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꽃잎
얼마 전 인기가수 박재범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one soju’를 런칭했다. 박재범의 이름값과 요샛말로 ‘힙’한 레이블, 인기가수들의 응원으로 출시 전부터 많은 화제를 낳았던 원 소주는 출시 후 완판 되며 그 인기를 톡톡히 증명했다. 맛에 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는 듯 하지만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증류식 전통 소주를 홍보하는 계기가 됐으니 필자의 입장에서는 일단 원 소주의 탄생이 반가운 일이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식당 및 주점에서 희석식 소주 외에 증류식 소주를 볼 일이 드물다지만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제 증류식 소주를 구입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웬만한 대형 마트에는 안동소주와 문배술, 화요를 기본적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전통주는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기에 집에서 마우스 클릭 몇 번으로 훌륭한 소주를 접할 수 있다. 전통주 시장의 성장에 따라 증류식 소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지만 아직은 와인이나 위스키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인 것이 사실이기에 원 소주의 출발이 반가운 것이다.
2022년에 원 소주가 있다면 2016년엔 ‘Tokki soju’가 있었다. 지금보다 전통주에 대한 관심도 적고 시장의 규모도 작았던 때였다. 그러나 토끼 소주는 등장만으로도 지금의 원 소주처럼 큰 화제가 되었다. 토끼 소주는 당시 서른둘이었던 미국 청년 브랜 힐(Bran Hill)이 뉴욕에서 만든 한국식 소주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정말 구하기 어렵다는 희소성은 물론 미국인이 만든 한국 소주란 사실 그 자체에 사람들은 신기해했고 관심을 표했다. BTS부터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 흥행까지, 요즘에야 ‘K-무엇 무엇’ 하면서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낯설지 않지만 외국 것이라면 덮어놓고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꽤 전이지만 모 정권에서는 진지하게 영어 공용화를 논의했다가 국민들의 거센 철퇴를 맞은 적도 있었으며 ‘문화 사대주의’가 전 국민에게 크나큰 문제로 인식되며 한동안 교육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해서 무시했던 막사발이나 민화, 무가(巫歌)나 승무, 산조, 전통 복식, 막걸리 등이 외국에서 먼저 주목받고 각광받아 오히려 역수입되는 기이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2009년 12월 유명 기타회사 Fender에서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인 최초로! 신중현에게 기타를 헌정했다. 얼마나 대단한 가치를 지닌 기타인지는 두 말하면 입 아프다. 신중현 이전에 펜더에게 기타를 헌정받은 뮤지션은 에릭 클랩튼, 제프 백, 스티비 레이 본, 잉베이 말름스틴, 에디 반 헤일런뿐이었다. 이 찬란한 명예의 전당에 신중현은 여섯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렇다면 왜 신중현이었을까. 신중현은 명실공히 한국 락의 대부이자, 대중음악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대한민국이 아직 지독한 가난의 수렁텅이에서 발버둥 치고 있던 1960년대 초 신중현은 기타를 연주했다. 미 8군 연예단의 기타리스트였던 신중현의 기타 실력에 미군들은 ‘히키 신!’을 외치며 열광했다. 신중현의 위대함은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비틀즈 조차 이제 1집 앨범을 발매한 60년대 초 신중현은 add4를 결성하여 당시 한국에 이름조차 생소했던 락 음악을 뿌리내렸다.
“한국 록 음악의 아버지란 말이 단지 록 음악으로 최초의 성공을 거둔 사람이란 뜻이 아니라, 압도적인 서구의 문화 앞에서 그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어떻게 한국적 정체성을 구현하고자 했는가 하는 그 창조적인 노력에 경의를 표한 말이 되어야 합니다.”
음악 평론가 강헌의 말마따나 신중현은 서구의 락 음악을 한국에 정착시키면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놓치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대표곡인 ‘미인’ 같은 경우 동양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조 5 음계를 사용하여 락 음악을 하면서도 한국 민요의 정신을 놓치지 않았다. add4, 더멘, 엽전들, 세 나그네 등의 밴드를 이어오며 신중현은 김정미, 김추자, 박인수, 이정화, 장현 등 뛰어난 보컬을 키워냈으며 ‘빗속의 여인’, ‘거짓말이야’, ‘커피 한 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봄비’, ‘꽃잎’, ‘미련’, ‘햇님’, ‘바람’, ‘아름다운 강산’ 등의 숱한 명곡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신중현의 음악은 철저하게 짓밟혔고 한국 락 음악계는 산울림과 들국화의 등장을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대중의 관심이 다시 신중현에게 쏠린 것은 상기했던 2009년 이후였다. 펜더에서 기타를 헌정받고 2008년 포니캐년 코리아에서 발매된 ‘신중현 앤솔로지’ 앨범이 2년 만에 재발매되었으며 미국에서는 월드앨범 ‘아름다운 강산:대한민국 신중현의 사이키델릭 록 사운드(Psychedelic Rock Sound)’이 2011년 발매되었다. 마찬가지로 2011년 신중현 사단의 비운의 걸작인 김정미의 now가 미국 음반사에 의해 재발매되었으며 꾸준한 인기로 2016년에도 리마스터로 재발매되었다. 특히 수록곡인 ‘햇님’ 은 미국 영화 ‘덕 버터’의 엔딩곡으로 쓰이면서 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한국문화가 세계를 열광시키는 요즘 우리는 우리의 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가 알고 있다. 젊은이들은 이제 팝과 함께 K-pop을 들으며 와인과 함께 전통주를 마신다. 브랜 힐의 양조장은 이제 뉴욕 대신 충주에 자리 잡았고, 소주에 이어 선비진과 선비보드카까지 시장에 내놓으며 한국적 정체성을 꾸준히 그들의 술에 담고 있다.
BTS 이전에 신중현이 있었다. 원 소주와 토끼 소주 이전엔 알아주지 않는대도 꾸준히 술을 빚고 명맥을 유지해오던 이름 없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고 싶다.
신중현의 대마초 파동 이후 전량이 몰수, 폐기되었다가 2011년 미국에서 재발매 되었다. ‘햇님’, ‘바람’ 등 명곡이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