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다. 물론 시차 때문이겠지만 여행이 가져다준 즐거운 부작용이다. 벌써부터 앞으로 며칠은 이스탄불의 여운에 취해 살게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곳 시간이면 초저녁인데 하는 생각을 하노라면 한국에 있는 지금, 시간이 새벽으로 치닫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왜 이리 잠은 오지 않는가. 내일 또 해야 할 일이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여행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리라. 그렇게 우리는 길을 떠나 또 다른 세상을 만나고,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들의 추억을 만들어왔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세계는 그 무수한 만남과 헤어짐이 켜켜이 쌓인 흔적이다. 그 흔적들이 우리를 여기에 있게 한다.
유럽을 제외하고는 이리 먼 길을 떠났던 적이 얼마였던가? 그간 여행을 통해 내공을 쌓았다고 안심했지만 10시간을 훌쩍 넘긴 비행시간의 피로감은 터키에 도착하고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흔히 형제의 나라라고 하는 터키. 하지만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터키 아이스크림과 트로이 정도였다. 그와 함께 낯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물음표! 누구나 경험하겠지만 새로운 여행이 주는 일말의 불안감을 떨치기는 어렵다. 아마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데 대한 기대와 두려움 말이다.
우리 일행은 마침 여행시기가 라마단 기간이었기 때문에 일정을 바꿔 성 소피아 사원과 블루 모스크부터 찾게 되었다. 아야 소피아 사원은 원래 비잔틴 제국 시대에 대성당으로 지어지다가 오스만 제국 이후 이슬람 사원으로 바뀐 특이한 이력을 기진 곳이다. 특히, 537년 12월 27일, 대성당 축성식 때 그 웅장함에 감동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솔론의 성전을 떠올리며 “솔로몬이여, 내 그대를 이겼노라!”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하기도 한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지배하는 동안 벽화 위에 회칠을 하여 이슬람의 코란과 문양으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에 이를 복원하는 공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
가이드인 글렌의 설명을 듣는 가운데, 저 멀리 헷갈리기만 했던 수니파와 시아파, 그리고 이스탄불을 둘러싼 얄팍한 세계사의 상식들이 가물가물 떠올랐다. 이스탄불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전통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이다. 그랜드 바자르는 골목골목 터키의 명물인 카페트를 비롯하여 도자기와 장신구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상점이 2천여 개에 달하는 아시아 최대의 전통시장이다. 동서양이 교차하는 곳이라 그런지 가게에 진열한 상품의 색깔이 화려하고 여행객의 눈길을 끌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 바자르 상인들의 푸근한 인상이 우리네 남대문 시장을 연상케 한다.
샤프란 볼루, 교역 나선 상인들은 길 위에 자기 목숨을 걸었다. 실크로드 상인들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면서 교역의 젖줄을 만들었다. 차마고도를 지배했던 게 말과 노새로 이루어진 마방이라면 샤프란 볼루를 지배하던 이들은 카라반 상인이었다. 그들은 험한 길에도 막대한 이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먼 길을 마다 않고 떠났다. 아시아와 유럽을 넘나드는 오랜 여정은 쉬기 위해 중간 기착지를 필요로 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곳이 샤프란 볼루다. 터키 서북부 카라뷔크(Karabuk) 주에 위치한 마을인 샤프란 볼루는 오스만 투르크 당시의 건축물 1,000여 채를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1994년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샤프란(Saffron)은 황금보다 비싼 향료의 천연 재료이다. 샤프란은 빨래할 때 사용하는 섬유유연제 상표명이 있을 정도로 향으로 유명하다. 카파도키아에서는 나오는 샤프란에 유럽 사람들은 열광했다. 샤프란이라는 말은 아랍어의 아자프란(azafran) 또는 자파란(zafaran)에서 비롯하였으며 본래 샤프란의 암술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흔히 요리 과정에서 착색 및 방향제로 사용한다. 요리사들은 소스와 빵, 버터, 치즈, 비스킷 등에 특유의 냄새와 색을 내기 위하여 샤프란을 사용해왔다. 그리고 이는 동서양의 교역으로 이어졌다. 물자를 나누고 교류하는 데 발품이 많이 가는 카라반 상인이 그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먼 길을 잠시 내려 놓고
쉬던 동네가 있었지요
머나먼 오스만 시절부터
이곳을 드나들던 사람들은
돌을 쌓고 지붕을 이어
근사한 마을을 만들었다는대요
그 중 몇 집은
우리네 외할아버지댁
묵은 담벼락 같아서
그냥 기대기만 해도 푸근해지지요
눈물이 날 만큼
- <문득 샤프란이 그리워질 때>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여행지에서는 스치며 만나는 야생화도 추억이 된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아직도 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낯선 풍경들과 섞여서 기억 한켠에 잠겨 있다. 언젠가 들추어보면 그 어디쯤엔가 내가 있으리라. 가끔이지만 나도 누군가의 추억의 한 장면이 되고 싶다.
