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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진통인가.

by 우연

진통은 생리통의 100배라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던 터라 버틸만하다고 생각하며 남편에게 가진통과 진진통의 차이를 검색해 달라고 했다. 가진통은 아랫배가 아프고, 진진통은 허리와 다리까지 아프다는 남편의 말. 계속 아랫배만 아프니 아직 가진통이라는 생각으로 5시간을 버텼다. 평소에도 생리통이 심했던 나는 생리통 수준의 통증이 진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병원에 전화해 보니 진통 주기가 5분 간격으로 짧아지면 오라고 한다. 3분 간격이 됐음에도 자궁 문이 하나도 열린 것 같지 않아 버티던 순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보다는 병원에서 버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아이 셋을 출산한 교회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에 미안한데 내가 밤 11시부터 진통을 느끼다가 이제 주기가 3분 간격으로 짧아졌거든. 근데 느낌이 하나도 안 열렸을 것 같단 말이야. 그래도 병원에 가는 게 맞을까?"

"언니 일단 주기가 짧아졌으면 병원 가야 해요, 병원에서 내진하다 보면 열릴 수도 있으니까 일단 병원 가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 가는 길에 진통이 3번이 걸려 가다 쉬기를 반복하느라 20분도 넘게 걸린 병원이다. 접수부터 침대에 눕히는 것까지 남편이 모든 걸 해준다. 그리고 간호사의 말에 문밖으로 나가야 하는 남편.


'설마 남편이 계속 나가 있는 건 아니겠지.' 두려움이 엄습한다.


남편이 없는 채로 간호사는 내 손에 링거를 꽂는다. 진통제인가 싶어서 물어보니 자궁수축제라고 한다. 자궁수축제가 들어오니 통증이 점점 세진다. 마치 굵은 송곳 몇백 개가 뱃속에서 이리저리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며 장기를 난도질하는 느낌이다. 그때 배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다. 진통 세기를 측정하는 기기다. 아파서 몸부림을 치니 똑바로 누워있어야 진통 세기를 측정할 수 있다던 간호사. 이내 위생 장갑을 낀다.


"내진할게요."


새벽이라 그런 걸까. 목소리에는 무뚝뚝함과 함께 피곤함이 묻어있다.


"하나도 안 열렸어요."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단 1cm도 열리지 않은 자궁문, 여기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이러다 유도분만으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아픈 와중에도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내진하고 나니 몸이 덜덜 떨린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지만, 임신 기간은 추위보다 더위를 더 많이 느꼈기에 갑자기 찾아온 추위가 낯설다. 얇은 병원 이불을 주섬주섬 덮고 추위를 버텨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위생 장갑을 끼고 들어오는 간호사. 두 번째 내진이다.


"3cm 열렸네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3cm가 열렸다는 말에 놀랐다.


'원래 이렇게 빨리 열리나?'


3cm 열렸다는 말에 남편이 들어와 손을 잡아준다. 3cm가 열려서일까. 진통의 세기는 더 강해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후- 하-


남편과 함께 호흡해 보지만 진통이 약해지진 않는다. 다시 간호사가 들어온다.


"관장할게요. 남편분 잠깐 나가 계세요."


관장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생각했다.


'관장은 애 낳기 직전에 하는 거 아닌가? 나 오늘 애 낳아?'


관장이 끝나고 분만실로 이동한다. 분만실로 이동 후 급속도로 열리는 자궁문. 간호사들의 호흡도 빨라진다.


"내진할게요. 남편분 나가 계세요."

"7cm 열렸어요, 선생님 호출할게요!"


세 번째 내진에 7cm가 열렸다.


“선생님 저 무통 놔주시면 안돼요?”


내진할수록 빠르게 열리는 자궁문과 거세지는 통증으로 무통 주사가 맞고 싶다고 말했다.


"아직 내막이 두꺼워서 무통 맞아도 소용이 없어요, 오히려 지금 무통 맞으면 통증을 못 느껴서 나중에 힘줘야 할 때 힘을 못 주기 때문에 분만까지 지연될 수도 있어요. 좀만 더 버텨요. 엄마!"


진통의 세기가 점점 거세진다. 고통에 몸부림을 쳐보지만 역부족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선생님은 어디 사시길래 이렇게 안 오시는 걸까. 고통 속의 기다림 끝에 주치의 선생님이 오셨다.


"어? 진통이 꽤 센데? 무통 지금 놔줄까?"

"뭐가 두꺼워서 지금 맞으면 안 된다던데요."

"그렇긴 한데 나는 진통이 세면 그냥 놔주긴 해요, 지금 맞을까?"

"그럼 5분만 더 버텨볼게요."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찾아오는 거센 진통에 내뱉은 말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뱉은 말이 있으니 꼼짝없이 5분을 더 버텨야 한다. 약속의 시간이 흐르고 무통을 맞을 시간이 왔다. 무통은 수술실로 이동해서 맞아야 한다는 말에 휠체어에 몸을 싣는다. 건너편 수술실까지 성인의 걸음으로 다섯 걸음 남짓. 짧은 사이에 진통이 세 번이나 걸렸다. 겨우겨우 도착한 수술실에서 침대에 오르기까지 두 번이나 진통이 또 걸렸다.


무통은 팔뚝이나 엉덩이에 맞는 주사가 아니다. 척추에 맞아야 하므로 몸을 새우처럼 동그랗게 말아야 한다. 만삭의 임산부는 배가 나왔기 때문에 몸을 동그랗게 마는 것도 쉽지 않은데, 거기에 진통까지 참아야 하니 산 넘어 산이다.


어찌어찌 몸을 말고 이를 악문 채 진통을 참는다. 척추에 차가운 알코올 솜이 닿는 게 느껴진다. 잠깐의 따끔거림. 주삿바늘이 들어오고 선생님이 설명한다.


"무통을 맞는다고 통증이 제로가 되는 건 아니지만, 10이었던 통증이 3 정도로 줄어들 거예요."


분만실로 이동 후 생각했다.

이제 나도 무통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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