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인터라켄, 피르스트

by 산들


자전거로 산을 넘는 친구들

인터라켄은 융프라우로 향하는 시발점이다. 스위스 배낭여행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인터라켄에 모인다. 차를 몰고 가다 보니 차 안 고도계가 어느새 2천 미터를 가리킨다. 2천 미터까지 누군가가 도로를 닦아 놓은 덕분에 별 고생하지 않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웬걸 한 무리의 자전거가 보인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평지에서 하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2천 미터 산을 올라가고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그렇게 자전가를 타는 팀이 하나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자전거 양 옆에 엄청난 짐이 붙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인간의 정신력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어떻게 이 높이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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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 휴게소가 있었다. 그때 한 자전거맨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 험준한 2천 미터 고지를 넘어서 잠시 숨을 돌리는 모양이었다. 그 옆에 소품처럼 자전거가 있었다. 잠시 후 가방에서 집에서 싸왔음직한 샌드위치와 과일 몇 조각을 꺼내더니 이내 맛있게 먹는 게 아닌가. 바로 눈앞에 융프라우를 보면서,

세상에 어떤 식당이라 할지라도 그 맛에 어찌 비할 것인가. 미슐랭 최고 등급의 요리사라 할지라도 그 순간 그가 먹었던 그 점심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의 점심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그의 점심은 고요와 평안, 느긋함과 여유가 어우러진 것이었으므로 나는 방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초대할 생각조차 없었겠지만 나는 그 점심에 초대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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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렴

산을 오르는 일이야

걸으면 어떻고 자전거면 어떤가

2천 미터를 페달로 오르는 마음이야

페달을 밟을 때마다

나는 높아지나니

세상의 가장 귀한 것도

이 순간은 따라 잡을 수 없나니

미슐랭도 좋고

유명 셰프도 좋지만

융프라우를 식탁 삼아

점심을 먹는 이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오늘은 산에서 먹지만

내일은 그리운 집으로 가리니

산에 머무는 시간이야

저무는 해야, 오늘은 조금만 천천히

- 인터라켄 가는 길


산을 오르는 일이야 늘 있는 일이고 멋진 풍경이 따르는 거야 당연한 일이다. 역시 천혜의 풍경을 보유한 스위스는 역시 달랐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어느 한 군데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지역은 많다. 하지만 스위스처럼 오랫동안 사람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화보 같은 풍경이 스위스에는 많다. 예전 기억처럼 달력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 곳곳에 흘러 넘쳤다. 아내와 아이들은 탄성을 연발하며 사진에 담기에 바빴다. 나도 미세먼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청정한 공기 덕에 마음까지 편안해졌다. 아내는 다음에 혼자라도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연신한다. 그래 이런 곳에서 한 1년 살다 오면 좋지, 나는 속으로 기관지가 약한 아내야말로 스위스가 딱이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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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으로 가는 도중에 뜻밖의 모습을 접했다. 사고가 난 것인지 도로 옆에 응급헬기가 와 있었다. 도로가 내리막길이었는데 자전거 한 대가 넘어져 있고, 그 옆에 구급대원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객인듯한 어떤 이가 오가는 차를 정리 중이었다. 하기야 이런 곳에 구급차가 온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리라. 눈앞에서 산악 구조를 수행한다는 헬기를 보고 있노라니 스위스가 산악국가라는 게 실감이 났다. 신속한 구조는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은 어느 나라나 역점을 두는 일이다. 특히, 이런 산악국가에서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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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피르스트

우리는 인터라켄에 숙소를 정하고 근처를 구경하기로 했다. 아담한 동네답게 곳곳에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넘쳐 났다. 느긋하게 햇볕을 쬐는 이부터 가족과 산책하는 이까지 아담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내친김에 인터라켄 역으로 향했다. 인터라켄에서는 그린데발트나 융프라우까지 이어지는 기차가 있다. 처음에는 융프라우를 생각했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이 남긴 고산병 이야기에 갈등이 생겼다. 고산병이라는 게 고약해서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문제가 심각해지면 곤란해진다. 더군다나 운전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그렇게 무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선택한 곳이 바로 피르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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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프라우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피르스트도 나쁘지는 않았다. 일단 다음날 피르스트까지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인터라켄에서 그린델발트까지 가는 동안에 만나는 풍경도 화보나 다름 없었다. 산이야 그렇다고 하지만 드넓은 초지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 구석구석에 초록물이 드는 느낌이다. 피르스트에 도착해 보니 정상에서 할 수 있는 몇몇 상품에 사람이 너무 몰려서 탈 수가 없단다. 우리는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와 자전거가 포함된 상품으로 끊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그리 힘든 일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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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정상이 추우리라는 생각을 하고 준비를 했건만 케이블카로 올라가는 정상은 역시 추웠다. 대신 멋진 풍경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어디를 가도 보이는 융프라우는 가장 매력적임에 분명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융프라우는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아무래도 고지이다 보니 내려오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었다. 다행히 점점 날씨가 좋아졌다. 결국 내려올 때는 케이블카와 함께 끊었던 자전거를 타야했다. 이게 그냥 자전거가 아니라 외발 느낌이 드는 자전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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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들이었다. 어릴 적에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었어야 했는데, 흐지부지 하다 보니 그때까지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히지 못 하고 있었다. 만약 평지였더라면 훨씬 쉬웠을 것을, 경사가 20~30도 되는 곳을 내려가야 하니 아들로서는 난감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몇 번 시도를 하다가 자전거를 끌고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말이 그렇지 자전거를 끌고 경사진 길을 내려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중간에 넘어져 다치기까지 했기 때문에 더 난감했다. 나는 그때 직감했다. 이거야말로 진짜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고, 나는 아들의 자전거를 타고 50미터쯤 내려가서 자전거를 두고 다시 올라와 내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다. 이걸 반복하고 있었으니 보는 아들로서는 진짜 고통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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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델발트에 도착해서 자전거를 반납하며 뒤를 쳐다보니 아찔한 높이였다. 거기부터 아래 기차 정거장까지 자전거를 끌고 오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케이블카에서부터 시간을 통제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인터라켄에 돌아와 보니 노래 경연대회 때문에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전통복장을 한 아이들이 군데군데 모여있었다. 그렇다고 도로 전체를 막아서 행사를 준비하다니, 그야말로 작은 마을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오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을 얻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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