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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피형아 Apr 02. 2021

#15. S.E.S. 숙소 앞 '슈' 누나의 추억

15화 S.E.S. 숙소 앞 '슈' 누나의 추억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이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을 더욱 즐길 수 있읍니다.



https://brunch.co.kr/@forsea5999/14

14화 <특명! S.E.S. 숙소를 찾아라>


https://brunch.co.kr/@forsea5999/1

1화 <1997년 11월 28일>






15화.


출처 : 구글 ( S.E.S. 활동 당시 '슈' 누나 / 숙소는 목ㅎ빌라)

누나들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청ㄷ빌라를 찾기에 성공한 순간에는 우리 모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있던 골목이었고 이런 곳에, 이런 위치에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있던 목ㅎ빌라의 분위기 하고도 180도 달랐다. 목ㅎ빌라는 주변이 뻥 뚫려 있었다면 새로 이사를 온 청ㄷ빌라의 주변은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지금도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골목길이었다. 다만 달랐던 점은 지하철역과 가까워졌다는 것. 도보로 3,4분만 가면 맥도날드 청담점이 있었고 그 뒤에는 바로 버거킹, 로데오거리에 입성하는(?) 시간까지 꽤나 단축할 수 있는 거리였다. 새 숙소를 찾겠다는 집념 하나로 똘똘 뭉쳤던 그때의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그날 이후로 만남의 장소가 바뀌었다. 시간이 조금씩 흐르다 보니까 새 숙소의 정보는 여기저기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고 S.E.S.의 다른 팬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새 숙소였던 청ㄷ빌라는 목ㅎ빌라와는 달리 누나들에게 접근하기가(?) 대체로 편했던 것 같다. 목ㅎ빌라에 있을 때는 뭔가 거리감이 있었다. 지상에 주차장이 있었지만 뭔가 뻥 뚫린 느낌이어서 대체로 거리를 두는 분위기였다고 할까? (물론 무대에서의 거리보다는 훨씬 가까웠지만) 그런데 청ㄷ빌라는 목ㅎ빌라보다 작았고 골목 자체도 폭이 좁았기 때문인지 누나들이 들어가고 나올 때 우리와의 거리도 그만큼 좁혀졌다.


예전 누나들 마지막 숙소였던 청ㄷ빌라 골목길 (현재는 빌라가 없어졌다)


 이곳에 대한 추억이나 에피소드가 특히 많은데 당시 유진 누나와 수영(슈 본명) 누나, 미연 누나(베이비복스), 소이 누나(티티마), 지윤 누나(가수 박지윤), 레나 누나(F.O.X) 등으로 이루어진 '야채파'가 각자의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던 것. 누나들이 청ㄷ빌라로 이사를 온 후부터 '야채파' 멤버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야채파'가 무엇이냐면 '79클럽'을 생각하면 조금 더 이해하기가 편할 것이다. 79년생들로 이루어진 강타를 포함해 신혜성, 이지훈, 이효리 등이 당시에도 연예계에서 유명한 '79클럽'의 멤버들이었다. '야채파'도 나름 유명했다(?) 각자의 팬들 사이에서 더 이름을 날리기는 했지만. 그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유진 누나와 수영 누나, 미연 누나 등등은 같은 아이돌로 활동 중이었고 모두 또래들이었다. 자연스럽게 친해져서 술 한 잔씩을 하게 된 사이인데 이때 얼굴이 빨개진 멤버를 두고 당근같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 '야채파'의 시작이었다. 유진 누나는 '야채파' 중에서 고구마였고 미연 누나가 애호박, 지윤 누나가 옥수수(지금 처음 알았다), 레나 누나는 오이(역시 지금 처음 알았다). 근데 여기서 재밌는 게 레나 누나에 대한 이야기다. 1집 앨범 한 장을 끝으로 가요계에서 사라진 F.O.X라는 여성 4인조 힙합 그룹의 한 멤버였는데 그때는 전혀 몰랐다. 레나 누나가 '야채파' 멤버였다는 것을. 여기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건 나는 F.O.X의 노래를 굉장히 좋아했었다는 것이다. 'Jumping Love'가 타이틀곡이었고 후속곡은 '그래도 태양은 다시 뜬다'라는 노래로 잠시 활동했던 그룹. 나는 하계동 건영옴니백화점 1층에 있던 레코드샵에서 F.O.X의 1집 카세트 테이프를 직접 구매하기도 했었다. 물론 정품으로. 후속곡도 너무 좋았고 특히나 앨범 수록곡 중 '토요일의 악마'라는 노래 역시 내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곡이기도 했다. 나름 '오투포'(0-24)와 쌍벽(?)을 이룰 만한 실력을 가진 여성 힙합 4인조 그룹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고 1집을 끝으로 사라지게 되어서 아쉽게 생각한 그룹 중 하나였는데 알고 보니 유진 누나와 같은 '야채파' 소속이었다니! 이래서 세상은 참 좁구나(?)라고 다시 한 번 느낀다.


