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게 먹을 땐 행복론자 <슬며들기>
넌 무슨 음식을 제일 좋아해?
라는 질문을 받으면 꽤나 난감하다. 난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다. 살면서 ‘와 진짜 미치게 맛있다’라고 생각한 음식도 없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단 흰쌀밥이 전부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꼭 주기적으로 먹어줘야만 왠지 한 끼 제대로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엄마 집밥이 나의 최애 메뉴다.
게다가 나는 입도 매우 짧은 편인데, 그런 내가 가끔 ‘와 미쳤다. 정말 맛있잖아..’라고 생각하는 음식이 있긴 하다. 바로 제철 음식이다. 딱 추워지기 시작하는 요맘때 가리비와 굴이 제일 맛있는 계절이다. 나는 가리비 중에서도 달짝지근한 홍가리비를 제일 좋아한다. 굴은 사실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찜 쪄서 초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세상 꿀맛이다. 기억을 더듬어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던 굴을 떠올려보자면, 그곳은 통영도 고흥도 보령도 아니었다. 일본 도쿄의 지요다구였다.
어느 지상철 철도 밑 허름한 선술집에서 먹은 한 개에 만 원짜리 굴을 내 인생 최고의 굴로 꼽을 수 있다. 아~ 맛이 어느 정도 충격적이었냐면 입에 녹자마자 사라지는 한 마리에 만 원짜리 벚굴을 영혼이 팔린 듯 추가 주문했을 정도였다. 가난한 백수가 아니었다면 "모우 히토츠 쿠다사이"를 계속 외쳤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올해도 어김없이 제철 음식은 반드시 제철에 먹어야 최고로 맛있게 먹을 수 있기에 일찍 퇴근하는 날을 잘 골라 칼같이 정시 퇴근을 하고 조개찜 집으로 달려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찜을 먹고 있길래 우리도 얼른 조개찜 소자를 주문하고 맥주도 한 병 시켰다. 조개찜이 잘 쪄져 우리 테이블에 도착했고 나는 국물부터 한 숟갈. 진하다. 적당히 매콤하고 매콤한 국물이 지금 추위에, 정말 완벽한 술안주! 환상의 조합이다.
직장인으로서 회사 일이 정말 거지 같을 때,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어서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퇴근 후 먹는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은 내일 또 일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다. 술 한 잔에 쏟아내는 한탄과 위로도 한 몫하지만 그중 가장 큰 동기부여는 돈 벌어야 또 사 먹을 수 있기 때문인 하찮지만 큰 이유.
2021년 아무도 모르게 만든 SNS 계정에 기록한 글을 끄집어내어 딱 1년이 지난 지금 발행해 본다. 아직도 직장인으로서 회사 일이 정말 힘들고 거지 같을 때, 퇴근 후 먹는 맛있는 음식과 술 한잔으로 정말 버틸 수 있냐는 질문에 2022년 11월 21일 SNS에 쓴 글 중 "이렇게나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강하게 들면서 퇴사 후 궁핍한 생활이 두려워진다"라는 구절을 보며 여전히 "그럼 당연하지!라고 자신 있게 답해본다. 인생 뭐 있어? 먹는 게 남는 거다.
웨이팅이 있으니 오픈 타임에 맞춰서 가야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제철음식은 제철에 먹어야 제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