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의 존재에 대하여
나는 연애 공백기를 오래 견디지 못하는 타입이다. 친구에게 전 애인과의 이별 소식을 전함과 동시에 외롭다는 말을 덧붙였을 때, 얼큰하게 취한 친구는 네 외로움은 삶에 성취감이 없어서 생긴 공허함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나의 외로움에 딴지를 거는 친구에게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어 바람 좀 쐬고 온다고 말한 뒤 술집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고는 잠시 생각했다. ‘외롭다는 말이 어떻게 성취감으로 귀결되지? 그래도 연애하면….’ 생각이 점점 딴 데로 빠지는 것 같아 이내 관두고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친구의 말을 옮겨 적었다. “남의 사랑이 널 채워주지 못한다는 걸 알아야 해. 네 외로움은 삶에 성취가 없어서 생긴 공허라니까?” 결코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지만 틀린 말이 아닌 건 분명했다. 휴학과 재학을 사이좋게 섞어가며 힘겹게 대학을 졸업하고 나날이 백수 신기록을 세워가는 내 생활은 말 그대로 건조하고 재미없었다. 성취감은 기껏해야 장을 보면서 사야 할 목록에 동그라미 치며 맛보는 정도. 그래서 나는 늘 인정받고 싶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사람, 그게 나에겐 애인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이나 영화가 뭐야?’라고 묻는 애인의 질문에 답하며 내 취향을 다시 알아가고 애인이 말해주는 애정 섞인 나의 장점에 취해 ‘나 이렇게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깨닫는 일. 연애는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뿌듯함을 부여한다. 두 명이 완성하는 연인의 조건에서 내가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책임감. 나에게 연애는 나를 발견하고 인정받는 과정인 셈이다. 이 사실에 중독돼서 끊임없이 연애했다. 이런 나의 연애관을 두고 누군가는 진짜 사랑이 맞냐며 비난할지도 모른다. 남의 사랑에 의존하지 말고 성취감을 찾으라는 친구의 말이 명확한 정답인 것도 안다. 치부를 들켰다는 생각에 비겁하게 문을 열고 도망친 거다. 취기 오른 몸이 좀 더 차가워져 문득 쓸쓸해졌다. 나는 메모장을 닫고 전 애인과의 메신저 대화창을 열었다. 모르겠다. 지금 나에겐 친구가 내려준 정답보다 멋없는 내 일상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