출처 : 네이버 (그때도 지금도 여전한 맞은편 KFC)


"오늘 숙소에서 만나"


누나들의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우리에게 늘 숙소가 만남의 장소였다. 청ㄷ빌라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에서 가까웠다. 역에서 같이 만난 후에 이야기를 나누며 영동 고등학교 정문을 지나친 다음에 아파트(아파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를 뚫고 나가면 청ㄷ빌라로 올라갈 수 있는 골목길을 마주하곤 했다. 일찍 오는 친구들은 아예 숙소 앞에 먼저 가 있을 때도 있었다. 항상 혼자서 먼저 숙소에 도착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이름은 대경이었다. 웃는 게 서글서글했던 대경(닉네임은 기억이 나지 않고 이름이 기억난다)이가 다니던 학교가 바로 누나들의 숙소 옆에 있는 영동 고등학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먼저 누나들의 숙소에 도착할 수 있던 인물이 바로 대경이었다. 이런 걸 보면 인연이라고 해야 하나? 참 재밌으면서도 웃긴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숙소가 재학 중인 학교의 바로 옆에 있다니.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누나들의 스케줄이 없을 때면 청ㄷ빌라 앞에서 먼저 만나곤 했다. 그 다음에 밥을 먹든지, 노래방을 놀러 가든지 했으니까. 어느 날이었다. 당시 <요정 베이커리> 부시샵이던 '새벽 하늘' 누나가 금색 소나타 XG를 타고 숙소를 온 수영 누나(슈 본명)에게 싸인을 요청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숙소 앞에는 나와 '새벽 하늘' 누나, 그리고 '영원불멸'이었나? 3,4명 정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청ㄷ빌라에서는 바다 누나와 유진 누나만 함께 살았고 수영 누나는 부모님과 살고 있을 때여서 이렇게 종종 오곤 했다. 그날 '새벽 하늘'누나가 수영 누나에게 싸인을 요청했는데 웃픈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새벽 하늘' 누나의 본명이 '혜숙'이었는데 수영 누나가 잘못 알아 듣고 '혜숙'을 '혜죽'으로 쓴 것.


이렇게 아주 두꺼운 'ㅅ'자가 되었다

Dear. 혜죽


이렇게 말이다. '새벽 하늘' 누나도 그랬고 나와 '영원불멸'도 수영 누나 바로 옆에서 그 싸인을 보며


"누나, 혜죽이 아니라 혜숙인데..."


"언니, 혜숙이에요..."


"어머, 미안해"


수영 누나는 환하게 웃으며 잘못된 이름을 고쳐주었다. '혜죽'의 '죽', 더 정확하게는 'ㅈ'에 매직을 굵게 칠하며 'ㅅ'으로 바꿔주었다. 즉 결과적으로 아주 두꺼운 'ㅅ'이 된 것이었다.


"웬만하면 그냥 새로 다시 해줘"


라고 수영 누나의 어머니가 옆에서 말씀했지만 우리의 해맑은 수영 누나는 바로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겐 물어보지도 않고 매직을 들었다.


"아니야, 괜찮아. 이렇게 고쳐주면 돼"


출처 : 구글 (이때는 목ㅎ빌라)


그래서 '혜숙'이라는 본명의 '새벽 하늘' 누나는 그 날,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ㅅ'이 써있는 친필 싸인을 갖게 되었다. 수영 누나는 S.E.S. 활동을 할 때도 화 한 번 내지 않던 사람이었다. 방금 얘기한 '혜죽' 에피소드처럼 백치미가 있었지만 어쨌든 날개 없는 천사인 건 분명했다. 바다 누나는 기분파였고 유진 누나는 정말 노멀한 사람, 여기에 수영 누나는 항상 늘 팬들에게 아이처럼 웃어주기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착해도 너무 착한 게 탈이었던 사람. 연예인을 하기에는 손해볼 게 너무나도 많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수영 누나였다. 그렇게 수영 누나가 어머니하고 숙소로 들어가고 난 후.


"수영 누나 왜 저래?"


"그냥 새로 해주지"


정작 '새벽 하늘' 누나는 괜찮다며 어이없이 웃고 있기는 했지만 나와 '영원불멸'은 수영 누나의 뒷담화(?)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세상에 혜죽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어딨겠어? 본인이 싸인하면서도 알지 않았을까?"


"백치미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지금 생각해도 내게 있어서는 절대로 잊지 못 할 에피소드 중 하나다. 시간도 많았고 팬들도 우리 밖에 없었는데 그냥 좀 다시 해주지.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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