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쭌스토리 Feb 21. 2019

000. “미안.. 나는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아..”

prologue 프롤로그


"미안.. 나는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밥은 먹었어?'라는 가벼운 인사처럼, 몇 번인가 세계 일주를 떠나고 싶다고 말은 꺼냈지만, 정작 마주 앉아 얼마나 진지하게 여행을 가고 싶은지에 대한 대화를 한적은 없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제안에 그는 적지 않게 놀란 듯했다. 그러나 당황하지 않고 곧 침착한 목소리로,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뒤이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진심이 가득 묻어났다. 애처로운 눈빛이었지만,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있었다. 

그는 그 순간 어떠한 결의라도 한 것일까...



“대신, 네가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그거면 된 거다. 

어디에 있든, 함께 일 테니, 걱정할 필요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혼자'서 씩씩하게 길 위에 오르기로 했다.

2016년 9월의 어느 날이었다.

 


***

자. 이제 떠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 거지? 막연히 세계일주라는 꿈만 꿨는데,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꿈과 목표는 다른 것이라고. 목표는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만,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리기만 해도 행복하다는 말. 

이제 떠날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주어진 만큼, 목표로서 확실한 계획을 세우고 나아갈 때였다.

 

그러나, 늘 자유를 꿈꿔온 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조차 어떠한 틀에 메인다고 생각을 했다. 



마치 원래부터 길 위에 있었던 것처럼 떠나고 싶었다.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일련의 법칙들이 당시 나의 머리에는, 마음에는, 오히려 반항심을 부추겼다. 세상에 맞서리라는 독립투사의 거창한 그것은 아니었지만, 한 번뿐인 인생인데, 오롯이 선택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주체적인 결정을 하고 싶었다. 정말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가고 싶었다.



육로로 국경을 넘지 못하는 우리나라 지리 특성상, 비행기를 타거나, 배를 타야 하는데, 배를 타고 나라를 이동한 건 부산에서 후쿠오카 /대마도로 넘어간 게 다였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북쪽으로 가보자." 


러시아 동쪽 첩보영화의 행선지로 익숙한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페리가 동해항에서 출항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북한을 지나서 북쪽으로 간다고? 물론 땅을 밟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평생 가보지 못할 그곳을 지나쳐 간다는 것만으로도 무언가 대단한 곳을 가는 느낌이 들었다. 목적지가 정해지자, 모든 건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태어날 때부터 운명이 정해진 것 마냥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블라디보스토크행 편도 티켓이 손에 쥐어졌다.



왕복이 아닌, 그 뒤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편도 티켓 말이다. 

피 흘리게 될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에게 필요한 날이 잘 선 한 자루의 검처럼,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 꿈틀 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런 감정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게 언제였더라, 곰곰이 지난날을 돌이켜봤다. 그나마 비슷했던 것이 대입 수능을 치러 갈 때였나? 지금껏 살아온 것과 확연히 다른 환경과 상황에 처할게 분명했다. 

인생이 연극이라면, 이제 곧 내 인생의 2막이 오르려고 하는 찰나였다.







#유월 이야기는, 

2016.9.11일부터 2018.11.1일까지 약 2년 2개월 784일간의 세계일주를 다녀온 철들고 싶지 않은 어른이 '나'의 소설 같지만 실제 했던 이야기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쯤, 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잠들기 전, 나긋나긋한 문장들이 자장가가 되어,  나도 모르게 스르륵 꿈에 빠지게 되는 그런 편안한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한 편 한 편 에피소드를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 분들 감사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정답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