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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심장

프롤로그

by 우연

2024년 봄, 우리 부부에게 하나의 이벤트가 생겼다. 결혼 8개월 차부터 준비하던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피임을 하지 않으면 뚝딱 생기는 줄 알았던 아이가 생기지 않아 초조했던 시기도 물론 있었다.


호들갑 떤다 할 진 모르겠지만 결혼하면 곧바로 아이를 갖고 싶었다. 요즘은 딩크(DINK, Double Income No Kids, 맞벌이 무자녀 가정)족을 선언한 부부가 많지만, 딩크족으로 살 생각은 없었다. 아이를 좋아했고, 결혼했으니 당연하게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임 및 불임의 경우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아이를 낳지 않으면 결혼을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빨리한 친구들의 자녀들을 보면서 아이를 통해 가정이 완성된다고 생각했다. 둘 뿐이던 삶이 더 다채로워지고 부모로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둘만 있을 때 행복감과 차원이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들떴다. 아파본 이만이 아픈 이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다고, 엄마가 돼 봐야 엄마의 마음도 어루만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혼한 해에 아이가 생길 줄 알았는데, 해가 바뀌자 초조해졌다. 생물학적인 나이가 노산에 가까워지면 임신이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일까. 최소 두 명 이상의 아이를 낳고 싶었기에 더더욱 하루라도 젊을 때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었다.


기대했던 달에 찾아오지 않은 아이를 회사 화장실에서 확인할 때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회사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화장실에서 울었던 시간.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났음에도 또 실망하고 싶지 않아 ‘기대하지 말자, 스트레스 때문에 며칠 미뤄지는 거겠지.’ 생각하며 테스트기를 미뤄왔다. 늘 테스트기에 실망한 다음 날 화장실에서 울어버렸기에 이번 달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아닌 아이가 찾아온 덕분에 예정일이 의미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퇴근하고 해 본 임신 테스트기에서 희미한 두 줄을 확인하고 눈을 비볐다. ‘너무 희미한데, 오류가 아닐까?’ 두어 개의 테스트기를 더 사용했다. 각기 다른 회사의 테스트기 세 개가 모두 희미한 두 줄을 보이고 있었다. 두 줄을 확인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임신한 건가?’ 의심이 계속되는 사이 남편이 퇴근했다.


아이가 생긴 사실은 누구나 그렇듯 아내가 먼저 알게 되니 대부분의 아내는 임신을 알리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두며 남편의 반응을 기록한다. 당시 나는 믿기지 않는 얼떨떨한 정신으로 카메라 세팅 따윈 잊어버렸고, 세 개의 테스트기를 보여주며 한마디 했다.


“나 임신한 것 같아.”


덤덤하게 말했는데 남편은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던지고 내 손에 쥐어진 테스트기를 확인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남편은 테스트기를 확인하자마자 눈물을 글썽였다. 평소 남편의 눈물이라면 울지 않았을 나지만, 남편이 눈물을 보이자 왜인지 모르게 나도 눈물이 났다.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를 안고 들어 올리려던 남편이 순간 멈칫하며 “아이고 조심해야지!” 나오지도 않은 배를 만지는 귀여운 남편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상황에서 어떤 병원을 선택해야 할지도 몰라 단순하게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선택했던 병원이 마음고생의 시작이었다.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하는 시기는 극 초기이기 때문에, 병원에 가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시약선이 테스트선을 역전했을 때 병원을 방문해야 아기집을 볼 수 있고, 아기집을 본 후 최소 일주일이 흘러야 난황을 확인할 수 있다. 난황을 확인했다면 또다시 1~2주를 기다려야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 것을 몰랐던 초보 부모는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확인한 날 병원으로 향했다. 일련의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조차 안내해 주지 않은 채 초음파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정상 임신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여줬지만, 오류일 수도 있다며 일주일 있다가 다시 오라는 말에 내내 불안해하며 일주일을 보냈고, 희미한 아기집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니 임신은 맞는 것 같은데, 난황이 보이지 않아요. 자궁 외 임신일 수도 있고, 지난번에 말했던 것처럼 정상 임신이 아닐 수도 있으니 수술하게 될 수도 있어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세요.”


