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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0. 2023

봄과 아이스매실차

오묘한 맛의 매력

주말 근무가 끝난 친구와 함께 드라이브를 갔다. 맑은 하늘의 이른 저녁과 시원한 바람. 가만히 길거리에 서있기만 해도 설레는 날이었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잔뜩 밀린 이야기들을 나누러 강가 앞에 있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 뭘 마실까…‘ 살에 대한 강박으로 고민 끝에 항상 아메리카노를 고르면서도 굳이 굳이 메뉴판을 한 번씩 보게 된다. 생각보다 다양한 메뉴에 고민하다 나는 오늘 아메리카노 대신 베스트 딱지가 붙어있는 3년 묵은 매실차를 주문했다.



아주 시골에서 자랐던 나는 어릴 적 매실차를 심심찮게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할머니표 매실차가 어린 내 입맛에는 그리 맞지 않았다. 푸른 매실을 가득 담아 놓은 병을 꺼내 차를 만드는 것의 맛을 보니 알 수 없는 오묘한 맛을 가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소화가 잘 안 될 때마다 할머니께서 꺼내주던 병은 그저 나에게 소화제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매실차를 다시 만난 건 스물두 살. 나의 첫 알바는 카페 알바였는데, 혼자 근무하는 아주 작은 카페였다. 서울의 오래된 동네, 주로 찾는 사람들은 동네 주민이었다. 불규칙한 식사와 생활패턴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소화제를 찾던 내가 그곳에서 호기심으로 매실차를 다시 만났다. 컵에 한가득 얼음을 담고 매실청을 넣은 뒤 탄산수를 가득 부어준다. 빨대로 잘 저어 한 모금 마시니 그렇게 감질나고 시원할 수 없었다. 오묘한 맛에 매실차를 싫어했던 웃기게도 몇 년이 지나니 오묘한 맛에 매력을 느껴버렸다.


그 이후로 하루에 한 잔, 아르바이트생에게 주어졌던 무료 음료로 나는 매일 찾던 소화제 대신 매실차를 택했다. 카페 알바를 그만둔 이후로는 카페에서 보기 드문 메뉴인 매실차는 일상에서 잊히기 시작했지만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가끔씩 그때 마셨던 매실차가 문득 생각이 난다.



강가 앞에 앉아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며 얼음이 떠있는 매실차를 잘 저어 마신다. 매실 특유의 오묘한 맛에 기분이 좋아진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짧은 봄이 성큼 다가왔고 지금 우리를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금방 여름이 오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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