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에세이] 원래 그런 당신이 싫은 그대들에게
냉장고에는 칸마다 넣어야 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다. 야채 칸엔 야채만, 육류 칸엔 육류만. 신선제품, 가공식품 그 무엇이든 각 음식마다, 재료마다 보관 방법은 제각기다.
혹시나 야채 칸에 육류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 상하게 된다. 육류 칸에 야채를 넣으면? 얼어서 못쓰게 된다. 실온 보관인 재료를 냉장고 안에 넣어도, 냉장 보관인 재료를 실온에 넣어도 재료를 못쓰게 된다. 이처럼 냉장고 온도라는 환경은 각 재료의 사용 가능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 각 개인은 재료와도 같다. 이 재료들은 각자 보관 방법이 정해져있고, 사용 방법이 다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재료인지, 그래서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모른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데 하물며 자식은 알까? 자식을 이해하지 못해서 불화가 생기는 것도 보통 이런 이유이다.
나는 활발하고 사교적이다. 언변이 뛰어나고 다수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나의 부모는 뜨거운 나를 차가운 냉장고 속으로 바로 직행시켜버려 상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그 결과, 나의 어린 시절은 사고를 치거나 반항이라곤 일절 하지 않는 순한 아이가 되었다. 거저 키우는 아이 말이다. 그렇게 사용하기 좋은 재료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어린아이 때는 넘치는 비글미를 분출해 줘야 에너지 해소가 되고 내면의 평온을 얻는다. 부모가 키우기 편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조용히 하라' 억압하고 '가만히 있어라' 누르는 것은 아이에게 독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많은 부모가 아이에게 얌전히 있기를 요구한다. 보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 또한 동일하다.
알맞지 않은 온도로, 알맞지 않은 환경으로 자라게 되면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상한다. 안 보이다가도 정도가 심해지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사람으로 적용하자면 내면의 부패가 몸으로 드러나는 시기가 온다.
그렇게 자란 나는 불안 장애와 공황 장애를 지니게 되었다. 공황 장애는 성인이 되고 나서 내면의 불안과 사회생활을 통해 얻는 스트레스가 결합되어 격한 반응이 일어난 것으로 나 스스로는 생각한다. 하지만 불안 장애는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잠재되어 있었다. 아마도 유아기 시절 잘못 설정한 냉장고 온도의 탓이 아닐까 싶다.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모르기도 한다. 나는 내가 불안하다는 인지를 못하고 단순히 생각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주변에 친구나 선생님들을 붙잡고 초등학교 때부터 말했었다.
머리에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이 안 와요.
하지만 사람들은 크기 위한 과정이라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게 대부분이었다. 보통 사람은 아닌 나의 부모부터, 보통 사람인 선생님, 주변 어른들 모두 동일하게 말했다.
어른이 되는 과정일 거야.
우리 김선비가 애늙은이네
생각도 많이 하고 어른스럽고. 대견해.
이 칭찬이 듣기 좋았다. 어떻게든, 무엇이든 인정받는 것 같은 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더 생각했다. 생각에 생각을 하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렇게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는 게 어른들의 자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간과한 게 있다. 내가 했던 생각들은 미래를 위한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이 아니다. 어둠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가 형체조차 없어질 수 있는 무시무시한 생각들이었다.
좋지 않은 생각을 반복하니 좋지 않은 결과가 주어진다. 그렇게 생각이 많던 나는 스트레스를 소화할 수 있는 시작점이 남들보다 매우 높았고, 한계점은 남들보다 낮았다. 이미 스스로 생각을 가득 채워놓으니 시작점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가 금방금방 차올라 한계점에 도달했는데 분출할 수 있는 뚜껑은 없었다. 총체적 난국이다. 안에서 부패하고 썩어갔다.
