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경증에 대하여
한 달 전쯤, 갑자기 첫째가 잠에서 깨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했다. 눈에 초점이 없고 불안해하며 화장실을 찾길래 데려갔더니 한참 동안 볼일을 보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겨우 소변을 보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는데도 안정을 찾지 못했다. 나도 당황해서 정신 차려 보라며 아이를 흔들었고 시간이 지난 후 안정을 되찾았다. 조금 전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다시 잠들길래 몽유병 같은 건가 싶어 넘어갔다. 그 후로 3~4일에 한 번꼴로 같은 증세가 있었다. 어젯밤에도 잠에서 깨어 몸까지 바르르 떨며 한참을 불안해했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를 재우고 한동안 잠을 설쳤다.
이전처럼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전날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동시에 나 때문에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닌가 걱정됐다. 장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아내님이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동안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대하지 못했다. 나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는 탓에 심신이 많이 쇠해졌었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다. 본의 아니게 아이들에게 짜증을 많이 낸 거 같다. 많이 성장했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한 아빠다.
아이가 한밤중에 깨서 하는 말 중에는 둘째가 자주 거론되는데 그 부분도 걱정이 된다. 여느 집과 비슷하게 매번 사이좋게 놀다가 싸우고 다시 사이좋게 지내는 게 일과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둘째가 사이에 껴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다 보니 의도적으로 조금 더 신경 쓰는 경우가 많은데 둘째와 차별받는다는 오해를 할 수도 있겠구나 싶다. 아이들을 향한 내 마음을 같은데 육아는 참 어렵다.
잠을 설친 데다 아이가 걱정돼서 종일 신경이 쓰였다. 아내님도 걱정이 되었는지 한의사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야경증 같다고 하는데 정서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 해 주고 심해지면 한의원에 한 번 들르라고 했다. '정서적 불안정'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다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힌다
퇴근하고 돌아가니 아이들이 문 앞까지 달려와 나를 반겨준다. 종일 나를 괴롭혔던 불안과 걱정이 해맑은 아이들 모습에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렸다. 아이는 "아빠,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빵이랑 망은 뭐게?"라며 수수께끼를 냈다. 아빵, 엄망 아니냐는 답변에 아이는 만족하며 "딩동댕~!!"이라고 외쳤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아이들과 변신놀이를 하고 책을 읽었다. 잠들기 전에는 즉흥으로 만든 동화를 들려주었다. 한동안 뒤척거리는 소리가 나다가 어둠에 묻혔다. 어둠을 이불 삼아 편하게 잠든 아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나까지나 이렇게 평온한 모습으로 잠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