이게 무슨 소린가? 아이의 심장소리조차 듣지 못했는데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왜 이렇게 불안하게 하세요?” 반문했지만, “이런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저도 불안해서요.”


의사의 마지막 한 마디에 꾹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하필 2주 전에 다시 시작한 크로스핏 때문에 아기가 놀라서 도망간 것일까 봐 나를 원망하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다시는 그 병원 안 갈 거야, 산부인과 의사라는 사람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줘도 모자랄 판에 왜 이렇게 불안하게 해? 저게 무슨 의사야.”


애꿎은 남편에게 화를 냈지만,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인터넷 검색을 조금 해보니 블로그에 관련 정보가 쏟아진다. ‘병원 가기 전에 검색이라도 한번 해볼걸...’ 블로거만도 못한 정보로 불안하게 한 의사에게 화가 났고, 병원을 바꿨다.


처음부터 심장 소리를 듣고 싶어서 시약선이 테스트기를 역전했음에도 기다렸다. 아기의 존재를 알기 전부터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모든 시간이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임신 축하합니다. 이제 12월 산모가 오기 시작하네요, 아기 심장도 잘 뛰고 있어요.”


새로운 병원에서 의사의 말을 듣고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안도와 기쁨의 눈물이다.


4주 차부터 시작된 입덧이 16주 차까지 이어진 바람에 원치 않았던 근 손실을 동반한 다이어트가 됐지만, “아기 잘 크고 있네요.” 한 마디에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엄마가 됐다.


미디어에서 본 우아한 입덧은 거짓이다. 토하느라 얼굴에 실핏줄이 다 터지고, 목이 캑캑 막혀 숨 쉬는 것조차 쉽지 않다. 화장실 문 앞에 주저앉아 변기통을 붙잡고 엉엉 울던 시간들. 업무 시간에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도 없이 게워 낼 때 지나가는 사람들은 숙취로 고생하는 줄 알고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숙취가 아니야, 내 뱃속에 사람이 있다고.’


입덧이 끝나고 배가 나오면서 맞는 옷이 없다. 슈트와 구두를 좋아하던 내가 펑퍼짐한 원피스를 입고 슬리퍼를 신는다. 발이 부어 운동화도 신을 수 없다. 똑바로 누워 자는 것이 힘들어지고, 앉고 서는 것조차 버겁다. 발톱을 깎을 수도 없고, 양말 신는 것조차 혼자 힘으로 하지 못한다. 아기를 품고 있을 뿐인데, 아이가 돼버렸다. 모든 어려움에도 태동 하나에 신비로움을 느끼며 웃음 짓는다. 열 달 동안 무이자로 거주하는 뱃속의 아이 덕분에 두 개의 심장을 갖게 됐다.


매달 초음파를 볼 때마다 쑥 커져 있는 모습이 신기하다. 아이와 함께 할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부모는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겁도 없이 부모가 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든 점도 물론 있을 테지만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다 행복이었다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아이가 태어나면 찾아올 행복이 기대된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아이를 낳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손해다. 계산기를 아무리 두드려봐도 애를 낳는 건 손해가 맞다. 특히 일하는 여성이라면 그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고작 30여 년을 살아낸 세월에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계산할 수 없는 행복감, 예상할 수 없는 삶의 깊이감을 더해주는 건 출산과 육아뿐인 것 같다.


여자로서의 삶보다 엄마로서의 삶을 살게 될 앞으로의 삶. 얕기만 했던 삶이 얼마나 깊어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깊어진 삶만큼 주름도 깊어지겠지. 연애할 때 남편이 해준 말이 있다.


“깊어진 주름은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증명한대요. 많이 웃었던 사람은 기쁨의 주름이, 많이 울었던 사람은 슬픔의 주름이 생긴대요. 그러니 기쁨의 주름을 새기며 살아요 우리.”


기쁨보다는 슬픔의 주름이 더 많이 새겨졌던 20대를 지나 남편을 만난 후 기쁨의 주름으로 슬픔의 주름을 지워가는 지금, 아이가 새겨줄 기쁨의 주름은 얼마나 깊고 기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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