부끄럽지만 이해를 위해 나의 작은 경험을 이야기해보자면, 5살 때 너무 배고파서 주방 찬장에 있는 각설탕을 꺼내어 먹었다. 아빠가 커피 타먹을 때 쓰는 각설탕인데 그걸 먹으면 어떡하냐고 혼났다. (나의 건강을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할머니 시대 방식대로 옷을 다 벗겨서 집 앞에 쫓겨나고 밤늦은 시간 아빠가 올 때까지 홀딱 벗은 상태로 주저앉아 있었다. 명백한 아동학대지만 그 시대는 그게 합리화되는 훈육이었다.
나는 억울함과 분노를 이기지 못해 아무도 없을 때 과도를 들고 심장에 들이댔다. 다시 말하지만, 그때 나이 5살이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과거의 기억이 또렷한 편이다. 너무 충격적이고, 자극적이고, 트라우마로 남을만한 일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기억에 다 남아있다.
실제로 과도로 스스로를 찌르진 못했지만 무섭게도 그게 습관이 되었다.
어느 날은 옆집 오빠가 슈퍼에서 도둑질을 했는데 내가 했다고 뒤집어 씌었을 때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그 감정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과도를 복부로 들이밀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친구들이 '김만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땐 이름에 '민'자가 들어가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만두라는 별명을 가지게 됐다. 흔한 별명인데도 나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수치심을 느꼈다. 친구들이 별명으로 애정스레 놀릴 때마다 나는 집에 가서 과도를 들었다.
정말 별거 아닌 스트레스임에도 나는 쉽게 동요되었다. 불안의 잔재가 끊임없이 나를 절벽으로 몰고 갔고 낭떠러지 위에서 위태위태한 상태를 지속하게 했다.
성인이 되고 우리 집에서 탈출하면서는 기존의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화목하고 사랑받는 가정에서 살아온 남편이 큰 역할을 해줬다. 나의 기준은 남편의 가정이 되었고, 가족의 사랑이란 이런 것이구나 차차 알아가게 되었다.
친정과는 완전히 연락을 단절한 상태였다. 그러다 고모랑 연락을 했다. 고모는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의 부재를 유일하게 대체해 주셨던 분이다. 엄마가 될 순 없지만, 엄마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해주려고 노력하셨었다.
고모는 아픔이 가득한 사람이다. 내면의 상처가 깊어서 헤어 나오지 못하신다. 드라마보다 더한 충격적인 일련의 사건들로 고통받았던 고모가 점점 정신이 피페해짐을 스스로도 직감하셨다.
간혹 정신 질환의 모습도 보이고, 속에 쌓인 대상 없는 분노를 표출할 데가 없어서 나한테 하곤 하셨다. 일을 하고 있으면 30줄 정도 장문의 글이 핸드폰으로 열댓 개씩 쏟아진다. 폭언, 욕설, 또는 하소연, 넋두리, 유서까지 다양한 내용이다. 그런 고모를 곁에서 보살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정상궤도에 있어서 괜찮을 거라 믿었기에.
고모는 '우리 집안', '핏줄'이라는 단어로 나를 휘어감았다. "나는 너를 보면 나를 보는 것 같아", "넌 나랑 똑같아."등의 말로 나와 본인을 동일시하셨다. 나를 보며 자신을 비추면서 자신의 아픔으로 인한 이상 행동들의 정당성을 찾는 것 같았던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우리 집안사람들이 원래 다 그래.' 뭐 이런 합리화 정도.
그런 세뇌가 반복되는 순간 나는 '역시 우리 집안사람이구나, 핏줄이구나' 하는 생각에 과거로 다시 휩쓸려갔다. 정상궤도에 있어서 어떤 자극이 와도 단단할 줄 알았던 나는 파도 한 번에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렸다. 나의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정상적인 나의 친정 사람들과 같은 피가 흐르는 걸 거스를 순 없지만 역겹고 버거웠다. 할 수만 있다면 피를 다 갈고 싶었다. 고모를 마주하면서 다시금 보게 되는 친정집의 흑역사들이, 단점들이, 약점들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다.
