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추운데 덥고 더운데 추운 기이한 몸 상태로 인해 고통받으며 매우 저조한 컨디션이 지속되었다. 나는 이런 기분을 아느냐고 주변의 공감을 갈구했지만 대부분 무시하거나 어떤 이는 건성으로 안다고 대답하여 정말 아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하면 또 뭐라고 할 것 아니냐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마치 장마인데 장마가 아니고 장마는 아닌데 장마인 요즘과도 같았다. 기상청에서는 이 현상을 마른장마라고 부른다고 자기들 좋을 대로 떠들어댔다. 아니 비가 안 오면 장마가 아닌 거지 마른장마는 또 뭔가!
아무튼 나는 저조한 몸상태로 인해 주말 내내 거의 침대와 한 몸인 채로 지냈다. 뭘 잘못 먹은 건지 계속 화장실을 드나들어야 했고 내내 누워만 있어도 온몸이 아팠다. 열이 나거나 감기가 걸린 것은 아닌데 아무튼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나른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카페에 갔지만 그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월요일이 되어 출근을 하고 일이 많아 단 1분도 쉬지 못하고 업무를 했지만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가 넘는 순간 더 이상의 1분도 사무실에서 지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장소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할 일이 산더미였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중간 '그냥 반차를 써버릴까'라고 떠올랐던 생각들을 어떻게 물리쳤는지 모르겠다.
몸이 도저히 찌뿌둥해 못 견디겠어서 세상에서 제일 게으른 나는 운동을 간절히 원하기 시작했다. 매일 쉴틈 없이 일하는 날이 계속됐지만 수요일은 괜찮을 것 같아 필라테스 레슨을 예약했다. 운동을 가기 전 힘들었던 저번 주의 내가 시발 비용으로 소비한 스커트를 찾아 집으로 향했다.
필라테스에 가기 전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새로운 스커트를 입어보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 스커트 어때?"
"별론데?"
나는 그 치마가 꽤나 마음에 들었으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구석이 있는 디자인의 치마였기에 한 명의 아군이 절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집에는 엄마뿐이었다.
"가서 반품해"
"아니 이미 매장에서 몇 번이나 입어보고 산걸 어떻게 반품해"
"집에 가서 입어보니 가족들이 별로라고 그랬다고 해."
9:1의 비율로 마음에 들던 치마는 이제 1이 우세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제일 옷이 많은 사람인 엄마는 마치 본인의 살점을 내어주듯 본인의 옷장에서 이 옷 저 옷 그 스커트와 어울릴법한 상의를 내어주기 시작했다. 이거랑 입어봐라 저거랑 입어봐라 그럼 조금 낫지 않겠느냐며 단 한 명의 아군이라도 절실했던 나의 마음을 마구 들쑤시고 있었다.
나는 이미 운동복으로 갈아입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한여름에도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엄마로 인해 땀이 삐질삐질 나고 있던 터라 더 이상은 옷을 입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엄마는 급기야 본인의 방에서 벗어나 내방, 동생 방, 옷방까지 진출하며 옷이란 옷은 다 가져오고 있었다.
입어봐야 할 옷들이 마치 요즘 회사 일 마냥 산더미처럼 쌓여갔지만 나는 운동을 하러 가야 할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더 이상은 못 입겠다고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보다 더 단호하게
"이거 하나 입는데 뭐 얼마나 걸린다고! 이것만 입어봐!"
라고 버럭 화를 냈다.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무서운 나는 결국 한 개만 더 입어보기로 하였다.
잠시 후 운동을 다녀온 뒤 조금 여유가 생긴 나는 다시 힘을 내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번에는 내 옷 중 본인 취향인 옷들을 들고 오며 이 옷들은 왜 안 입느냐고 물었다. 나는 치우기도 힘들게 이 옷들은 또 왜 가져오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도 그 옷들을 주섬주섬 입어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엄마가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 역시나 엄마만큼 열성을 보이고 있었다.
끝내 나는 엄마로부터 다시 보니 치마는 괜찮은 것 같다는 답변을 얻었지만 그 치마와 같이 입을 상의는 고르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무기력한 요 며칠 중 가장 열성적인 순간을 보내고 잠에 들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백화점으로 향한다. 나의 새 스커트와 어울릴만한 상의가 어디 없을까 하며. 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