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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쭌스토리 Jan 07. 2020

007. 당신은 신이 보내준 천사로군요.

몽골. 울란바토르


‘아….’

고열로 인한 눈물이 용암처럼 뜨겁게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건장한 두 남자 직원이 아가씨의 양팔을 붙잡고 택시에 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야전병원 같은 현지 몽골 병원. 그곳에서 현지인 의사의 안내로 진료를 받고 간단히 피검사를 하는데도 도무지 고통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두컴컴한 벙커 베드 일층에서 누워있자니, 말도 통하지 않고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좀 전에 진통제 대신 먹은 감기약 때문인지, 잠깐 의식이 돌아오자 어둠 속에서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아가씨의 뇌를 지배했다. 


‘이 병실에서 오히려 다른 병이 생길 것 같아.’

‘피를 검사하다가 균이 옮으면 어쩌지?’

‘이 침대 시트는 언제 간 걸까. 아니 빨기는 하는 걸까?’

‘전에 여기에 누워있던 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낮에는 시장통처럼 붐비겠군.’


다시 돌아온 현지인 의사는 검사 결과, 괜찮다고 했다.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검사한 건지 알 수가 없어서(말이 하나도 통하지가 않았다), 잠시나마 고통이 사라진 지금, 호텔 직원들에게 돌아가자고 했다. 서둘러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로비에는 호텔 대표라는 몽골인 아저씨가 올라가려는 나를 붙잡고, 갑자기 전화기를 건네준다.

수화기 건너편, 서툴지만 상냥한 한국어가 들려온다.


“괜찮으세요?”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네.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어요.”

“걱정 말아요. 내일 아침 호텔 사장님이 한국인 의사가 있는 병원에 데려다줄 거예요. 그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믿을 수 있어요. 병원은 지금은 문을 열지 않아요. 조금만 참아요.”


“고마워요. 정말. 정말 고마워요.”


직원들의 부축을 받아 다시 호텔방에 올라와보니 침대 위보다 바닥이 더 따뜻해서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정녕 이게 다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인란 말인가. 러시아에서 몽골 울란바토르까지, 국경을 지나 나라를 이동하고, 버스를 타고 호텔을 찾고, 택시를 타고 병원에 실려가고, 다시 호텔방. 오늘 있었던 일들이 머나먼 지난 일처럼 느껴졌다. 

‘이게 다 무슨 일이람. 신은 결국 나를 살려주셨구나. 그런데…’


꼬르륵.

나는 그제야 오늘 한 끼도 먹지 못한 것을 알았다. 말라붙은 입술로 간신히 물 한모금을 삼켰다.


딩동.

문 뒤로 걱정스러운 호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손에는 여분의 이불이 들려 있었다. 


“바야를라.(고마워요.)"

오늘 얼마나 이 말을 많이 했는지, 호텔 직원이 건네 준 이불을 턱끝까지 당겨 눈을 붙였다. 그리고 다시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어 주문이나 되는 것처럼 되뇌었다. 


‘바야를라. 바야를라.’


다음 날 아침, 호텔 로비로 내려왔을 때, 어제 만난 호텔 대표라는 아저씨와 택시를 타고 몽골의 한 병원으로 향했다. 어젯밤의 야전병원? 보다 훨씬 정리된 큰 종합 병원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접수를 하고 안내받아 진료실에 들어가니 세상에 한국인 남자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어디가 불편한가요?”

“아.. 그게..”


나는 어디가 어떻게 언제부터 아프고, 지난 10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이야기했다. 의사 선생님은 배 여기저기를 눌러보시고, 몸 안에 결석이 있는 것 같고, 그걸로 인한 바이러스 염증으로, 오한이 오는 거라 말씀해 주셨다. 일단 결석을 빼내기 위해 수액을 맞기로 했고, 따로 결석 분쇄기가 없어서 그 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가야 하는데, 수액을 먼저 맞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하기로 했다. 병원까지 데려다준 호텔 아저씨에게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먼저 돌아가시길 양해를 구하고, 나는 누워서 수액을 맞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오한이 와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런 종류의 고통을 태어나서 처음 겪는거라, 언제 괜찮아질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불안했다. 지극히 외로웠다. 

따로 진통제를 먹고 수액을 한팩 더 맞으며 병원에 반나절 정도 누워 있으니, 열이 많이 내리고 몸이 가벼워진 걸 느꼈다. 


‘휴...이제 좀 살 것 같아. 살아나는 것 같아.’


느리게 눈꺼풀을 꿈뻑 움직이며 생각에 빠졌다. 아니. 이게 이렇게 쉽게 나을 병이었나. 의사 선생님의 약손 덕분인가. 나는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병원을 나섰다. 물론 허리를 90도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음은 두말할 것 도 없다. 다음날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에는 역시나 가정과 의사이신 사모님의 배려로 '진통제’와 ‘혈관을 넓혀주는 약’을 받았다. 이제부터 시작인 나의 여정에 혹시나 다시 결석이 재발할 경우를 대비해, 비상약으로 챙겨주신 것이다.


이렇게 몽골에서 의술을 펼치고 또 아픈 이들을 마음으로 감싸준 ‘진정한’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다. 거듭 의사선생님 내외분을 위해 신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 이 글을 쓰는 2020년 지금도, 몽골 연세친선병원 최 원규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일부러 저를 이리로 인도하신 건가요?
고통을 주시고, 또 고통을 사하게 할 천사들을 보내주시고,
제게 당신의 뜻을 이렇게 알려주시는 건가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제 할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제 일만 하고 사는 이들도 있고, 남들을 돕는 걸 제 일로 삼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어떤 그릇으로, 어떤 쓰임으로 이 세상을 살 것 인가. 


여행 10일 차에, 어쩜 이 여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그 해답을 찾아야겠다는 ‘목적’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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