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위봉산자락에는 바람 닮은 사내가 산다.
흙에 반해 완주에 뿌리내린 지 어언 25년이 되었다.
그의 직업은 농사꾼이 아니다.
그는 도자기를 빚는 도공이자 장인이다.
2000년에 살던 곳을 떠나
지금의 봉강요 자리에 터를 잡고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자연스럽게 그도 이제는 중년이 되었다.
시간의 세월만큼 작업량이 많아졌고 세상의 인정을 받았으며 작업실에도 작품이 쌓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혼자 작업을 하던 공간을 많은 사람이 찾았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이 아름다운 자연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치유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가 도자기에서 길을 찾았듯이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다행히 체험장에는 아이들이 북적였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도 위로를 얻기 위해 자주 찾았다.
그렇게 그곳에서 그들은 '희망'이라는 그릇을 굽고,
'내일'이라는 도자기를 빚었다.
처음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왔던 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나설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들에게 봉강요에 머무는 시간이 평안과 위안의 순간이었듯이
그는 자기를 빚으며 또 다른 세상을 노래하고 싶었다.
조선의 도공들이 그들의 방식으로 도자의 길을 고수했듯이
그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공의 길을 걷고 있다.
흙이 주는 따뜻함과 서늘함, 편안함과 푸근함이 그의 손을 거쳐
작품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생각한다.
지역에서 뿐만 아니라 외지에서도 봉강요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위봉사와 위봉폭포는 알아도
그 옆에 깃들여 사는 봉강요는 모른다.
그는 그게 못내 속상하다.
작가는 누군가가 작품을 알아주고 인정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
봉강요 구석구석 어느 곳 하나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사람들의 무심함을 접할 때면 마음이 아픈 이유이다.
봉강요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 그는 진정욱 작가이다.
그는 오늘도 봉강요가 자리한 삼천 평이
누군가에게 환한 웃음으로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는 오늘은 또 누가 이곳을 찾아줄까 하는 설렘을 가득 안고
아침의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