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 포르투갈
내게 문어는 제사상에 올라가는 음식 중 하나다. 그간 내가 먹어온 문어는 항상 질기고 치아 사이에 껴서 빼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뿐이라 문어를 썩 좋아하진 않는다. 부드럽다는 문어숙회도 어쩐지 손이 잘 안 간다.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자, 유럽에서 로맨틱한 도시로 손꼽히는 포르투. 사실 포르투로 떠난 이유는 단순했다. SNS에서 본 동루이스 다리의 야경이 너무 예뻤기 때문에. 어쩌면 부다페스트의 야경보다 더 예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진 한 장으로 떠난 포르투, 그곳에서 최고의 문어요리를 먹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밤늦게 도착한 포르투는 주황빛의 도시였다. 호스텔을 찾아가는 골목길은 어두웠지만, 주황빛으로 빛나는 도시가 어두움을 잊게 해 줬다.
다음날 느즈막히 일어나 조식을 먹으며 바라보는 포르투는 잔잔하다. 강 건너편에 위치한 호스텔 덕분에 도시 전체를 조망하기 좋았다. 관광지에서 살짝 떨어져 있지만 그 덕분에 조용하게 강변을 따라 산책하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도시 자체가 작아 모든 이동은 도보로 가능하기 때문에 관광지에서 벗어난 숙소쯤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포르투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의 수식어가 붙은 곳이 많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카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
그리고 내 맘대로 붙여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
맥도널드는 화려한 외관과 천장을 자랑하고,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풍경으로 꾸며두어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에서 햄버거를 하나 먹어주고 아름다운 카페 '마제스틱'으로 향했다. J.K롤링이 해리포터를 쓸 때 영감을 받았던 카페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지만 높은 천장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저렴한 가격에 만끽할 수 있다. 이 기세를 몰아 해리포터의 배경이 된 렐루서점도 다녀왔다. 해리포터스튜디오에서 구매한 슬리데린 망토를 입고 방문하니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사진을 찍자고 요청하는 각국의 여행자들.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은 상벤투역이다. 포르투에서 열흘을 머물면서 중간에 호스텔을 한번 옮겼는데, 상벤투역 바로 옆에 위치한 호스텔이었다. 기차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고, 기차 소리를 알람 삼아 잠에서 깼던 숙소다.
포르투는 세비야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채로웠다. 오래된 건물과 좁은 골목길 사이로 노란 트램이 다니는 곳. 모든 골목길이 아기자기해 걷는 재미가 있었기에 굳이 지도를 보고 싶지 않았다. 푸른 타일과 아줄레주 양식을 이용한 도시 디자인과 함께 거리 곳곳에 예술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 쉬지 않고 두리번거렸다.
일몰 시간이 다가오자 포르투에 온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도시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일몰 스팟, 모로 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돗자리를 깔고 자리 잡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두고 타입랩스를 세팅하는 이들도 있었다. 포르투에서 길게 머무는 만큼 첫날은 눈으로 담고 싶어서 공원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해 질 녘 보랏빛에서 푸른빛, 붉은빛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포르투의 하늘은 한 편의 그림처럼 아름다웠고,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거리의 주황빛 조명들이 포르투 일몰의 색감과 잘 어우러졌다. 빨간 지붕의 건물 높이가 낮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보기에도 걸리는 것이 없었다. 어느덧 해가 지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나를 포르투로 이끌게 한 동루이스 다리에도 불이 켜졌다. 별안간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예쁜 도시가 다 있다니. 내 기준 부다페스트보다 예쁜 포르투였다.
하루종일 먹은 것은 호스텔의 조식과 맥도널드 햄버거, 카페에서 커피 한 잔뿐.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문어가 맛있다는 얘기를 듣고 식당으로 향했다. 문어는 포르투갈어로 뽈뽀(Polpo)다. 어느 식당에 가든지 'Polpo'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식당으로 향했더니 영어로 된 메뉴판조차 없다.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작은 식당. 영어 메뉴판이 없는데, 영어가 통할 리가 없다. 간신히 번역기를 돌려서 문어 요리를 주문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나온 문어 요리, 투박한 문어 다리와 삶은 감자가 양념에 버무려져 있다.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고 문어다리를 썰어보는데, 이게 웬걸. 이렇게 부드럽게 썰리는 문어라니. 돈가스나 스테이크를 먹을 때 미리 다 썰어두고 포크로 하나씩 집어먹는 나였지만, 부드럽게 썰리는 문어를 보고 허겁지겁 한 조각을 입에 욱여넣었다. 몇 번 씹지도 않았는데 사라지는 문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드러움이었다. 이렇게 부드러운 문어 아니 이렇게까지 부드러운 음식이 또 있을까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부드러움이다. 혹시 주문한 문어요리가 실패할까 봐 추가로 주문한 치킨 스테이크가 뒤이어 나왔지만, 문어 접시를 다 비우고, 치킨을 남겼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문어로 가득한 입을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치킨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분명 문어 다리는 두꺼웠는데, 쫄깃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할 수 있다니. 주방장에게 한국행 티켓을 선물하고 싶을 만큼 맛있는 문어였다. 잊지 못하고 다음날 또 찾아간 식당. 여전히 영어는 통하지 않지만, 주인 할아버지는 전날 방문했던 동양인의 여자를 알아본 것인지 옅은 미소를 보였다.(문어가 너무 맛있어서 내가 착각한 미소일 수도 있다.) 문어밥과 문어튀김을 주문했다. 담백하고 간도 적절하게 잘 돼 있어서 물리지도 질리지도 않고 먹을 수 있는 맛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꽤 됐지만, 여전히 그때 먹은 문어요리는 잊을 수 없다.
도시도, 야경도, 문어도 그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던 포르투. 유럽에서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런던과 에든버러 이후 포르투를 세 번째로 꼽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