카파도키아 가는 길목에 있는 소금호수는 터키 전체 소금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광활하다. 호수 면적이 서울시만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언젠가 신안에서 만 평정도 되는 염전을 보았을 때도 크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에 비하면 여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끝없이 펼쳐지는 호수에 발을 담그고,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신기해한다.
터키 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지프차로 도는 사파리 투어이다. 먼지 풀풀 날리는 야생 그대로의 카파도키아를 가다 보면 이곳이 지구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외계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색다른 풍미를 지닌 카파도키아 풍경 때문이다. 지프차를 타면 카파도키아를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아마도 더위를 피해서겠지만 봉우리 군데군데 굴을 파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집이 보인다. 그마저도 여행자에게는 이채롭다.
터키의 날씨는 덥고 사방은 건조하다. 목초가 대부분인 초지가 이곳이 얼마나 척박한 땅인지를 말해준다. 이런 날씨에서 생존하기란 쉽지 않을 일이다. ‘우치히사르’에 도착하니 바위산에 늘어선 집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 살던 수도사들이 비둘기를 길렀다고 해서 ‘비둘기 골짜기’라 불린다 한다. 어쩌면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고 살아남기가 어려웠으리라. 조금이라도 쾌적하고자 하는 의지가 돌산을 파서 생활공간을 만들게 했다. 황량한 듯 보이는 산이며 계곡에도 어김없이 생명은 산다. 그게 터키의 매력이기도 하다.
괴레매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파사바 계곡으로 향한다. 카파도키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묘미는 스머프 집을 닮은 바위들이다. 한때 유명했던 TV 프로그램 스머프 말이다. 이곳에는 언뜻 보면 버섯 모양을 닮은 다른 지역에서라면 도저히 볼 수 없는 바위군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풍화작용이 사암부분을 갉아서 근사한 조각품 같은 바위를 남겼다. 세계에 몇 군데 없다는 바위의 특성이 시간과 맞물려 이토록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카파도키아는 지형적인 특질만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 <스타워즈>에 나왔던 외계의 행성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지구라고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을 풍광이 도처에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광 앞에 사람들은 감탄하기에 바쁘다.
카파도키아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새벽에 타는 열기구이다. 새벽 4시에 숙소를 출발해서 벌판을 향해 달려가면 넓은 들판에 널브러져 있는 열기구들이 보인다. 거대한 열기구는 손님이 오기 전에는 후줄근 모습이다. 손님이 도착하면 그때부터 직원들은 본격적으로 열기구에 뜨거운 공기를 주입하기 시작한다. 옆을 보니 조금씩 뜨거운 공기가 차오르니 홀쭉했던 열기구는 어느새 팽팽해진다. 본격적으로 하늘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셈이다.
전날 밤 늦게까지 밸리댄스를 보느라 누적되었던 피로는 열기구를 보는 순간 사라져버렸다. 처음 예약할 때까지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지만 실제 열기구를 보니 흥분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다만 일행이 한꺼번에 다 타지 못하고 이산가족이 되기도 했지만. 그게 뭐 대수랴! 덕분에 나와 아들은 호주와 중국에서 온 이들과 열기구에 몸을 실었다. 한 바구니에 타는 순간부터 내릴 때까지 우리는 동일한 운명체이다.
