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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an 03. 2024

열일곱의 나로부터 편지가 왔다

To 27, From 17

내게는 감기처럼 무기력증이 찾아온다.

무기력증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티가나는 것이 나의 방의 상태다. 내 방은 마치 내 마음처럼 아주 쉽게 더러워지고 엉망이 된다. 엉망이 되었을 때 회복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어질러져 있는 물건을 하나 둘 정리하는 것.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고 먼지를 털고 제자리에 놓아주는 것. 그렇게 정리를 하다 우연히 편지를 발견했다.


"To.27 , From17" 고등학교 입학 전 꿈을 찾으라며 일주일간 부모님이 보내 준 캠프에서 썼던 편지였다. 마침 시기에 맞게 잔뜩 어질러진 나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10년 후의 나에게


To.27

안녕 나야, 너는 현재 잘 지내고 있니? 아마 잘 지내지 못하더라도 미래에 현재 이 날을 기억하며 힘을 내길 바랄게. 캠프에 와서 너는 꿈을 찾고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과 꿈을 공유했어.

혹시 27살이 된 내가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더라도 과거의 17살이었던 난 너를 응원할게

만약 꿈을 이루었다면 그 꿈너머의 꿈을 다시 한번 기억하자. 늘 꿈을 먹고살며, 포기하지 말고 힘을 내며 살자. 어쩌면 27살, 사회의 냉혹함을 알고 좌절할 수도 있지만 10년 전 순수했던 마음으로 널 응원하던 나를 기억해 줘.
 
미래에 내가 바라는 27살의 모습은 유학 중이거나 유학을 끝내고 디자인 브랜드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야. 마음먹은 만큼 사람은 행복하다니까 늘 행복한 사람이 되자! 내가 많이 사랑해!

From 17


편지를 다 읽은 10년 후 스물일곱이 된 나는 괜스레 10년 전 나에게 미안해졌다.

지금과는 다르게 많이 웃고 해맑던 그때의 내가 생각나 기분이 묘하면서도 뭐랄까 이 알 수 없는 감정은 씁쓸하다는 표현에 훨씬 가까웠다. 나는 유학을 가지도, 원하던 꿈을 이루지도 못했다. 대학 때 꿈꾸었던 의상과에 합격을 했지만 가족들의 반대로(더불어 나의 용기부족으로) 진학하지 못했고, 나는 디자인계열에서 그나마 전망이 밝다는 다른 전공을 선택했다.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시기즈음 코로나라는 변수가 있었다. 손으로 작업하던 일들을 좋아하던 나는 이루고 싶던 꿈과는 다르게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매일 밤새 작업을 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알바를 쉬지 않았고, 졸업 이후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단 시간의 조급함에 서둘러 전공을 살려 디자이너로 취업하게 되었다.

길지 않은 직장생활을 하며 나만의 것을 하는 것에는 실패라는 두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현재 퇴사 후 27살 처음으로 인생의 휴식기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백수라는 뜻이다. 꿈을 먹고살며 , 꿈 너머의 꿈을 꿈꾸던 10대 소녀는 이제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지친 현실에서 도망쳐 곧 서른을 바라보는 철없는 백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이었다


캠프에서 함께 꿈을 공유했던 아이들의 10년은 모두 달랐다. 소방관이 꿈이던 동생은 정말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이 되었다. 고등학생시절부터 어플을 개발하며 재능이 남달랐던 10대 소년은 슬프게도 20대에 접어들지 못하고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서로를 잊지 않고 응원하며 살자던 우리의 약속들은 희미해졌고,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평생 넷일 줄 알았던 우리 가족은 셋이 되었고, 웃고 떠들길 좋아하던 내가 사회공포증이 생기며 말을 뱉기를 두려워하게 됐다. 아무런 노력 없이 대가를 바라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꽤나 긴 시간 동안 멍청이처럼 행동했으며, 언제나 좌절 끝에 다음 목표를 설정하지만 목표를 이루기까지에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변수 속 수없이 헤매고 새로운 길을 찾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배우게 되었다.


뒤돌아 봤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쉽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이 가능할까?

원하던 꿈을 이루지 못했고, 뒤돌아보면 엉망진창에 정신없이 흐트러진 삶이었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동안 살아온 삶이 후회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겠다. 원하던 대로 삶의 방향을 쥐진 못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떠한 상황이든 최선을 다해 고민했고,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내 삶에 대해 지독히도 고민했고 내가 선택한 바에 최선을 다했기에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을게 보이기에 할 수 있는 대답이다. 이루고자 하는 것은 노력했고 담지 못하는 것은 쓰리게 놓치고 보내주었다. 용기가 없고 두려워서 포기했던 것에는 내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고 아쉽지 않은 삶을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내 10년을 뒤돌아보며 나는 “언제나 나는 최선이었기에 후회하지 않아”라고 대답을 할 수 있다.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고 싶다


나는 30이 되기 전에 죽을 거야

얼마 전 18년 지기 친구가 내게 말했다. “너 맨날 어릴 때부터 그 말 입에 달고 살았잖아. 이제 2년 정도 남았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정말로 내가 초등학생시절부터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나는 서른이 되기 전에 죽을 거야. 짧고 굵게 살다가 가고 싶어. 늙은 나의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아. 청춘만을 즐기다 반짝 사라지겠어.”


이 이야기를 달고 산 연유는 어릴 적 내가 인생을 재미없고 뻔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다지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지는 않지만, 저 말을 뱉을 당시의 나는 내 인생의 결말이 너무나도 뻔해 보였다. 인생이 재미없었고 지겨웠다. 그러니 그저 철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만 가득한 20대만 즐기고 사라지겠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딱히 즐겁지도 신나지도 않은 것들이 인생의 나열이었고, 드라마틱한 사건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라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내일을 기대하며 살지는 않지만, 내 인생을 쥐락펴락했던 수많은 변수들이 내 인생을 생각지도 못한 길로 이끌어준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씩 미래를 꿈꾸며 살고 있다.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발버둥은 나를 조금은 더 나은 인생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어릴 적 나의 말들을 정정하자는 의미로 스물일곱의 나는 다시 한번 서른일곱의 나에게  편지를 남기기로 했다.


서른일곱의 나는 부디 내일이 기대되는 삶을 살고 있을 나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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