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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너

by 우연

후처치가 끝나고 나서도 회복실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두 시간을 덜덜 떨며 누워있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풀려 녹아내린 치즈처럼 휠체어를 타고 입원실로 이동했다. 인제야 무통이 효과를 발하는 건지, 호르몬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픔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젯밤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고 새벽부터 힘을 다 소진했지만, 이상하게 배가 고프진 않았다. 그래도 회복을 위해 밥은 먹어야 하니 입원실로 배달된 밥뚜껑을 열었다.


"미역국이 아니네?"


산모식은 당연히 미역국이라 생각했는데 된장국이라 당황했다. 하지만 문제 되진 않았다. 어차피 병원 밥은 맛이 없으니... 밥을 먹고 좀 자고 싶었는데, 밤을 꼴딱 새웠음에도 피곤하지 않았다. 출산 후에 나오는 어떠한 호르몬이 피곤을 잊게 만든다는 글을 본 것 같다. 시험기간 다량의 카페인을 마시고 잠이 오지 않는 각성상태 같았다.


“산모님, 화장실 다녀왔어요?”


간호사는 수시로 화장실에 다녀왔는지 체크했다. 출산 후 4시간 이내로 화장실에 가야 한다며, 4시간이 지난 후에 화장실에 가지 못했다면 꼭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제왕절개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액을 맞을 일도 없어서 물을 많이 섭취했고, 출산 후 3시간 만에 화장실에 갔다. 소변을 보기 위해 배에 힘주는 것은 둘째치고 회음부 통증 때문에 변기에 앉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 김에 병원 복도를 걸어봤다. 계속 누워만 있으면 회복도 더디기에 천천히 자주 걸어야 하며, 이때 현기증이 난다면 즉시 걷는 걸 멈춰야 한다. 오후가 되면서 마취가 풀렸고, 아랫도리의 고통이 생생히 느껴졌다. 장기가 쏟아질 것 같다는 제왕절개만큼 걷는 게 고통스럽진 않았지만, 아픈 건 매한가지. 한 발짝 한 발짝 조심히 내디디며 어기적거렸다.


누가 자연분만을 선불이라고 했던가. 진통이 선불이었다면 회음부 통증은 후불이다. 제왕절개는 오롯이 후불만 있을지 몰라도 자연분만은 선불, 후불 모두 있는 분만법이라고 생각한다.


출산 후 6시간이 지나면 아이를 만나러 갈 수 있다. 남편과 함께 깨끗하게 씻긴 아기를 보러 신생아실로 향했다. 신기하게도 아기를 보러 갈 생각을 하니 어기적거리면서도 회음부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기는 속싸개에 싸매인 채 두 눈을 꼭 감고 느리게 혀를 할짝대고 있었다. 방금 밥을 먹은 건지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의 모습으로 잠을 자는 듯했다. 아기 이름표에 적힌 나와 남편의 이름만이 내가 낳은 아기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너무 예쁘다."

"진짜 너무 예쁘다. 쟤가 내 뱃속에 있었어. 너무 신기해."


내 새끼라서 예쁜 걸까. 객관적으로 예쁘게 생긴 걸까. 친정 엄마는 내 새끼는 절대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고 했는데, 10여 명의 신생아가 모여있는 곳에서 우리 아기가 제일 예뻤다. 갓 태어난 신생아가 이렇게 예뻐도 되는 걸까. 유리창 너머에 있는 아기를 한참을 서서 바라봤다. 눈, 코, 입, 귀까지 모두 제자리에 위치한 아기 얼굴. 당연하지만, 완벽한 사람의 모습을 갖춘 아기가 신기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 아기가 내 뱃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복합적인 감정이 몰려왔다. 경이로움, 신비, 감사... 그 어떤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일렁거린 탓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가 정말 엄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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