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대학교에 들어가니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그동안 기숙사 생활에 지쳤던 나는 집을 얻어 자취를 했다. 또 학교도 매일 가는 것이 아닌 스케줄에 따라가면 되었다. 밥도 해 먹을 수 있는 주방도 생겼고 무엇보다 자유스러운 것이 너무 좋았다.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주의 사람들에게 누누이 들은 이야기 있다. 그것은 대학에 가서 혹은 성인이 되어서 친구를 잘 사귀라는 것이었다. 나는 낮을 가리는 성격이라 친구 사귀는 게 조금 힘들어서 그랬는지 그 말들을 자세히 새겨 들었는데 사람들 마다 친구 사귀는 법을 알려주는 노하우가 있었다, 그중 가장 공통적인 의견은 대학교 친구들은 비즈니스 관계라고 이야기했다. “친구가 과연 비즈니스가 될 수 있을까? ” 항상 그런 말을 들으면 이런 생각을 했지만 인생 선배들이 해주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새겨들으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니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는데 그중 이러한 편견을 없애준 친구가 있다. 1년을 재수해서 들어온 누나 한 명이었다. 이누나 이름은 동심이 누나라고 하겠다. (학교 다닐 때 그나마 듣기 좋은 별명이었고 이 별명의 뜻은 실명과 비슷한 거 빼곤 없다)
동심이 누나는 나와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살고 있었는데 남동생과 할머니랑 같이 살았다. 나와 누나는 같은 아파트이고 해서 항상 같이 학교를 갔다. 실은 이 누나 보다 내가 먼저 안 것은 이 누나의 할머니였는데, 내가 집 문제로 부동산에 들어갔을때 한 할머니가 한국말로 나에게 이야기를 물어보시며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나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반가운 마음에 친절이 대답해 드렸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가 내가 마음에 들어셨나보다 , 할머니 께서는 우스게 소리로 누나한테 몸에서 후광이 나는 사람이 너랑 같은 학교 같은 과인데 학교에 가면 친하게 지내라고 누나에게 말씀하셨다는 후문이다.
동심이 누난느 나와는 반대로 마치 여전사 같은 스타일이었다. 내가 약간 수줍어하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면 이 누나는 감정적이고 수줍음은 1도 없는 왈가닥 같은 스타일이었다. 가끔 심할 때는 남자 같은 성향도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엔 내가 별로 나와 맞지 않은 성격인 거 같아서 멀리하려고 했다.
그래도 나도 대단했던 것이 혼자 캠퍼를 걷거나 밥 먹을 먹는 거는 너무 창피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누군가 친구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처음엔 친하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누나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이 있었다. 나에겐 없는 그런 것들이었는데 사람들 에게 먼저 다가갈 줄 알고 본인이 먼저 희생할 줄 아는 그런 리더십이 내 눈에 보였다.
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해서 항상 소극적으로 남을 대했고 내가 상처 받기 싫어 방어적으로 인간관계를 했었다. 그러나 이 누나는 내가 매번 밀어냈음에도 뻔뻔하게 내가 밥은 먹었는지? 학교 숙제를 같이 하려는지? 등 수많은 것을 물어보며 나에게 다가왔다.
또한 자기의 남자 친구와 친한 동생들도 많이 소개해 주며 날 하나의 가족으로 대해줬다. 처음엔 너무 낯설고 굳이 궁금하지도 않은 인맥과 사소한 일들까지 이야기해 주길래 너무나도 귀찮았다. 그럼에도 이 누나는 굴하지 않고 나에게 다가왔고 나에게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나랑 왜 친해지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이 누나의 좋은 점은 항상 나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미리 계획하고 계획이 틀리어지면 포기하는 스타일인데 이 누나는 그래도 시작했으면 한번 해보자고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런 부분이 친구로서 꽤 마음에 들었던 거 같다.
우리 둘 사이 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나와 동심이 누나는 친해진 이후로 항상 같이 다녔기 때문에 같이 먹는 음식이 비슷했다. 심지어 학점까지도 비슷하다. 살찌는 것을 둘 다 천성적으로 좋아해서 둘이 있으면 먹는 부분에서는 엄청난 시너지 효과가 났다. 예를 들어 내가 치킨을 먹자 하면 치킨을 같이 먹는다. 그러고 나면 동심이 누나가 속이 느끼하니까 컵라면을 먹어야 한다며 컵라면을 사가 자고 와서 속을 달래는 그런 패턴이었다. 즉 인생을 돼지의 길로 나아가는 먹 시스템을 서로 공유하고 지지했고 응원했다. ^^
그렇게 먹고 나니 같이 살이 10KG가 넘게 쪘었다. 거울을 보면 얼굴살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고 배를 보면 할 말을 잃었다. 점점 불어 가는 우리의 모습에 학교 친구들은 둘 다 똑같이 살이 쪄간다며 비웃어 댔지만 우리는 먹는 게 너무 좋았고 맛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비웃음에 비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랬던 우리가 어느 날 서로 사진을 찍어 주는데 아무리 찍어도 서로의 모습이 예쁘게 담기지 않는 걸 느꼈다. 서로 상대방이 사진을 못 찍는 거라며 티격태격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알고 보니 둘 다 살이 너무 쪄서 사진 자체에서 각이 안 잡혔던 것이다.
