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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피형아 Mar 20. 2021

#12. 녹사평역 카페 “클라쎄”

#12. 녹사평역 카페 '클라쎄'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12화.




2001년 4월에서 5월쯤,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요정 베이커리>의 친목 도모회를 열었었다. 그 전에 1회 정모를 한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첫 정모에 대한 에피소드는 남기지 못할 것 같고 대신 4,5월 쯤 주최한 친목 도모회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정확히 일요일 오후였다. 그때가 아마 누나들의 4집 활동이 끝났었거나 스케줄이 없던 날이었다. 우리 <요정 베이커리>의 공식적인 모임으로는 아마도 두 번째가 아니었나 싶은데 나는 그날도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참석했다. 역시나 공과 공부를 빼먹고 곧장 5호선 여의나루 역으로 달렸던 기억이 난다. 그날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정확히 기억이 나는데 그때 나는 베이지색 면바지에 연한 베이지의 셔츠를 입고 나갔다. 그 모습이 꼭 사이비 교주같다고 해서 한동안 내 별명은 또 교주였다. 아직은 여름이 오기 전이어서 굉장히 따뜻한 봄날이었고 나는 교회 식당에 잠시 앉아 30장 정도 되는 엽서에 직접 편지를 썼다. 그날 <요정 베이커리> 친목 도모회에 참석하는 회원들에게 일일이 감사하다는 편지를 썼던 것이다. 선명하다. 너무 아파서 내 팔은 덕분에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어쨌든 그날의 친목 도모회는 역시나 대성공이었다. 그때가 아마도 <요정 베이커리>를 설립한지 불과 4개월쯤 되었었고 단기간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S.E.S.의 최초이면서도 최대 공방파였으니까. 정모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요정 베이커리> 1회 친목 도모회라는 공지를 올리고 회원들과 만났지만 사실 정모나 다름없기는 했다. 그때도 이미 부시샵은 '도발 바다'부터 '새벽하늘' 누나가 있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내가 정모라는 단어 대신 친목 도모회를 선택한 것 같다. 햇볕이 따스했던 어느 일요일 오후의 여의도 공원. 15명 정도 오면 성공이구나 생각했지만 무려 30명 정도의 회원들이 함께 해준 그날의 <요정 베이커리> 친목 도모회. 정예 멤버를 빼고도 신입 회원들은 10명이 훌쩍 넘기도 했었다.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이 자세히 없지만 수건 돌리기를 했던 건 정확히 기억난다. 모두가 10대였던 우리.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일요일 오후에 30명이 넘는 중고교생들이 잔디밭에 둘러앉아 수건 돌리기를 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면... 그 얼마나 순수한 영혼들이었는지 감히 상상이 될 것이다. 수건 돌리기도 정말 재밌게 했었고 마지막에는 시샵이던 내가 그 중간으로 들어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었다.


"오늘 <요정 베이커리> 친목 도모회에 와주신 분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이다. 숫기라고는 전혀 없던 아이가 <요정 베이커리>라는 S.E.S.의 공방파를 만들었고 또래들이었지만 어쨌든 3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서서 시샵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는 건 내 인생 가장 최고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친목 도모회가 끝남과 동시에 교회 식당에서 팔이 떨어지기 직전까지 작성한 자필 편지를 닉네임에 적힌 대로 나눠주었다. 그리고 여의나루에서 모임을 하거나 음캠(음악캠프) 스케줄 이후 뛸 공방이 없다면 우리는 항상 MBC 공개홀 앞에 있던 아파트 상가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했다. 친목 도모회를 했던 날도 그냥 가지 않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을 텐데 그 많은 30명이 어디로 가서 식사를 했는지는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다시 2001년 8월로 돌아와 어느새 혜진 누나하고 굉장히 친해져 있었다. 대구에 살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로 올라와 우리 <요정 베이커리>를 감시하던 숏컷의 무서운 혜진 누나는 어느 날 내 휴대폰 번호를 가져갔다. 전국 회장인 미윤 누나 이후로 내 휴대폰 번호를 두 번째로 가져간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S.E.S. 공식 팬클럽의 임원은 아니었지만 혜진 누나는 임원들과 꽤 친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전국 회장 미윤 누나의 포스만큼이나 혜진 누나의 포스 역시 어디에서도 꿇리지 않을 만큼 대단했다. 그렇게 혜진 누나와 나는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급속도로 친해졌고 자연스럽게 혜진 누나는 우리 <요정 베이커리>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 그때 부시샵으로서는 '새벽하늘' 누나가 전부였다. 시샵이던 나와 부시샵이던 '새벽하늘' 누나. 이미 그때는 정예 멤버들도 30~40명이 고정이었고 <요정 베이커리>를 운영하는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따로 부시샵을 한 명 더 뽑지 않았던 것. '새벽하늘' 누나가 때로는 나보다 더 운영을 잘 해준 이유도 있다. 혜진 누나는 점점 우리와 함께 다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부시샵은 아니었다. 다만 워낙 포스가 강한 사람이었고 공식 임원들과 친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변에서 볼 때는 아마도 혜진 누나가 <요정 베이커리>의 시샵으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혜진 누나가 우리와 함께 하게 되면서 <요정 베이커리> 규모는 더 커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대구 <요정 베이커리>가 설립(?) 됐다. 혜진 누나의 본가가 대구였기 때문에 <요정 베이커리>를 대구 지역으로까지 세분화시키는 건 쉬운 편이었다. <요정 베이커리>는 이미 5,000여 명이 넘는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었고 당연히 그 안에서는 서울을 포함한 대구, 부산, 광주, 제주 등등 각지에 있는 팬들도 존재했다. 후에 혜진 누나가 대구에서 정모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요정 베이커리> 공지를 통해


