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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30분의 진통이 끝났다

2024.11.21. 10:20 am. 3030g 남아 탄생

by 우연

척추에 차가운 약이 도는 느낌이 들자, ‘말로만 듣던 무통 천국이 내게도 찾아오는 건가’ 기대했다. 10이었던 통증이 3으로 줄어든다고 했는데 내가 느끼는 통증은 7 또는 8이었다. 그렇다. 나는 무통이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분만실로 이동 후에도 통증이 지속되자 간호사는 말했다.


"엄마 통증 느껴질 때마다 그냥 힘 주자. 아프면 그냥 계속 힘주세요."


지금 내가 믿을 사람은 간호사와 의사뿐이다.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양손으로 허벅지를 잡고 힘을 아래로 보냈다. 소리 지르면 얼굴에만 힘이 들어가서 아래로 힘이 가지 않으니 소리 지르지 말라던 간호사. 출산 시 힘을 주는 소리는 '악!'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힘을 주는 소리는 '흡-'이다. 계속해서 아래로 힘을 보내던 중 나도 모르게 얼굴에 힘이 들어갔고 소리가 새어 나갔다.


악!


그 순간 태아의 심장박동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160으로 뛰던 심장 박동수가 빠르게 떨어져 50을 찍은 상황. 헐레벌떡 선생님이 들어왔다.


"엄마 소리 내면 안 돼요. 호흡해요 호흡. 아기한테 산소 보내줘야지."


고통 속에서도 순간적으로 떨어지는 심장박동수를 보자마자 무서워졌다. 자연분만이 하고 싶어서 역아 돌리기 운동까지 했던 나였기에 태아의 호흡이 불안정해지면 응급 제왕으로 넘어가게 될까 두려웠다. 그때부터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간호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내진을 한 뒤 간호사가 양수를 터뜨리며 말한다.


"어? 머리 보인다. 엄마 좀만 더 힘내자."


머리가 보인다는 말에 선생님이 들어온다.


"엄마 힘을 잘 주네, 오전에 애 낳을 수 있겠다. 다시 힘줘보자!"

흡-

"더 더 더! 엄마 한 번만 더!“

흐읍-

“엄마 마지막!”

흐으읍-


몇 번이고 반복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힘 주라는 말에 아기가 나오기를 바라며 힘을 주었다.


“이제 힘 빼세요!"

"엄마 힘 빼요. 힘!!"


출산할 때 힘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힘 빼기라고 누가 그랬던가. 정신없이 힘을 주다가 힘을 쫙 빼고 나니 몸이 덜덜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힌다. 그때 들려오는 울음소리.


"으앙~ 응애! 응애!"

"2024년 11월 21일 10시 20분 남아 출생입니다."


젖 먹던 힘까지 쥐어 짜낸 후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태어난 아기. 태어나자마자 30분 정도 캥거루 케어가 가능했던 병원이었기에 태지로 뒤덮인 아기를 품에 안았다. 갓 태어난 아기의 말랑말랑한 살이 느껴지고 체온의 따뜻함이 전해진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동안 선생님은 태반을 빼내고 회음부를 꿰매는 후처치가 한창이다. 태반이 빠지자, 왠지 모르게 한기로 덜덜 떨리던 몸. 갓 태어난 아이의 체온이 닿자, 한 겨울 따뜻한 카페에 들어와 라떼 한잔을 마실 때처럼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다.


"엄마 너무 수고했어요, 힘을 엄청나게 잘 주네! 수고했다 수고했어."

"여보 고생했어. 너무 고생 많았어."


선생님도 남편도 여기저기서 내게 고생했다는 말을 건넨다. 나도 아기를 안으며 나지막히 내뱉어본다.


"우리 아가 엄마 뱃속에서 나오느라 고생 많았다. 정말 고생했어."

"아가한테 고생했다고 하는 거 보니 엄마는 엄마네."


책에서 봤다. 태아는 산도를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4번 회전하는데, 이 과정이 태아에게 절대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한다. 출산은 엄마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태아에게도 힘이 필요한 것이다. 자연분만을 택한 나였기에 아기와의 호흡이 중요했다. 나와 호흡을 맞추며 그런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온 아기를 꼭 끌어안으며 연신 내뱉었다. 고생했다고.


울고 있는 아기의 태명을 불러주며 품 안으로 꼭 안아주니 이내 울음을 그친다. 세상이 궁금해 3주나 일찍 엄마 아빠 곁으로 온 아기, 아빠 목소리를 듣더니 눈을 번쩍 뜨며 두리번거린다.


갓 태어난 아기가 원래 눈을 뜨는 건가?

말똥말똥한 두 눈을 두리번거리는 아기의 모습이 신기하다. 우리 아가 세상이 궁금했구나.


따뜻하게 안고 있던 아기를 씻기기 위해 간호사가 다시 데려가고, 남편과 둘이 남은 분만실. 어젯밤부터 정신없이 지나간 폭풍 같았던 시간.

'내가 정말 애를 낳은 건가?'

뭐가 뭔지 아직도 정신이 얼떨떨한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


'성과급이 날아갔다.'


출산하자마자 하는 생각이 성과급이라니. 이런 내가 엄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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