충격을 먹은 우리는 결국 마음을 다잡고 정상적으로 살기 위해 혹은 인간적으로 변하기 위해 헬스장에서 피트를 끊어가며 운동을 했다. 처음엔 너무 죽을 것 같았다. 서로 15kg가 넘개 찐 상태였고 그 사실을 안 날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거 같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을 먹었다. 정말 한번 빼보자고, 운동을 한 첫날은 정말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트레이너 선생님이 혹독히 운동을 시켰다. 온몸이 흔들흔들거렸다. 그날 집에 와서 정말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던 거 같다. 또 식단관리에도 들어갔는데 나는 혼자 자취를 하는 터라 닭가슴살을 여러 개 사와 삶아 먹었고 동심이 누나는 할머니와 살아서 할머니께서 건강밥상을 누나에게 해줬다. 그렇게를 몇 주...
매일 계속되는 운동과 매일 식탁에는 방울토마토, 생오이 , 닭가슴살 같은 세상에서 맛없는 채식 식단을 위주로 먹던 우리는 몰골은 점점 더 피폐해져 갔다. 물론 몸에 있던 지방도 점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또 우리는 등교를 걸어서 하기로 마음 먹었었는데 , 그때 우리가 살던 아파트와 학교의 거리가 5킬로 정도였다. 그 거리를 우리는 한 번도 빼지 않고 걸어서 학교에 갔다.
(등굣길)
누나:야 치킨먹싶다
나:응 홀닭? 오광?(치킨집 이름임)
누나:뭘 가리냐 닭가슴살만 아니면 됐지
나: 우리 다이어트 끝나면 꼭 먹으러 가자...
항상 치킨에 목말라 있었던 우리는 등하굣길에 틈만 나면 치킨을 먹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곤 서로 유혹에 빠질 때마다 서로에게 독설을 작렬하면서 치킨에 대한 생각을 잠재웠다.
누나:야 너 지금 치킨 먹으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기게 된다.
나:응 누나한테 돼지 냄새나
누나:이 새끼가!!!!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아마 학기 말쯤 우리 둘은 엄청나게 날씬하진 모습으로 당시 베이징의 대학로 거리의 대표 치킨 맛집 오광 치킨에 당당히 입성했다.
나: 여기 간장이랑 양념 반반씩 주세요
누나: 야 개 맛있겠다 카카 카카
나: 여기 밥도 두 공기 주세요?
누나: 밥은 왜?
나: 원래 치킨은 차가운 밥이랑 먹어야 더 맛있잖아. 왜 그래 알면서
그렇다. 유학생들은 치킨에 밥을 자주 먹는다. 딱히 반찬이라 것이 없었기 때문에 자취생들이나 유학생들은 치킨에 밥을 자주 먹는다. 얼마나 맛있는지 아시려나? 나와 누나는 치킨이 나오자마자 서로 말도 없이 베어 물어먹었고 이내 인생 최대 오르가슴을 치킨에서 느끼게 되었다.
나:하..... 끝나 끝나 치킨....
누나: 난 남자 친구보다 치킨이 더 좋다
치킨을 한입 베어 먹는 순간. 천국이 다름이 없었다. 4달을 가까이 식단과 운동을 해서 15킬로가 훌쩍 넘게 살이 빠진 상태였고, 소금기 없는 음식을 먹다가 먹어서 그런지 오광 치킨의 맛은 정말로 천국에서 치킨을 먹는다면 그런 맛인 거 같았다.
그때 먹었던 양념 반 간장 반의 치킨 맛을 앞으로 살면서 또 느낄 수 있을까? 서로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면서 인생의 적이 치킨이라고 말하던 우리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허겁지겁 양념을 먹었다 간장을 먹다가 그래서 그런지 많이 먹지는 못했다. 아마 극단적인 식이 조절과 운동으로 우리는 위가 작아졌나 보다. 그래도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다이어트에 성공하다니...
2020년, 나의 대학교 학창 시절, 가장 나와 재미있고 스펙터클한 시간을 보냈던 그녀는 이제는 한 가정의 주부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그녀가 결혼하던 날, 오래된 불알친구가 떠나는 심정이 이렇게 아픈 건지 싶을 정도로 아쉬웠다. 왜냐하면 아직 더 같이 놀아도 될 텐데 하는 마음이 강해서 그런 거 같다.
우리의 몸무게는 여전히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그때 유지를 잘했어야 했지만 우리는 그때 다이어트 성공 이후 다이어트의 신이 됐다는 착각에 또다시 이성을 잃고 먹었고 지금도 먹고 있다.
하지만 요즘 우리 둘은 몸에 대한 다이어트보다 인생에 대한 다이어트를 하는 중이다. 서로 사회생활과 유학생활에 지친 우리는 주변 인물들에게 가끔 서운한 일들이 있다며 만나면 곧잘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자꾸만 받게 되는 상처 때문에 결국은 사랑하는 친구들만 남기자 라는 모토를 가지게 되었다. 예전 치킨을 끊고 맛있는 삼겹살을 끝었던 것처럼 한동안 나에게 상처가 되는 인물들을 끊고 살고 있다. 이 다이어트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주위 사람들이 적어진다는 것에 아직 둘 다 적응이 완벽하지는 않은듯하다. 그래도 우리 둘은 안다. 다이어트 혈맹으로 맺어진 우리의 우정은 앞으로 계속될 거라는 것을...
언젠간 우리의 미래에도 새로운 오광 치킨 같은 존재들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아직도 확실히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서로 살 뺀 뒤 서울에서 치킨 한 마리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