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글 Sep 24. 2018

비를 맞는 방법

비 오던 날의 우리

그는 내가 만난 사람  가장 유별난 사람이었다. 데이트 중에  색다른 에피소드 하나는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래서 다이내믹이라는 말이   어울리던 사람. 특별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던 그의 말을 여느 남자들의 입바른 소리라고 치부했던 나에게 그는 보란 듯이 자신의 말을 몸소 실현했다. 그와 영화를 보고 나온 후에는 ‘하나, 둘, 셋’ 하면 기억에 남는 대사를 동시에 외치는 과정이 필수 코스였다. 또 한복 데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전주 한옥마을의  한복 매장에서  하나와 남자용 두루마기를 나에게 건네며 본인은 흰색 저고리와 연분홍색 치마를 들고 수줍게 탈의실로 들어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만나면 항상 “오늘은 이거 하자.”라는 말로 말문을 열었는데, 그날은 장마철이라 비가 아침부터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는 나의 우산을 뺏어 들더니 “오늘은 그냥  맞는 날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그의 당황스러운 제안에도 내가 항상 고개를 끄덕이는  추억할  생긴다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회상할 무언가가 있다는 뿌듯한 느낌 같은  말이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는지 신기하기도 했고. 그는 똑같은 디자인의 우비  개를 나에게 건넸다. 포장 봉투에는 어린이용이라는 글자가 버젓이 쓰여 있었다. “이것도 계획된 거야?”라는 나의 물음에 그는 “아니, 이건 나도 당황스러워.”라고 답했다. 등치가  있는 사람이라 어린이용 우비를 입고 있는 모양새가 불편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우비에 대충 몸을 끼워 넣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겉옷은 물론이고 속옷까지 흠뻑 젖어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손잡은 채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비틀면 물이  바가지 나올 만큼의 잔뜩 젖은 옷과 축축해진 신발은 이미 걱정 밖이었다. 그가 갑자기 우산을 펼쳐 영화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 우산 장면’을 따라 하지만 않았다면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그가 던진 제안이 비를 피하기 급급하던 나에게 비를 맞는 방법을 가르쳐줬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비가 미칠 듯이 쏟아질 때면 빗방울 때문에 눈도 제대로  떠서 잔뜩 찡그린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