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라켄과 친해지는 법

by 산들

백팩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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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숙소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물가가 비싼 곳을 다니다 보면 늘 겪는 고민이 바로 숙박비와 식사이다. 그나마 간신히 구한 곳이 배낭여행객들의 천국이라는 백팩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바로 인터라켄까지는 갈 수 없었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중간에 다른 곳에서 하루를 묶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도착한 백팩은 워낙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찾기도 쉬웠다. 일단 첫인상부터가 합격이었다. 여행지에서의 첫인상은 손님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내 데스크만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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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팩은 인터라켄에서도 유명세를 타는 곳인지라 우리 가족이 함께 묵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데스크의 선한 배려는 우리를 한 방에 쓸 수 있게 만들었다. 게다가 문을 열면 눈앞에 융프라우가 있었다. 창밖으로 융프라우라니. 이러면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무조건 OK. 이런 곳의 가장 큰 장점은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상황 대처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명성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입맛이 까다로운 배낭여행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칭찬하는 곳이라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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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배낭여행객을 위해서인지 숙소의 주방은 넓고 사용하기 편했다. 다른 편의시설도 있었지만 일단 주방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주방이 있기 때문에 머무는 이들은 각자가 해 먹을 식료품을 사고 비닐에 자신의 이름을 써놓는 식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이미 스위스 물가가 비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최상이다. 게다가 아침까지 제공되는 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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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난다고?

다음날은 패러 글라이딩을 하기로 했다. 사전 예약을 했으면 좋았으련만 결정을 내리지 못한 탓에 한국 업체를 이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다행히 데스크에서도 예약 대행을 해주고 있었다. 아내는 그 말을 듣자마자 기겁을 했다. 모험심이 강한 딸아이는 스카이 다이빙을 원했다. 하지만 마음을 바꿔 패러 글라이딩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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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딸과 아들이 함께 하기로 했으나 막판에 아들이 취소하는 바람에 나와 딸만 가기로 했다. 숙소에 묵었던 몇몇에게 물어보니 1시간 반 정도 걸린다는 이야기가 중론이었다. 그게 다 공중에 체류하는 시간은 아니고 패러 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산 정상까지 올라간 후 다시 내려오는 조건이었다. 체류시간이야 얼마 되지 않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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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시간에 차를 타고 보니 나를 포함한 대여섯 명이 한 차에 있었다. 손님 모두가 한국인이었다. 한국사람이 스위스인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 한 명에 패러 전문가 한 명씩이었다. 나에게는 제롬이 배정되었다. 정상에는 우리 말고도 제법 많은 사람이 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장비를 갖추고 달려가면 그만이었다. 나는 내릴 때 착지가 걱정이었지만 제롬은 그것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알려주었다. 그만큼 한국사람을 많이 접해보았으니 그로서는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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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경사진 곳을 달려가는 것으로 모든 것은 해결되었다. 내 걱정도 두려움도 두 발이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사라졌다. 그 순간 나는 날고 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지만 그것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멋진 일은 내 발 밑에 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산을 가뿐하게 넘었다. 그보다 더 멋진 일은 융프라우를 가까이에서 보았다는 점이다. 아, 융프라우. 그 이름만 들어도 왜 이렇게 가슴은 설레는지. 만년설에 쌓인 융프라우는 그 자체가 경이였고 감탄이었고 환상이었다.



야호, 하늘이다! 하늘을 날고 있다

오른쪽에는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체공시간 내내 제롬은 내게 이런 저런 동작을 주문했다. 그때만큼은 그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심지어 나에게 패러 글라이딩 조종을 맡기기까지 했다. 손 동작 하나에 따라 우리 몸이 출렁였다. 그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불과 1미터도 날 수 없는 인간이 패러 글라이딩의 힘을 빌려 산을 넘고 하늘을 날고 있다니. 에릭은 패러 글러이딩을 타기 전에 핸드폰으로 찍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기야 그 높이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진다면 지상에 있는 사람에게는 이만저만한 흉기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전문가답게 능숙하게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댔다. 그에게는 이게 또 다른 부수입이리라.


바람아 조금 더 불어주렴

내 팔은 가볍고

내 마음은 그보다 더 가볍구나

눈앞에는 융프라우

저 산 너머까지라도 날아가자꾸나

어디까지라도 가다 보면

너도 보이고 나도 보이겠지

바람아 오늘은 조금만 더

나를 가볍게 해주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영혼아!

- 융프라우를 날다


하늘에서의 시간은 지상에서의 시간과 또 다르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을 테지만 나는 자꾸만 욕심이 났다. 하지만 인간은 하늘에 머물 수 없다. 아무리 전문가라 할지라도 바람을 타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대신 머무는 동안 융프라우를 마주 보고 산과 가장 가까이 가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 아쉬움을 아는 듯 에릭은 패러 글라이딩을 좌우로 크게 움직여 마치 그네 타듯이 위아래로 흔들었다. 아찔하기 짝이 없는 동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지상에 안착했다. 안전하게, 그가 물었다. 하늘에서 찍은 사진을 살 생각이 있냐고? 물론 강매는 아니었다. 나는 딸아이에게만큼은 기념이 되는 사진은 사주고 싶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일생에 몇 번이나 하늘에서 사진을 찍겠느냐. 내가 오케이 사인을 내자 에릭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패러 글라이딩도 적은 비용이 아니었지만 사진 역시 5만 원을 호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롬이 공중에서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은 바로 USB로 전달되었다. 그이 말로는 만약 USB에 문제가 있으면 자기네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와 다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6개월 동안은 보관될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제롬, 오늘이 내 기억에는 평생 저장될건데, 고작 6개월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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