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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생각 Oct 07. 2023

이브의 봄

이브의 봄

이브의 봄    


  

김휼(형미)


          

포플러 잔가지에

물오름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

꽃송이를 숨기고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 사이로

다시

예기치 못한 봄이 왔다.

어머니는 베란다에 있는 페추니아에서

봄을 보았을까?

갑자기 목욕이 하고 싶다고 하셨다.

욕조 가득 물을 받아

내 어릴 적 어머니가 그랬듯이

어머니의 알몸을 씻기운다.

겨우내 묵었을

허물을 씻기고

내 자라는 동안 박아 놓은

가슴속 생채기들이 씻어지길 바라며

구석구석 비누칠을 한다.

껍데기로 남아버린

슬픈 육신이여

꽃봉오리로 시작되었을 젖가슴은

아홉 자식 물렸던 흔적으로

빈 무덤인양

슬프게 매달려 있다.

태초에 이브가 벗은 몸으로도

수치를 몰랐다던가

어머니는

시나브로

이브가 되어가고 있었다.

기적이 있어

멈춰버린 반쪽에도

물오름이 찾아온다면

내 정녕

다시 봄을 맞지 않아도

좋을 터인데...

봄 햇살은 어느덧

거실 깊숙이 들어와 앉았고

어머니는

오그라든 육신을 세우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계신다.          

[출처]"이브의 봄"/ 김형미|작성자 강성열의 나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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