여명이 밝아오고, 하나 둘 형형색색의 열기구들이 그들만의 비행을 시작했다. 바람 빠진 열기구에 공기를 불어넣고, 드디어 이륙! 20여 명 남짓한 사람을 태운 열기구는 잠시 덜컹하더니 하늘로 조금씩 올라간다. 한번에 쭉 올라가는 것은 아니고 조금씩 높이를 올려가며 올라간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 넓은 평원 군데군데에서 열기구들이 시간차를 두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800미터에서 1,000미터까지 올라가는 열기구 체험은 대략 1시간 남짓 시간이 걸린다. 바람에 따라 출렁일 때마다 열기구에 탄 사람들의 표정은 즐거움을 감출 수 없어 보인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체험은 결코 싼 편이 아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알아서 예약을 할 수 있지만 기본 가격이 20만 원을 훌쩍 넘으니 결코 만만한 가격은 아니다. 그럼에도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를 버킷 리스트로 삼고 오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발 아래 조금씩 또 다른 세상이 눈에 들어오고 어느덧 우리는 하늘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지프 사파리에서 보았던 장미계곡과 카파도키아의 낯선 풍경이 연이어 펼쳐지고, 언덕과 나무를 스치듯 넘나들던 열기구들의 행렬. 우리 일행의 높이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술렁임을 알아차리기라도 하듯이, 조종사는 800미터까지 순식간에 고도를 높인다. 조종사는 열광하는 손님들 반응으로 보더니 다시 1,000미터로 올린다. 맙소사, 둘러보니 어느새 우리가 가장 높은 데 있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간의 꿈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왔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로스의 이야기에는 하늘을 날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빚은 처참한 비극을 말해준다. 화가이자 발명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헬리콥터 모형을 그렸듯이, 인간은 하늘로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열기구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열기구야말로 가장 안정적이고 느긋하게 하늘을 즐길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열기구 체험 비용이 비싼 대신에 돈만 가지고 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열기구 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씨이다. 날씨가 도와주어야 한다. 사전에 예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강풍이 불거나 비가 쏟아지면 열기구 체험은 포기해야 한다. 터키 기상당국에서 이륙허가를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조종사가 열기구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실제로 터키에서 열기구 운행 조건은 까다롭다. 이를 무시하고 운행할 경우, 인명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예전에도 운행자가 강풍에도 열기구를 운행하다가 사망사고로 이어진 적도 있다.
카파도키아의 열기구는 규모 또한 다르다. 한두 개의 열기구가 아니라 차원이 다른 수준의 열기구 무리이다. 100여 개의 열기구가 동시에 떠오르는 풍경을 여기 아니면 어디에서 볼 수 있다는 말인가. 과연 카파도키아를 대표할 만한 멋진 풍경이다. 새벽에 열기구를 띄우는 이유는 일출 때문이다. 열기구를 타고 하늘에서 일출을 보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분이 최고이다. 열기구 조종사는 승객들의 반응에 따라 조금 더 하늘로 올라간다. 가장 높은 곳에서 주변 열기구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묘한 느낌이 든다.
탄성이 들려서 보니, 저 멀리에서 조금씩 붉은 해가 힘차게 솟아오른다. 가슴 한구석이 먹먹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은 카메라로, 스마트폰으로 부지런히 향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진만으로 담을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그것이 풍경이든 이야기든, 함께 탄 사람들의 입에서도 가벼운 탄성이 연신 터진다. 그때, 일출을 배경으로 펼쳐지던 수많은 열기구들의 장관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카파도키아를 찾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강력 추천을 외치는 이유를 알겠다. 나도 슬쩍 그 무리에 동참해본다. 열기구를 탈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강추!
열기구가 낮게 날 때마다 집에 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든다. 그대로 내려가면 앞마당에라도 안착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땅이 가까워질수록 탑승객들의 아쉬움은 짙게 남는다. 1시간 남짓 날다가 마침내 열기구가 땅에 착륙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늘에 떠있는 동안은 설렘과 기대, 그리고 긴장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비록 안정적이라 할지라도 하늘은 언제나 돌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은 적어도 신의 영역이니까. 우리는 열기구의 힘을 빌려 그 세계를 잠시 엿보았을 뿐이다. 내리면 인증서와 함께 샴페인 파티가 벌어진다. 무사히 하늘 비행에서 지상으로 살아 돌아왔음을 축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