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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Aug 24. 2020

새벽 4시, "엄마 쉬야했어요"

[단편에세이]


 새벽까지 영감이 떠오르거나 집중이 잘 돼서 수면을 포기하고 계속 작업을 하게 되는 날들이 있다. 나에게 그제도 그런 날이었다. 야간 일을 끝마치고 새벽 5시에 귀가하는 남편을 위해 작업을 마무리할 시간이었지만 조금 더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리며 블로그에 쓴 글을 브런치로 옮기고 있는 와중, 새벽 4시경 둘째 아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너무 축축해요. 쉬야했어요.






둘째 아이는 5살이다. 태어나고 한 달 만에 통잠을 자던 효녀 아이는 첫째보다는 더뎠지만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유일한 비교 대상이었던 첫째가 모든 게 너무 빨랐던 터라 둘째가 느린 건가 고민했으나 괜한 걱정이었다. 너무나도 아이답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성장했다.



둘째는 기저귀를 3~4살 무렵에 졸업했다.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졸업반에 접어들었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배변 훈련을 시작하고 어렵지 않게 기저귀를 뗐다. 모든 게 빨랐던 첫째는 오히려 배변 실수가 좀 있었는데, 둘째는 언니가 있어선지 큰 실수 없이 무탈히 성공했다. 전혀 배변으로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무던하고 그럭저럭 자라던 둘째가 진짜 아이답게 한 단계씩 자라는 게 이런 거구나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틀에 한번 꼴로 자면서 소변 실수를 했다. 처음엔 아이가 너무 깊게 잠들어서 피곤해서 못 깼나 보다 싶었는데 한 달이 지나가니 생각이 달라졌다. 이건 야뇨증이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봤다. 보통 한의원, 소아과의 포스팅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끌리지 않았다. 내원해서 실제로 야뇨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들, 약물 치료로 고치고 싶진 않았다. 고민하다 심리 상담 선생님과 대화할 때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원래 실수가 있었냐 아니면 갑자기 실수를 하게 된 거냐 물으셨다. 후자가 맞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우리 부부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대신 냉정하고 정확하게 말씀하셨다.



ㅇㅇ씨, 이건 심리적인 문제예요. 사실 질환으로 보셔야 해요.
심리적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 증상이 있어서 그럴 수 있어요.
우선 ㅇㅇ씨가 하셔야 할 건,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들에게 규칙을 정해주셔야 한다는 거예요.
엄마니까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건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셔야 해요.

첫째, 아이에게 소변 실수로 인해 수치심을 주지 않으셔야 해요.
둘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모르는척해주시고
아이가 스스로 이겨낼 수 있게 기다리셔야 해요.



ⓒPixabay



선생님은 아이에게 "또 쉬했어?", "쉬를 하다니 아직 아기구나?", "실수 그만 좀 해." 같은 원망 섞인 말이나 수치심을 줄 수 있는 말을 삼가라고 강력히 말씀하셨다. 엄마가 힘든 건 결국 뒤처리인데, 이불과 옷은 세탁기가 빨지 손빨래 안 하지 않으시냐며 아이가 중요하지 그깟 빨래가 중요하겠냐고 하셨다. 물론 충분히 힘들고 번거로움에 대해 공감하지만 이 상황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당사자일 것. 얼마나 수치스럽고 자신이 한심해보이겠는가. 엄마의 노동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조금 수고로워도 이겨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격려해 주시고 차라리 기저귀를 채우라고 하셨다. 선생님과 대화를 하며 눈물샘이 폭발했다. 아이의 야뇨증이 나 때문인 것 같고, 그동안 어리석은 어른들의 언행에 아이가 얼마나 상처 받았을까 가슴이 미어졌다.






 갑자기 둘째에게 왜 야뇨증이 생긴 걸까. 말하지 않아도 사실 감이 왔다. 둘째는 나랑 닮았다. 기질상 불안 지수가 높은 편이다. 불편하고 짜증 나는 감정이 있으면 해소가 잘 안되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꾹꾹 눌러 담는다. 말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터라 몸으로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누군가와 다툼이 일어났을 때 분노 조절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훈육을 하고 위로를 해줘야 할지 수많은 날 동안 고민했었다. 한편으로는 나의 모습들이 보여서 부인하고 싶고 모르는 척 합리화하고 싶기도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모든 게 내 탓이 되는 것 같아 밤마다 눈물을 흘렸다. 나의 손길이 부족해서였을까? 매일 육아와 일, 자기 계발을 병행하며 뭐 하나라도 포기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너는 네 욕심을 채우겠다고 아이를 망치는 거니?

이 어미가 부족한 탓에 너를 고생시키는구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에 나는 스스로를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미안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모든 걸 잘할 수는 없어. 그건 욕심이야.
엄마도 부족하고, 엄마도 잘 몰라.
엄마가 그저 할 수 있는 건
너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너의 아픔을 공감하기 위해 노력할게.
엄마가 너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이라도
온전히 너에게 집중하고 마음에 담아둔 사랑을 모두 표현할게.
너는 엄마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기에,
엄마는 네가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길 원하면서도
사랑을 나눠주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랑을 아는 거거든.
그 사랑을 알 수 있도록 엄마가 더 부단히 사랑해 줄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느려도 괜찮아.
실수해도 괜찮아.
너는 존재만으로도 빛이 나기에.



내가 항상 옆에 있을게
네 손을 꼭 잡아줄게
눈부신 햇살처럼
네 삶을 빛으로만 비춰줄게

'널 사랑하는 걸' - 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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