은 역시나 미쳤었다. 소속사의 힘이 약해서 뜨지 못한 게 참 아쉽지만 그래도 '투야'는 1집 활동(타이틀곡 : 봐)이 꽤나 활발했다. 흔히 말하길(?) '투야'가 망하고 '김지혜'는 솔로로 데뷔를 하기도 했었지만 역시나 소속사의 힘 때문이었는지 얼마 못가 연예계를 떠난 것으로 안다. 여기에 '안진경'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5년? 2007년? 그쯤, 일명 베이비복스 2기라고 하는 '베이비복스 리브'의 멤버가 되어 두 번째 데뷔를 하게 되었다.


S.E.S.

아마도 그날은 수원 공방 하나가 전부였던 것 같다. 내 기억에 그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부랴부랴 어디를 향해 뛴 기억이 없으니까. 그렇게 공방이 일찍 끝나면 더 좋다. 왜냐고?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말이다. 참 오지게(?) 놀았다. 집에 언제 가냐는 걱정 따위는 하지도 않은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기에 바빴으니까. 연예인 따라다니는 팬들, 나쁘게 말하면 빠돌이와 빠순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놀까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노는 건 다 똑같다.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고 똑같은 아이들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도 다 같이 노래방에 가서 대형룸을 하나 잡고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노래를 불러대고 배가 고프면 다 같이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는다. 다만 주제는 항상 누나들, 즉 S.E.S.로 시작해서 S.E.S.로 끝난다는 게 다를 뿐. 그날 의상이 별로였으면 다 같이 코디를 욕하는 건 기본, 인사 하나 없이 벤만 타고 가버린 날이면 재수 없다며 욕을 하기도 했다. 이런 것도 팬이니까, 공방(공개방송)을 밥 먹듯이 뛴 팬이니까 꺼낼 수 있는 에피소드다. (몇 화였지? 음캠 끝나고 바다 누나가 나를 잠시 벌레 보듯(?) 바라봤다는 에피소드처럼)


우리의 제2의 놀이터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였다. 누나들의 숙소에서 좀 놀다가 배가 고프거나 다리가 아프면 곧장 로데오거리로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새천년의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젊음의 메카이자 옷 좀 입는다는 일명 패피(패션피플)들의 성지였다. 워낙 어린 나이부터 S.E.S.라는 연예인을 따라다녀서 그랬는지, 자연스럽게 압구정 로데오거리에서 놀기 시작해서 그랬는지 우리 동네나 다른 동네를 가면 웬일인지 위화감이 들기 일쑤였다. 어린 나이에 눈만 높아졌다는 게 알맞은 표현 같다. 등촌동에 살던 나와 동갑인 '은빛유진'과 강남에 살던 우리 막내 '고도리유진'이 <요정 베이커리>에 없어서는 안 될 물주(?)였지만 얼마 뒤, 이 두 사람을 능가할(?) 물주들이 들어왔는데 바로 인천에 살던 '수영유치원', 그리고 수원에 살던 '슈야럽' 형이다. 이로서 <요정 베이커리>의 물주는 두 명에서 네 명으로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고 이것은 <요정 베이커리> 이름으로 만드는 대형 현수막 제작에 있어 항상 큰 도움이 되는 존재들이었다. 덕분에 나름대로 배를 굶지는 않았던 것 같다.


출처 : 구글


나보다 어렸던 '수영유치원'이나 '고도리유진'도 그런 거에 상관없이 잘 사주었으니까. 2001년, 새천년에는 피자헛이 붐이었다. 피자를 홀에서 먹는 건 거의 신박하면서도 동수저는 되어야 즐길 수 있을 만한 외식이었으니까. 코 묻은 돈을 각자 모으고 모아서 우리는 압구정 로데오거리 안에 있던 2층짜리 피자헛을 종종 가고는 했다. 당연히 모자라면 <요정 베이커리>의 물주들인 '슈야럽' 형을 포함해서 '은빛유진', '고도리유진', '수영유치원'이 더 내기도 했으니까. 그때의 피자헛은 주말엔 대기를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신개념 레스토랑이었다. 피자 먹는 재미도 있지만 샐러드바 가져다 먹는 재미가 더 쏠쏠했던 피자헛. 나는 그래서 가끔 피자헛을 보면, 홀이 있는 피자헛을 마주칠 때면 2001년 그때의 압구정 로데오거리 피자헛이 생각난다. 마치 2001년산 캠코더의 색감처럼 내 머릿속에 화면이 떠오른다.






이전 02화 #12. 녹사평역 카페 “클라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