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비야, 스페인
세비야 기차역에서 역사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본 세비야는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도시였다. 흙색의 그라나다에서 떠나온 탓일까. 기차역에서 시가지 방향으로 이어진 길의 울퉁불퉁한 돌길과 칠이 벗겨진 저층의 멘션 같은 건물이 알록달록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세비야의 나무는 그라나다보다 더 풍성한 오렌지가 열려있었다. 2월에도 오렌지가 열리는 태양이 작열하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의 중심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주황빛으로 반짝이는 오렌지가 탐스러워 보였다.
어차피 저 오렌지도 레몬보다 시겠지.
무엇보다 세비야는 그라나다와 다르게 공공재가 아닐 수도 있으니까 섣불리 따먹지 않으리.
세비야의 하늘은 뜨겁고 진한 파란색이었다. 바르셀로나와 그라나다에서는 따사로운 햇살 속에서도 나무 그늘 밑은 서늘했는데, 세비야는 그렇지 않았다. 파란 하늘과 채도 높은 주황색의 오렌지가 자꾸만 시선을 위로 향하게 했다. 세비야 골목길의 오렌지 나무는 여행 내내 곳곳에서 보였다. 세비야의 가로수는 오렌지 나무였던 것이다. 시가지의 큰 인도는 말할 것도 없고, 골목길을 따라 쭉 뻗어있는 오렌지 나무.
체크인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니 이곳의 오렌지 나무도 공공재라고 한다. 그라나다에서 맛보았던 오렌지를 기억했음에도 탐스러워 보이는 오렌지를 참지 못하고 하나 따버렸다. 레몬보다 신 맛일 거야.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껍질을 다 까고 입 안으로 넣어버렸다.
웩.
넣자마자 뱉어버린 오렌지 한 알. 마트나 시장에서 사 먹는 오렌지는 달디단데 나무에 열린 오렌지는 왜 이리도 시단 말인가.
알고 보니 시장이나 마트에 납품되는 오렌지는 안달루시아 지역 농장에서 식용으로 별도로 생산된다고 한다. 재배 방법이 궁금할 만큼 맛의 차이가 크다. 가로수의 오렌지 열매는 맛과 품질이 떨어지고 설령 식용으로 쓰더라도 착즙 주스로는 먹을 수 없고 와인이나 잼을 만들 때 첨가하는 부재료 등 한정된 용도로 사용한다고 한다. 길가에 떨어진 오렌지는 시가지에서 마차를 끄는 말들이 먹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현지인들은 가로수의 오렌지를 절대 건드리지 않고 땅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쓸모없는 과일로 취급한다. 쓸모없는 과일을 내가 한 알이나 먹었다. 나무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이유가 있다.
오렌지 나무를 따라 세비야 스페인 광장으로 향했다. 스페인의 도시마다 있는 스페인 광장이지만,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은 특히 유명하다. 규모가 큰 탓에 아름다움에 압도당한다. 탁 트인 굴곡진 광장에서는 프릴이 가득 달린 붉은 드레스를 입고 플라멩코를 추는 사람, 버스킹 하는 사람 등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광장 가운데 서 있으니 입안에 아직 오렌지의 신맛이 남아있음에도 행복이 밀려온다.
분수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성이다 보니 시원한 물줄기가 빨간색과 파란색, 연두색 등 다양한 색을 뽐낸다.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찾아왔다는 증거다. 밤이 되어 식은 공기가 옷깃으로 스며들지만, 춥지 않다. 진한 파란색의 하늘은 깨끗한 검은색이 됐고, 오렌지 나무는 여전히 높은 채도를 자랑한다. 조명을 밝힌 골목이 환하게 빛난다. 밤이 돼서야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동글동글한 모양과 원색적인 건물. 플라멩코를 출 때 입는 드레스 때문인지 빨간색이 떠오르는 세비야인데, 노란색의 건물도 보인다. 빨간색의 드레스와 노란색의 건물, 오렌지 가로수, 진한 파란색의 하늘. 세비야는 어쩐지 다채로운 색감의 축제가 열리는 도시 같다.
번외) 세비야에서 생긴 일
묵고 있던 호스텔에서 스탭 제의를 받았다. 총 5명의 스탭 중 한 명이 이번주에 그만둔다는 것. 우리나라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처럼 스탭은 자국민을 채용하는 줄 알았는데 유럽은 그게 아닌가 보다.
무비자로 90일까지 여행이 가능하기에 남은 기간만큼 스탭으로 일하면 숙식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이었다. 숙식이 제공되기에 페이는 없지만, 일하는 시간은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오후 5시 전까지는 근교 여행을 하면서 여행자의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흔들렸다. 다채로운 세비야에서 나흘을 머물면서 귀국을 미루고 근교를 좀 더 둘러보고 싶었던 찰나에 받은 제안인만큼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하는 일은 단순했다. 오후에 일하는 만큼 여행자들의 체크인을 도와주고, 매일 저녁 7시 여행자들에게 제공되는 샹그리아를 만드는 것.
부모님과 상의를 해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현지 스탭으로 일하며 여행을 연장해도 괜찮을지 어차피 결정은 내가 하겠지만, 예의상 물어는 봐야 했다.
"엄마 세비야에서 호스텔 스탭 제의를 받았어. 무비자로 90일까지 체류가 가능하니까 그만큼만 일해줄 수 있겠냐는데 보수는 없지만 숙식 제공은 되고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90일? 그럼 집에 언제 오는데?"
"지금 내가 40일 정도 여행했으니까 50일 정도 더 있다가 들어가겠지? 한 달 반정도?"
"안전한 거야?"
"응 어차피 다 여행자들이 모인 곳인데 뭐."
"그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당연히 안된다고 할 줄 알았던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서 조금은 놀랐다. 내가 보고 싶지도 않은가. 어쩐지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게 스텝을 제안한 매니저에게 하루만 고민해 보겠다는 말을 하고, 만약 내가 스탭으로 일한다면 어디서 묵게 되는지를 물어봤는데, 이게 단념의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스탭의 성비는 남자 4명과 여자 1명이었다. 이번주에 그만두는 스탭은 여자였고, 스탭의 방은 6인실 mix room에서 다 같이 생활한다고 했다. 여행자들에게 제공할 방이 모자라지면 스탭 방에서 남은 침대 하나를 제공하고 있었기에 남자 5명과 생활할 때도 있었고, 여자 2명과 생활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저렴하다는 이유로 mix room을 고집했던 나지만, 매일 같은 남자 4명과 한 달을 사는 것은 어쩐지 무서웠다.
남자 여행객들도 많은데, 영어도 서툰 나에게 스탭 제안을 한 이유가 뭐야?
조금 전까지 스탭으로 일하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혼성 스탭방이라는 말에 겁을 먹은 나였다. 차라리 여행자들과 함께 쓰는 mix room을 사용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가능여부를 물었더니 그건 안된다고 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도 mix room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길래 제안은 고맙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할 일이 있다며 에둘러 거절했다.
이루지 못한 워홀러의 삶을 세비야에서 무보수로나마 이뤄볼 기회였는데, 아쉽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