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기간 동안 지옥철로 불리는 9호선을 버텨가며 악착같이 출퇴근하던 나는 37주까지 회사에 다녔다. 같은 본부에 있던 임산부가 36주에 휴직을 들어가면서 내게 해준 말이 있다.
"과장님 제발 32주에 휴직 들어가세요, 34주가 넘어가니까 너무 힘들어요."
언제쯤 휴직에 들어가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11월 30일, 즉 38주 3일까지 출근을 해야 2024년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악착같이 출근하고 있었다. 임신 전부터 크로스핏을 꾸준히 해왔고, 임신 기간에도 꾸준히 운동을 해왔던 터라 몸은 무거워도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실제로 34주가 넘어가는 순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몸 상태에 깨달았다.
'아 왜 32주에 휴직하라고 했는지 알겠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말할 때도 계속 숨이 찬다. 배는 자꾸 뭉치고,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프다. 환도가 서는 바람에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조차 곤혹이다. 설상가상으로 자궁이 눌리면서 화장실은 20분마다 한 번씩 가게 됐다. 밤에 잠을 계속 설치는 바람에 근무시간에 자꾸 잠이 쏟아진다. 신생아처럼 잠이 쏟아진다는 임신 초기에도 회사에서 졸지 않았는데, 34주부터 꾸벅꾸벅 조는 횟수가 잦아졌다.
34주 정기 검진 때 아이가 횡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머리가 위로 향하는 역아, 옆으로 누워있는 횡아의 자세는 자연분만을 할 수 없다. 역아보다 횡아가 더 많이 갈라야 하고, 수술 방법도 더 어렵다고 한다. 자연분만보다 제왕절개가 더 무서웠던 나는 34주부터 역아 돌리기 운동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거뜬히 해내는 동작들이지만, 만삭의 배로는 동작 하나하나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아의 머리가 아래로 향하기를 바라며 힘든 동작을 해낸다. 36주 9일, 태아의 머리가 아래로 향해 자연분만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기뻐했다. 운동한 나도 고생했지만, 커진 몸으로 좁은 자궁에서 도느라 고생한 태아를 어루만지며 연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37주. 드디어 정기산이다. 성과급을 위해 버텨온 힘겨운 하루하루가 스쳐 지나간다. 이제 10일만 더 버티면 된다. 예정일까지는 아직 3주나 남았고, 첫 아이는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기에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돼 매일 밤을 기도했다.
'38주 3일까지 큰 이벤트 없이 지나가게 해 주세요.'
37주 0일, 모든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팀원들에게 퇴근 인사를 하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당장 오늘 밤에 애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주수네요."
퇴근길 내뱉은 말이 씨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퇴근하자마자 샤워하고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해 침대에서 정신없이 자고 일어나니 3시간이 흘러있었다. 남편이 퇴근하는 소리도 듣지 못한 채 잠만 잔 것이다. 비몽사몽으로 일어나서 남편과 대화하고 잠자리에 든 밤 11시.
11시 30분부터 활발해지는 태동에 그러려니 하면서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아랫배가 싸르르 아파지면서 평소와 다른 태동이 이상하다. 약 2주 전부터 밤마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겨왔는데, 이날은 활발한 태동과 함께 통증이 동반됐다. 깜빡 잠이 들고, 다시 한번 통증에 눈을 뜨니 20분이 지나있다.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감지하고 진통 주기 어플을 실행했다.
20분, 15분, 10분, 7분…. 점점 짧아지는 통증. 이 와중에 성과급이 떠올라 배를 어루만지면서 '너 지금 나오면 안 돼, 열흘만 기다려줘 제발.'을 내뱉는 모습이 슬프면서 웃기다.
너 정말 오늘 나오려는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