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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13. 2024

그런 일도 있는 법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아내와 병원에 가던 중에 기다리는 시간에 읽기 위해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신분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요즘은 병원에 갈 때도 신분증이 필요하다. 아내가 핸드폰을 찾을 수 없다기에 여권이라도 갖고 가야겠다는 마음에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나올 때 생각해 보니 분명 나갈 때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이 없는 것이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냥 나갔다.     

      

다시 돌아와 집에 와서 찾아봐도 없다. 혹시나 해서 차에 가 보았지만 없었다. 하기는 차에는 가지도 않았다. 아무튼 책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그렇다고 집이 큰 것도 아니다. 소파도 찾아보고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졌다. 심지어 옷장까지 열어보았다. 당연히 거기는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기억이 집을 나간 사이에 나도 모르게 두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 책이라면 상관없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보니 신경이 더 쓰인다. 실제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린 후 찾지 못해 배상한 적도 있다. 가끔 무언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 우리는 자책을 한다. 그럴 때면 물건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그간의 어설픈 삶의 행적이 떠오르기도 한다.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 사람들은 치매 운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상태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물건 하나 기억을 못 한다고 치매라니, 그럴 일은 절대 아니다.        


여행을 많이 가다 보니 가끔 물건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중 가장 마음 아팠던 건 파리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렸을 때이다. 개선문 근처에서 신나게 사진을 찍고 에펠탑으로 이동하던 중에 지하철에서 내린 후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핸드폰이 없었다. 아내 말로는 수상쩍은 몇 명이 근처를 배회했다고 한다.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찝찝했지만 두바이와 런던에서 찍은 사진을 몽땅 잃어버린 게 더 속이 쓰렸다.           


어떤 이는 여행을 하면서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한 후, 중고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기 위해 알아보던 중 자기 핸드폰을 발견한 적이 있다고 글을 남긴 적이 있다. 나야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여행 초입에 발생한 대참사 때문에 그때 내가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그게 액땜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도 여행을 끝마칠 때까지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나는 강의하던 중에 내 핸드폰이 파리에 있다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했다.           


그 후로는 여행 갈 때면 더 조심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래도 가끔 소소한 것들을 놓고 오거나 잃어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잃어버린 것에 연연하면서 여행을 망치기보다는 누군가가 주워서 잘 쓰려니 하고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예전에 간디도 기차를 타면서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떨어진 상태로 기차가 출발하자 나머지 신발까지 벗어서 던졌다는 일화가 있지 않은가! 다른 사람이라도 온전히 신발을 신으라며.           


다음날 다시 책을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없다. 나는 낙담했다. 어딘가 분명히 있을 텐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눈앞에 초록색 표지가 어른거렸다. 무의식적으로 어딘가 두었음이 틀림없다. 나갈 때 손에 들고 있던 책이 과연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날이 후덥지근하고 신경이 곤두서서인지 이마에 땀까지 나기 시작했다. 그냥 책이 없으면 사서 도서관에 반납하면 될 일을 이리 하나 싶었다.           


그러다가 어제 잠시 열었던 거실 서랍장이 생각났다. 평소 여권을 넣어둔 곳이었다. 아뿔싸 책은 거기 있었다. 급한 마음에 거기다 넣고 닫은 모양이었다. 나를 이틀이나 곤혹스럽게 했던 책이 얌전하게 거기 있었다. 조금은 허탈했다. 영 찾지 못하면 책을 사서 도서관에 반납해야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터였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일을 더 자주 겪을 것이다. 때로는 우울하고 자신에게 짜증 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때 꼭 말해주고 싶다. 그게 인생이라고, 그러니 크게 마음 두지 말라고.      


짧지만 길었던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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