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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Aug 14. 2020

나는 네가 너무 싫은데 어쩌냐

[단편에세이]


나는 거절을 못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나의 내면에 애정 결핍과 인정 욕구가 있어서 더욱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1. 힘든 일이 있어서 만나자고 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함께해준다. 기쁜 일은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힘든 일이 있을 땐 함께해줘야 한다고 세뇌받았다.


2. 나한테 먼저 연락해주는 사람은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아도 나를 먼저 생각해주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항상 부탁을 들어주고 응해준다.


3. 부탁을 받았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면 버거워도 해준다. 모든 부분에 '능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크다.


4. 공과사의 벽을 잘 허문다. 누군가에게 '성격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다.


5. 나한테 동생, 언니, 딸같이 편하게 대해도 된다고 먼저 제시한다. 그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든, 직급이 낮은 사람이든 상관없다. 그게 내가 친밀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생활 n년차를 하다 보니 이런 행동들이 아주 멍청했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게 되게 나이스 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랬는데, 사실 나의 행동들은 만만하게 보이기에 딱! 좋다! 이제 와서 선을 긋고 지내려고 하니 '원래 안 그랬는데 왜 그래~'라며 되려 욕을 먹는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내가 22살 초반부터 다녔고, 어쩌다 보니 선임이나 상사들이 이직과 퇴사를 하셔서 자연스레 선임을 맡게 되었다. 문제는 내가 나이 어린 선임이 되다 보니 나이 많은 신입들을 가르치고 리드하는데에서 많은 고민이 생긴다. 내가 너무 무섭게 일을 배워서 '나는 분위기 좋게 팀을 꾸려가고 싶다'라는 생각에 풀어주면 만만한 선임이 되고, 강하게 리드하면 '나이도 어린 게'라는 속마음이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호구 같은 5가지 면목들이 적용되면 효과는 따따블. 환장할 노릇이다.



ⓒPixabay






이러던 내가 정말 절제하며 선을 지켜야겠다 생각하게 한 2명이 있다. 두 명의 공통점은 내가 처음에 마음을 너무 많이 내어준 것.



프라이버시를 위해 자세한 내용 오픈은 어렵다.


A는 친해져서 잘 지내보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서 첫날부터 나한테 말을 내려놓고 친근하게 대하는 것도 다 받아줬었다. 더 챙겨주고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여우들이 벌이는 특유의 기싸움의 도사였다. 아니 뱀 같다. 내가 잘해주려고 노력할수록 본성이 드러났다.

나는 곰이다. 학창 시절부터 여학생들의 편 가르기와 기싸움에서 내 역할은 매일 희생양이었다. 그건 성인이 되어서도 동일한가 보다. 어느 사회 집단에 가도 꼭 그렇게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당사자들은 백이면 백 본인이 갈라 치기를 하고 여우짓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맨날 물리고 쥐어 뜯기는데 멍청하게도 나는 '나이스 한 사람'처럼 행동하면 바뀔 줄 알았다.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려 알지도 못하게 머리 끝까지 올라가 목을 조르려는 행동 때문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대놓고 문제 되는 부분에 대해서 말하면 나만 나쁜 사람이 된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피해라도 안 입기 위해 무관심침묵을 선택했다. 그래도 피해는 온다. 내가 입을 다물더라도 A의 여우짓은 계속된다.


"왜 그러는 거야? 나는 도대체 뭐가 문젠지 모르겠어...^^;;"



B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기고한 삶의 경험을 듣다 보니 마음이 많이 가서 잘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도움을 받은 일도 많았기에 나름의 끈끈한 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꼰대는 꼰대다.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전형적인 꼰대라면 이해를 하겠다. 세대차이는 어쩔 수 없으니까. 이분은 어느 집단에서도 '회장 놀이'를 즐겨하시는 분이다.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어린 시절 대장놀이부터 대기업 회장 놀이까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만나면 눈치 보고 맞춰주기 바쁘고, 혹여나 말 한마디에 감정이 상할까 봐 노심초사했다. 진솔하게 감정이 상했던 부분들을 얘기하면 해결될 줄 알았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말하는 순간은 이해하는 듯했고 관계 개선의 희망이 보였다. 그러나 마치 사원이 회장님께 고충을 토로할 때 잘 들어주셔서 해결될 거라 생각하지만 결국은 아무 변화가 없듯이, 이 관계도 동일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나는 B에게 짜증을 들어도 될 사람이었고, B는 나에게 짜증을 내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감정 쓰레기통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너, 나한테 그러면 안되는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



(으악!!!!!!!! 듣기 싫어!!!!!!!!!!!!)






처음엔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내 성격이 이상한 건가 싶었지만 다들 말은 안 해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미 적당한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더 이상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이 두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 노력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앞으로 동일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적당한 거리를 둘 것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1. 개선하려고 진솔하게 얘기했을 때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냐? 그들은 잘못이 없기 때문에. 자아성찰이 없는 사람은 소통이 안된다.

너무도 완벽한 그들과 어찌 '감히' 말을 섞겠는가.


2.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되게 씁쓸한 말이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인 걸.


3.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을 우습게 생각한다.

잘해주면 상대방의 이면에 뭐가 있든 그게 다다. 나니까 네가 이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본인이 옳기에, 너무도 청렴결백하기에 상대방이 무엇을 말하든 귓등으로 듣는다.



나는 관계를 되게 소중하게 생각한다.

어쩌면 호구같이 보이고 왜 저렇게까지 사나 싶을 정도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이용하려 들거나,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니 내가 어리석었구나 싶었다.

관계가 끊어지고, 나에 대한 안 좋은 평가가 도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참기만 하며 회피했다.

그러나 두려웠지만 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속이 편안해졌다.


ⓒPixabay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할 때마다 당신은 물살을 거슬러야 한다.
종종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 당신을 목적지로부터 멀리 끌어내기도 한다.

왜냐하면 당신 인생의 사람들은
당신을 특정한 종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이 그 틀을 깨려고 할 때마다
당신은 자신의 세상만 어지럽히고 있는 게 아니라
그들의 세상까지 어지럽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작의 기술' 中                           




관계와 사람에 대한 나의 애틋한 마음은,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만 올인하기로 했다.

나를 막대하는 사람들이 나를 X년이라 욕할지라도, 선을 긋기로 했다.

내 영역에 침범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나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것들을 적당히 내쳐주는 것에 자책을 하거나 죄책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내가 소중하기에, 나는 나를 사랑하기에.

내가 아프지 않기 위한 행동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하기로 했다.

(내가 나를 챙겨야지 누가 나를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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