지속적으로 다니는 상담 센터에 가서 이 얘기를 토로했다. 선생님은 냉장고 비유를 들면서 나를 위로하셨다.
선비 씨는 선비 씨를 아낌없이
사랑해 주는 ㅇㅇ씨(남편)가 있잖아요.
기존의 삶에선 친정과 같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이제는 선비 씨에게
사랑을 주는 가정이 생겼고
선비 씨가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온도에 따라, 환경에 따라
재료의 상태는 변하기 마련이에요.
재료 본성이 같다고
환경이 이리도 다른데
보관 상태까지 같은 건 아니잖아요?
이 이야기를 듣고 아차 싶었다. 습관적인 자기혐오를 반복하는 나는 우리 집 핏줄이라는 단어 하나로도 수 백 개의 혐오로 나를 포장했다. 나의 아픔과 상처를 합리화하기 위함이었다. 쓰레기라고 시인해야 쓰레기 같았던 삶이 그렇구나 하고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
방향을 잘못 짚었다. 나는 이제 다른 삶을 살고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가정이 있고, 내가 사랑을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이다. 태어나 가지는 기질과 성격은 어느 정도 비슷할 수 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나의 친정이 '너는 우리랑 같은 과야. 너도 이런 거지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어.'라고 동일시해도 절대 같아질 수 없다.
이렇게 극단적이고 다이내믹한 삶을 산 나의 이야기는 보통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공감이 안 될 수도 있다. 어디 티비에나 나올 법 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다. 하지만 이 원리는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아주 잘 적용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 자신의 본질을 정의하며 한계선을 긋는 단순한 말이 있다.
나는 원래 이래.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첫째, 원래 그렇기 때문에 현재 삶에 안주하는 사람.
문제는 그것이 당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신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아프게 또는 언짢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을 하자면, 나는 원래 이런 기질과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변화할 수 없다는 것은 합리화다. 환경을 스스로 설정하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을 바꾸려는 인식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하면 안 달라질 수가 없다.
물론 편하진 않을 것이다. 정말 하기 싫고 힘들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허물을 벗거나, 알을 깨고 나오거나, 출산을 겪을 때 극도의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삶도 동일하다. 기존의 살던 방식과 관습, 기질을 내려놓고 다른 삶을 살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뒤따른다. 하지만 '원래 그런' 당신이 도전한다는 것,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더 걸어가길 바란다.
둘째, 과거와 습관에 묶여 자기파멸적 독백을 반복하는 사람.
"나 원래 이런 사람이야. " 당신이 원래 그렇다면 할 말 없다. 내가 원래 폭력적이고 문제적인 집안에서 살아와서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별 수 없다. 그게 당신이고 그게 나이기에.
그런데, 그래서 당신 스스로가 본인을 혐오한다면 당신은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다. 아무리 부처와 예수 같은 사람이 당신을 백오십만 년 동안 사랑한다고 해줘도 당신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받는 게 아니다.
원래 그런 거 맞으니까, 그냥 인정해라. 원래 그런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 주고, 아픔이 있다면 충분히 애도해 주고, 칭찬할 부분은 화끈하게 칭찬하고, 지적할 부분은 가감 없이 냉정하게 성찰하라. 그렇게 스스로를 알아가고,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온도에 있는가? 본인에게 맞는 온도에 있는가? 아니면 상하는지 안 상하는지도 모르겠는 어정쩡한 온도? 아니면 폭삭 썩고 부패될 안 맞는 온도?
온도 설정은 당신이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내가 어떤 재료인지 알아야 한다. 내 장점과 단점 모두를 받아들이고, 본연의 모습에 맞는 온도를 찾아 나가야 한다. 그리고 쉴 새 없이 알맞은 온도인지 온도계를 봐야 한다.
혹여나 잘못 조정했다고 해도 온도 설정은 언제든 가능하니 희망을 잃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삶은 언제든 변화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