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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닥다리 에디 Sep 23. 2021

'환승연애'보느라 책 읽을 시간이 줄었다

독서 시간을 위협하는 영상 콘텐츠들의 범람

이따금 영상물을 볼 때 정신이 더러 아득해질 때가 있다. 평소엔 더디 가던 시간이 쏜살같이 달리는 기분. 이따금 재미난 책을 볼 때 느꼈던 경험과 비슷할뿐더러 가끔은 그 몰입감이 재미난 책 읽을 때보다 더 무서우리만치 나올 때도 있다. 전파를 권하고 장려해도 도통 볼 생각이 없어 보이는 직장 동료들을 제외하고 내 주위(라고 해야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영상물에 흠뻑 심취한 요즘이다.


‘환승연애’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언뜻 보기엔 파격적인 설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전체 네 커플이 프로그램 내에서 ‘X’라고 불리는 각자의 앞 전 연애 상대자와 함께 일정 기간 동안 한 집에서 생활한다.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관찰 카메라에 담긴다. 누군가는 전 연인에 대한 미련이,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상대를 찾아나가는 모습이 집 안 곳곳의 카메라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대방의 마음을 쟁취하기 위한 각자의 고군분투와 책략, 전략과 전술을 감상할 수 있다.

제작진이 설정한 교묘하고 때론 악랄한 설정 안에서 출연자들의 마음은 요동 친다. 잘 가는 듯하다가도 급커브를 꺾는가 하면, 갈팡질팡 술 취한 듯한 행보를 걷다가도 그놈의 ‘옛정’을 못 잊어 다시금 옛 연인에게 구애를 하기도 한다. 출연자들 개개인 모두 하나같이 똑똑하고 현명하며 이렇게 말 잘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놈의 사랑의 감정이 뭐길래, 몹시도 불합리한 선택과 결정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이들의 대소사는 편집된 결과물이며 이들의 심리 모두가 화면 안에 담겼을 리 만무하다. 지극히 일부분으로 우린 그들의 심리를 넘겨짚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의 복잡 다난한 일상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보며 나를 비롯한 시청자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인물들의 심리를 전달받는 시청자 입장에선 각자의 결정이 때론 무모해 보이고 비이성적이어 보일 때 있으며 심지어 야속하고 서운하기까지 할 때 있다.


물론 ‘사랑’의 감정 자체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감정이  아님을 잘 안다. 잘 보이려 애쓰고 싶고,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더 부풀려서 내보이고 싶은 마음. 그 모습은 각자만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가장 내밀한 감정일 것이다. 사랑의 쟁취라는 목적 아래 쓰지 못할 전략이란 없다. 그것이 옳다. 그 누구보다 이기적일 수 있고 그럼에도 면피가 가능한 영역이기도 하다. 원래 그런 것이 맞다.


사랑이라는 대의 앞에 스스로를 지나치게 포장하기도 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근사하게 거절하는 모습을 보이다가도 스스로 내뱉은 말을 번복하거나, 갈팡질팡 하며 여러 이성들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기도 한다. 그 적나라한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반대로 비난할 때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일반인 출연자임에도 이들은 너무나도 수려하게 말을 하고 각자 자기만의 철학과 생각이 틀이 확고한 사람들로 보였다. 그런 그들이기에 시간이 지나며 더 선명해지는 그들의 행보가 아쉬웠다. 그들의 작은 실수를, 혹은 일말의 주저함이나 때론 무모함을 탓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들의 불합리적 면모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타인에겐 그럴듯하게 포장하려는 나 자신과 실제로 누구보다 이기적이며 치졸하기까지 한 내 모습이 교차해서 보였다. 저 멀리서 내 인생을 조망한다고 했을 때 난 몹시 줏대 없고 수없이 말을 바꾸는 졸렬한 모습으로 비춰보이지 않을까. 감히 누군가에게 내 일상을 내보일 아주 눈곱만큼의 용기도 나는 낼 수 없다. 덕분에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겸허하고 겸손해진다.


책을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가다듬을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생각할 소재를 얻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 이들의 인터뷰 속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겐 근사한 대사와도 같이 느껴질 때 있었고, 이들의 일상이 곧 에세이와도 같았다. 다음 화가 기다려짐은 물론 이 티빙 오리지널 콘텐츠를 위해 티빙 결제까지 한 내 모습을 보면서 텍스트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올해 본 책들 중 다음 챕터가 기다려지는 책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하며.


오늘을 마지막으로 서울 국제도서전의 막이 내렸다. 해마다 열리는 가장 거대한 도서 축제, 부스의 치장을 제외하고 과연 과거와 달리 무엇이 변했고 무엇이 변치 않았을까. 변치 않아도 될까. 환승 연애에 집중하는 2시간 남짓, 그만큼의 시간만큼 내 독서 시간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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