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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21. 2024

새벽까지 기획서 쓰기


      

새벽까지 기획서를 썼다. 

이전이라면 아마도 밤을 새웠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12시가 넘어가면서 체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선정될지 모르겠지만 같이 강의에 들어가는 분들은 이런 사정은 모를 것이다. 체력도 예전만 못하고 이제는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기획서를 쓰는 일은 괴롭다. 그래도 서류를 보내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매달린 것이다. 덕분에 새벽까지 악몽에 시달렸다. 마음이 편해야 하는 데 그렇지 못하니 어수선하기만 하다.      



이번에 내가 제안한 건 생태 환경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다. 최근 들어 우리 주변에서 생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막상 16회차분 내용을 채우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이론 강의로 4명의 강사를 넣고, 탐방을 2회 넣었지만 예산을 보니 탐방은 가는데 식대를 마련할 방법이 없다. 명색이 탐방인데 해당하는 예산 항목은 식대가 아니라 다과비밖에 없다. 게다가 다른 지역으로 가는 탐방인데 식대를 해결할 수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이라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근 상황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내가 즐겁기 때문에 쓰는 블로그와 수익이 나는 블로그는 다르다. 내가 즐거운 블로그는 일기식으로 써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수익을 창출하기 위한 블로그는 목적 자체가 다르다. 블로그에 들어오는 이들의 니즈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더 이상 머무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다른 셈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 시대가 그걸 원하는 데.      


그래도 아는 분의 사무실에서 같이 작업을 했다는 게 조금이나마 위안이었다. 최근 같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더 친해진 분이다. 그분은 사진과 영상에 강점을 가지고 계신 분인데 서로 고민을 털어놓다가 마음이 통했다. 예전에는 나 혼자 기획서를 쓰곤 했다. 이제 이런 일도 끝이겠구나 생각하니 한편으로 조금은 섭섭했다. 2017년에 그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시행했던 나로서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막상 현실은 달랐다.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일은 흥미로우면서도 즐겁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담이 많이 가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챗GPT 등의 도움을 받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획서나 제안서를 준비하는 시간은 많이 걸린다. 또 설령 선정된다고 해도 실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인원 모집 등 부담도 크다. 일단 어느 정도 마무리한 서류를 담당자에게 보내고 나니 새벽 1시가 넘었다. 어쩌면 이런 일도 이제는 거의 끝이 다 와간다는 생각을 하니 한편으로 서글픈 마음이 든다. 예전의 열정이, 그리고 무언가를 기획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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