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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파크 Nov 19. 2022

[당신의교도관]8. 교도소 새벽 규칙: 로큰롤 금지

너희들 사탄은 불과 유황 못에 빠져버릴지어다!


  기쁜 일은 드문드문 찾아오지만 힘든 일은 한꺼번에 몰려 오는 것,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인 걸까?

새벽을 수놓은 계장님 관자놀이의 붉은 핏줄이 채 가라 앉기도 전에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새벽 여섯 시경, 오늘 새벽은 이제 이렇게 지나가겠구나,라고 마음을 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마지막 순찰을 돌고 있을 때쯤, 갑자기 어디선가 날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괴성이 들렸다.


 구오오오아아RRRRRRR-!


 고라니인가?

 아니, 이곳에 고라니가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다면 사람인데,

 로큰롤 가수가 나타났나?

 정신 차려, 교도소에 로큰롤 가수라니, 너 돌았니?



정신 차려, 교도소에 로큰롤 가수라니!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교도소 안의 무언가가 교도소 전체에 울려 퍼질 정도로 큰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갈 만큼 내 머릿속에 교도소 내비게이션이 탑재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짐승의 그것, 혹은 록커의 그것과 닮은 괴성이 몇 초간 이어졌다.

폐쇠적인 구조의 계단과 복도를 통해 소리가 울리면서 퍼졌으므로, 나는 이 괴성이 위에서부터 온 것인지 아래에서부터 온 것인지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맞은편 복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사위를 확인했다.

가로로 길게 늘어진 십 여개의 거실 창문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는다.

3층으로 시선을 돌린다.

역시 마찬가지다.

1층을 내려다 본다.

어둠에 잠긴 거실은 적요하다.

한 방만 제외하고.


 시선이 그곳에 부딪히자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형상이 보인다.

희끗한 달빛이 철창을 움켜진 두툼한 두 손을 어렴풋이 비춘다.

혀뿌리보다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걸죽한 울부짖음이 외로운 독거실의 어둠을 뚫고 나왔다.

그제서야 소리가 난 곳이 징벌 대상 행위를 한 수용자들을 조사하기 위해 격리해놓은 수용동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근데 저긴 오늘 내 담당 구역인데?  

이 사실을 깨닫자 갑자기 몸 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가 얼굴로 끓어 올라오기 시작한다.


 큰일 났다.

내 구역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즉시 순찰을 멈추고 소리가 들리는 수용동으로 뛰어갔다.

어두운 복도가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짐승 울음소리로 목을 푼 록커, 아니 수용자는 이제는 큰소리로 욕설을 내지르고 있었다.


 야이 X발, X, 새, 끼, 들아-----! 


수용동 전역에 욕설이 울려퍼졌다.

성량이 보통내기가 아니다.

내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졌다.


 제발 그만 , 멈춰줘 부탁이야.


나는 거의 속으로 거의 빌다시피 하며 달렸다.


수용동 입구에 도착해 출입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길다란 그림자가 나의 등 뒤로 드리웠다.

키가 185 cm는 족히 되는, 몇 시간 전 이미 한차례 분노를 쏟아내신 계장님이었다.


 이 난리를 피우는데 여지껏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계장님은 나를 꾸짖으시고는 뒷짐을 진 채 성큼성큼 괴성을 지르는 수용자를 향해 걸어 갔다. 


 너 이새X, 조용히 안 해, 어?


모두가 계장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장군감이라고들 했다.

나 역시도 이에 이견이 없다.

딱 벌어진 어깨 주위로 붙은 탄탄한 근육과 꼿꼿한 허리.

예순이 가까운 나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뒷모습을 한 계장님이 수용자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아까까지 X발, X발을 연발하던 금수(禽獸)같던 수용자가 왠걸, 한마디도 안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당신, 분노조절장애인줄 알았더니 분노조절잘해...?


 너 임마, 왜 소리를 지르냐고, 왜.

왜 너 때문에 다른 사람 다 깨게 만들고 피해를 주냐고, 왜, 이 새X야.

너 안되겠어, 너 나와.

너 관구실로 따라와, 임마.


 모름지기 록커라면 반항 정신이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수용자는 반항 정신은커녕 허리께에 손을 올린 채 조용히 씩씩거리면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 걸 보면 진성 록커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 수용자, 진성 록커는 아니었지만 나름의 저력을 보여주었던 것이, 주섬주섬 수용자 복을 챙겨 나오던 중 갑자기 허리를 굽혔다.


 저놈이  무슨 짓을 하려나,했더니만 허리를  수용자의  손에 성경책이 쥐어져 있는  아니겠는가.

나와 계장님은 당황한 채 그 수용자를 바라 보았다.

수용자는 성경책을 여러 페이지씩 빠르게 넘겼다.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계장님 관자놀이의 힘줄이 춤을 추었다.

이윽고 수용자의 손이 멈추었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요한계시록 20장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장 7절-10절.


 아주 근엄한 표정이었다.

그 순간 수용자의 머릿속에서 그는 예수님이요, 우리는 사탄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심판을 내리듯 낮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성경 구절을 읊조렸다.

정신병자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솔직히 목소리 자체는 아주 나직하고 묵직하여 마치 성우의 그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심판이 끝났을 때 답례로 돌아온 것은 계장님의 거친 욕설이었다.


 이 새X 이거 완전히 또X이구만? 빨리 안나와, 이 새X야!

이게 어딜 X짓거리를 하고 있어.


 그렇게 수용자는 계장 님에게 끌려 갔다.

그 수용자의 뒷모습은 마치 강형욱에게 끌려 가는 강아지, 마석도에게 끌려 가는 장첸과 강해상 같았다.

그 수용자는 관구실에서 교도관들에게 둘러 쌓인 채 본인이 일으킨 소요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란다. 교도관들은 절대 수용자들에게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그렇게 교도소의 평범한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았다.


p.s. 아, 그리고 그 수용자는 밖에 있을 때 여호와의증인에 상당히 심취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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