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있는 시간
음식에도 표절이 있을까. 법적으로는 판단이 애매한 모양이지만 심증으로 라면 표절이 있다고 답할 수 있다. 몇 해 전 이슈가 됐던 ‘덮죽’ 레시피 표절 논란이나 대기업 파리바게트의 ‘감자빵’, ‘계란후라이 케익’ 표절 논란 등을 떠올려보면 간단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인기 과자류들이 대부분 일본이나 미국, 혹은 자국 내 타회사의 인기 제품을 표절(혹은 과도한 모방)한 것이라는 사실은 이제 상식으로 통용될 만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느 정도 당연하다 옹호할 수 있겠지만 특정 음식이 인기를 끌면 우후죽순처럼 비슷한 음식을 내놓는 식당이 늘기 마련이다. ‘엽기떡볶이’류로 분류할 수 있을 법한 수많은 떡볶이 프렌차이즈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웃돈까지 얹어 주고 구했던 ‘허니버터칩’은 영역을 확장하여 허니버터 오징어, 허니버터 감자처럼 어울린다 싶은 음식엔 죄다 허니버터를 끼얹는 위엄을 연출했다. 또 본토에서 상륙한 ‘흑당버블티’가 유행하자 지금까지도 대부분의 카페에서 흑당 버블티를 취급하고 있다.
판단은 결국 개인의 몫이고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술도 결국 음식이기에 상황이 비슷하며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것과 마찬가지인 전통주 업계에선 특히 그렇다고 본다. 한국의 돔 페리뇽이라고 광고했던 ‘복순도가’가 크게 유행하자 많은 양조장에서는 앞다투어 스파클링 막걸리를 출시하기 시작했다. 또 서울의 ‘나루 막걸리’가 특유의 가벼우면서도 부드럽고 달달한 맛으로 입소문을 타자 유사한 맛을 앞세운 막걸리들이 지금까지도 대거 출시되고 있다. ‘연희’시리즈나 ‘C막걸리’ 시리즈가 사랑을 받으니 이제 전통주 업계에 트렌드가 술에 넣을 수 있는 부재료는 죄다 넣어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 외에도 원주(전내기)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땐 원주를, 진(gin)이 관심받을 땐 진을, 고가의 술이 대중의 관심을 받을 땐 그와 유사하게 값비싼 술들이 세상에 나오고 있다. 독자에 따라 어조를 다소 비판적으로 느꼈을 수는 있으나 사실 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앞서 말했듯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어느 정도 당연하다 보며 그렇게 또 시장이 확대되는 것이기에. 그리고 아직까지는 후발주자들의 맛이나 정성이 그렇게 뒤처진다거나 단순히 흉내 내기에 그치는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다만 점점 양조업계에서 장인정신이 사라지고 전통주가 획일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조금 있을 뿐이다.
저작권이란 개념이 모호하고 법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음식업계와 달리 음악업계에서 표절 시비는 매우 첨예한 문제다. 음계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멜로디의 경우의 수는 유한하고 그중에서도 좋은 멜로디는 더욱 한정적인 데다가 장르적 특성까지 겹치면 사실 비슷하지 않은 노래를 찾기가 더 힘들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라 칭송받는 비틀즈만 해도 척 베리나 넷 킹 콜과 같은 다른 가수의 곡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시달렸으며(비틀즈의 come together과 척 베리의 You can’t catch me) 비틀즈 해체 이후 조지 해리슨이 발표한 ‘my sweet lord’는 빌보트 차트 1위에 무려 4주간이나 랭크됐고 오늘날까지도 불후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으나 곧이어 시폰즈의 ‘he’s so fine’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렸다. 결국 이어진 법정다툼에서 조지 해리슨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의도하지 않았고 무의식적으로’라고 해도 결국 표절이 인정된다며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이후 조지 해리슨은 자서전에서 ‘대중음악의 99%는 다른 음악을 생각나게 하는데 법원이 이를 무시했다’며 억울해했다. 