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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팥쥐아재 Dec 09. 2022

지금 이 순간 기쁨에 머무는 법

아이를 통한 깨달음

명절 때면 할머니 댁을 찾았다. 감천甘川 동네를 가로지르는 작은 하천이 있는데 물 맛이 달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천마산 주위로 흐르는 약수터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했다. 제사를 지내기 전날이나 새벽 일찍 할아버지는 약수터로 가서 맑은 물을 잔뜩 담았다. 힘이 부족했던 나는 고작해야 작은 음료수 통에 넣은 물을 옮기는 게 다였지만 약수터까지 오가는 길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단지 가장 어리다는 이유, 새벽에 잘 깬다는 이유로 귀찮은 일에 불려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약수터를 오가고 물을 받는 시간 동안 할아버지는 옛날이야기를 자주 해주셨다. 주로 한국전쟁 때 도망쳐 다녔던 이야기였지만 흥미로운 주제가 많았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난 후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해내 각색하여 단편 소설로 쓰기도 했다. 만약 그때 할아버지 이야기에 조금 더 경청하고 관심을 가졌더라면 할아버지의 경험을 고스란히 녹여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4년 전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약수터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사라졌다. 이제는 모두 기억 한 켠에 남아 가끔 꺼내볼 추억이 되었다.


어릴 때는 감천에 사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웠다. 산 위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초라한 집, 집에 가기 위해 올라야 하는 가파른 계단, 화력발전소에서 풍겨져 오는 냄새와 매연, 그리고 감천항에서 바닷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비린내는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부산에서도 감천이라는 동네를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했다. 학급이 바뀌거나 대학을 진학했을 때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그냥 '영도 근처'라고 했다. 적어도 영도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서 두세 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대학을 다닐 무렵부터 감천에 변화가 생겼다.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시면서 빈집이 생겼는데, 구청에서 집을 매입해 '감천문화마을'로 개선하기 시작했다. 한두 명씩 예술가가 들어오고, 길이 정비되고, 관광지로 홍보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가끔 할머니 댁을 찾았다가 관광객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들을 '이런 곳에도 아직 사람이 사는구나'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댁 양 옆으로 들어온 예술가들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화실을 재건축하면서 할머니 댁에 피해를 주었다. 나이 들고 힘없는 할머니의 항의는 그들에게 미력했고, 오히려 싸움꾼 할머니라는 낙인까지 찍어버렸다. 감천이 감천문화마을로 바뀌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긍정적이고 활기차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관광객에게 우리는 동물원 우리 속 동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예술가들에게는 그저 돈벌이가 되는 관광지에 임대료 싸게 들어올 수 있는 공간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을 때가 더 좋았다.


추석 이후 몇 달만에 할머니 댁을 찾았다. 엄마와 아내가 할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동안 갑갑해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물고기 모양의 판자를 따라 몇 군데 전시장(?)을 찾았다. 언제 손을 봤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형물은 망가졌고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관광객이 뜸한 이런 때 제대로 일하는 공무원이 있겠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센서가 작동해 자동으로 움직이는 조형물을 신기해했고, 다양한 전시물에 즐거워했다. 처음에 무서워하던 막내는 어느새 내 품에서 벗어나 형아들 틈바구니에 끼어 즐기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얼어있는 고드름을 따서 가져 놀기도 하고, 닫혀있는 전시관 앞에서는 아쉬워했다. 아이들을 따라 골목골목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나 역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약수터로 향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때는 뭐하나 볼 것도 없는 동네였는데 동네 형들과 참 재미있게도 놀았음을 깨달았다. 맞다. 가진 것 하나 없이 가난했어도 분명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많았다. 나는 왜 그런 기억들은 잊고 부정적인 기억들만 떠올리고 있었을까? 


아이들이 발견한 고양이 한 마리가 지붕 위에서 일광욕을 즐긴다. 몸 한 켠 뉘일 공간이 있다는 것, 따뜻한 햇살에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것, 수시로 아이들 웃음소리에 취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머무는 동안에 누군가는 즐거움을 찾고 누군가는 아픈 기억을 되씹는다. 아이들에게 지금 이 순간 기쁨에 머무는 법을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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