[공지] 요정 베이커리 대구 지역 1회 정모 안내


당시 카페 클라쎄 (S.E.S. 사진이 많았다)

글을 올리는 건 물론, 단체 메일로도 그 사실을 알렸다. 대구 <요정 베이커리>의 정모도 20명 정도씩은 왔던 걸로 기억한다. 시내의 한 롯데리아 2층을 빌려서 정모를 하기도 했었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혜진 누나는 우리와 더 친한 사이가 되었고 가을이 오기 전, 우리는 또다시 정모를 가지게 되었다. 어디서 정모를 가질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다가 이번엔 특별한 곳에서 정모를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준비하게 된 곳이 이태원의 '클라쎄'라는 카페. S.E.S. 팬들 사이에서, 특히나 누나들 덕질 좀 하러 다녔다면 누구나 알만한 곳이었는데 수영 누나(슈 본명)의 이모 님이 하시는 카페가 바로 '클라쎄'였다. 이후로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정모를 할 때마다 '클라쎄'에서 주최를 더 많이 하게 되었고 민토(민들레 영토)와 번갈아 가면서 장소를 정하기도 했다. 언젠가 한 번은 수영 누나(슈 본명)의 이모 님이 아예 우리에게 카페(클라쎄)를 맡기시고 자유 시간(?)을 가지러 나간 적도 있으시다. 카페 '클라쎄'는 6호선 녹사평 역에서 내려야 한다. 나를 포함한 여러 명의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은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녹사평 역을 오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녹사평 역을 올 일이 전혀 없었으니까. 2001년, 즉 새천년에 마주한 녹사평 역은 정말 신세계 그 자체였다.


당시 카페 클라쎄 메뉴판

마치 백화점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에스컬레이터가 굉장히 아름다웠고(?) 이곳이 정녕 지하철 역이 맞는 건가 할 만큼 궁전같이 보이기도 했다. 호화스러운(?) 녹사평 역 안에서 정모에 참석하는 <요정 베이커리> 회원들을 기다렸다. 민토에서 정모를 해도 평균적으로 30명 정도는 참석했는데 수영 누나의 이모 님이 하시는 '클라쎄'에서 할 때는 그보다 더 많은 숫자가 모이기 일쑤였다. 거의 두 배 정도 차이가 났으니까. '클라쎄'가 카페 치고는 결코 좁지 않은 곳이었는데도 60명이 넘어가면 더 이상 참석자를 받지 않았다. 그 정도로 <요정 베이커리>는 단지 정모를 하는 자리에서도 굉장히 많은 팬들로 북적거렸다.


당시 카페 클라쎄 내부 오른쪽

도대체 그렇게 많은 팬들이 모여서 무슨 얘기를 하고 놀았을까...? 먼저 시샵이던 내가 감사의 인사를 전했을 것이고 그다음부터는 조를 나눠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신입 회원에게는 정예 멤버들을 포함해 나, 그리고 부시샵이었던 '새벽하늘' 누나가 번갈아 가면서 챙겨주었을 것이다. 한 공간에서 3시간 정도씩은 놀았던 것 같다. 수영 누나의 이모 님이 시간 같은 거는 상관하지 말고 재밌게 놀다 가라고 항상 말씀해주셨던 기억도 있다. 그저 같은 팬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같은 <요정 베이커리> 소속이라는 이유로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아무런 걱정 없이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바빴던 우리의 열일곱은 가을의 문턱처럼 더 무르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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