한편 하드락의 전설적인 밴드 레드 제플린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여 ‘babe I’m gonna leave you’나 ‘whole lotta love’, ‘boogie with stu’, ‘bring it on home’ 등 유명곡들이 대부분 표절곡으로 인정되었고 지미 페이지는 훌륭한 기타리스트이지만 작곡자는 못 된다는 비평을 동료들에게 들어야만 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90년대 최고의 밴드, 비틀즈 이후 최고의 밴드라던 오아시스도 표절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크게 히트한 앨범 DM(difintely maybe)의 수록곡 ‘shakemaker’ 외에도 ‘step out’ 그리고 싱글 ‘whatever’ 등은 확실히 표절이 인정되어 곤욕을 치렀고 그 외에도 표절시비에 시달리는 인기곡들이 다수 있다. 물론 노엘 갤러거가 선배 가수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이런저런 샘플링을 종종 활용한 것이 더 논란을 키운 것일 수도 있다. 또 아무도 캐묻지 않아 도통 전말을 알 수 없지만 미국의 펑크 밴드 그린데이의 대표곡 ‘american idot’도 조영남의 ‘도시여 안녕’과 상당히 유사함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서도 90년대 문화 대통령 서태지의 ‘난 알아요’나 ‘하여가’, ‘교실 이데아’, ‘come back home’ 등이 표절 의심곡으로 지금까지 시비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별의 그늘’이나 ‘가려진 시간 사이로’, ‘달리기’ 등으로 유명한 대중음악계의 선구자 윤상도 변진섭에게 준 ‘로라’가 표절곡으로 사실상 인정되었다. 또 김동률과 서동욱의 전람회도 2집 수록곡 ‘유서’가 ‘천공의 성 라퓨타’의 OST와 유사하다는 표절 시비에 시달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신해철 역시 한때 표절시비에 휘달렸는데 그때 심정이 어땠는지 훌륭한 멜로디들이 이미 다 나와서 후대 음악가들이 완전히 새로운 멜로디를 창작하는 것이 어렵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락의 대부라 불리는 전인권의 솔로곡 ‘걱정하지 말아요 그대’는 이후 후배 가수들이 수도 없이 커버하고 드라마의 OST로도 삽입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나 독일 그룹 Bläck Fööss의 곡 'Drink doch eine met’을 표절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외에도 아티스트로서 꾸준히 자기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G-dragon도 표절시비에 휘말렸었으니 가요계에서 표절 논란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최근 안테나 뮤직의 수장이자 TOY 그 자체인 유희열이 새롭게 표절시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100분 토론에서도 한 꼭지로 다뤘던 이번 표절 논란은 유희열의 해명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너그러운 이해에도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토이의 기존 발표곡들까지 네티즌들에 의해 표절 의심곡으로 연일 거론되고 있다. 유희열을 둘러싼 이번 논란은 역으로 그가 가요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뮤지션이었는지, 그리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던 뮤지션인지를 입증해준다. 그의 표절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이미 수많은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입장을 밝혔으니 굳이 숟가락 하나를 더 올릴 필요는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이 한 명의 훌륭한 뮤지션을 매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는 지금껏 장르적 특성과 클리셰를 충실히 살리면서도 독창성을 가미하고, 대중성 있는 멜로디를 써왔던 뮤지션임은 분명하다. 어느새 예능인으로 보일 정도인 최근의 행보가 그가 쌓아 올린 훌륭한 뮤지션의 이미지를 퇴색시키기는 하였으나 이번 논란은 질책으로 충분하다. 유희열은 분명히 더 나은 음악으로 대중에게 화답할 수 있는 뮤지션이다. 실수 없는 인간이 어디있나, 누구나 한 번쯤은 그릇된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수많은 전설적인 음악인들이 그러했다. 훌륭한 뮤지션을 한 번의 실수로 잃을 수 없다. 교각살우의 우매함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자타공인 토이 최고의 명반이 아닐까. 수록곡 ‘혼자있는 시간’은 필자의 애청곡으로 이 노래 하나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부디 이번 논란이 깔끔하게 넘어가기를, 그리고 유희열이 더 좋은 음악으로 당당하게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