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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08. 2023

준만큼 돌려받는다는 것

어쩌면 미련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정이 많았다. 작은 것 하나에도 온 마음을 담아 자주 부서지기도 했었다. 무수히 부서지며 상처 많은 어른이 됐음에도 나는 여전히 작은 것에도 온 마음을 다하고 나의 것을 주는 사람이었다. 소중히 대해지지 못했기에 오히려 소중히 대했고, 내가 웃지 못했기에 나로 인해 미소 짓는 사람들이 많길 바랐다. 


20대가 막 되었을 무렵 사귀었던 남자와 여행을 갔었다. 어딘지도 기억이 안나는 그 여행지의 자그만 소품샵에서 나는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을 떠올리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들을 정성스레 골라 한아름 담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져 신나게 그에게 조잘댔다.


"친구가 정말 좋아할 거야, 이 물건을 보자마자 그 친구를 떠올렸어. 너무 잘 산 거 같아 기분이 좋아"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신나서 뱉은 말에 그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선물을 주는 건 좋은데... 너 네가 퍼준 만큼 그 사람들한테 돌려받긴 해?"

 

그저 퍼주는 내가 바보 같아 보였는지, 내가 주저 없이 남에게 쓴 그 돈이 아까웠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하는 그를 보며 내 입가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그에겐 내가 대체 어떻게 보였길래 그런 말을 했을까. 




그와 헤어져 몇 년이 지나고 20대 후반이 되어 그의 얼굴은 가물가물해졌지만 그 말은 이따금씩 내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는 단순히 나에게 물질적인 것을 말한 것일 테지만 나에게 그 말은 물질적인 것 그 이상의 것까지 생각하게 만들었다. 애당초 누군가를 위할 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준만큼 그들에게 돌려받을 수 있는가.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가 주고 싶으면 한없이 주었고, 그들이 행복해하면 나도 행복해했다. 


그 시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많은 것을 줬던 사람들 중에는 지금은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된 사람들도 있지만 서로를 미워하며 관계를 끊은 사람도 있고, 서서히 멀어져 지금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분명한 건 그 어떤 사람에게도 나는 내가 아낌없이 주었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주었던 것들은 훗날 소중한 존재들에게서 내가 무너져갈 때 기댈 수 있는 품이 되어 돌아왔고, 서로를 미워하는 관계에서는 정이 많은 내가 그들과의 관계에서 미련을 가지지 않고 끊어낼 수 있게 해주는 가위가 되어줬고,  서서히 멀어져 간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그저 웃을 수 있는 하나의 따뜻한 기억과 추억이 되어줬다. 


계산적이지 못하고 어쩌면 미련해 보일 수 있지만 나는 내 이런 삶의 방식을 사랑한다.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나 같은 사람 하나가 따뜻한 기억 하나 만드는 거 아니겠나. 전부 물질적으로 돌려받지는 못했지만 다른 식으로 모두 돌려받았다. 그것들은 내 인생에 추억과 교훈으로 돌아왔다. 가끔 과거의 인연들의 삶이 힘들어질 때 나에게 연락이 종종 오곤 한다. "우리의 추억이 생각나서, 네가 생각나서 연락했어. 우리 그때 참 좋았는데"


계속될 인연이 아니더라도 그런 추억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그들과의 추억에 잠시 미소 지을 뿐 억지로 연을 이어가려 노력하지 않는 정 많은 나를 보며 만족한다. 미련과 후회 없이 때에 따른 내 감정과 마음에 솔직하게 움직이며 살고 있구나.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미련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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