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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 느낌 그대로 Jun 16. 2023

조카 생각 3 : 삼촌의 파티

아주 오래전부터 조카 서윤, 서준과 함께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었다. 바로 집 근처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 일이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김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겠지만 나에겐 언젠가는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일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면서 조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서윤이와 서준이가 아주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 하나 부족함 없이 뒷받침해 주는 누나와 매형, 집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초등학교와 유치원,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의 등하원을 책임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등. 이런 조카들을 보고 있자면 가끔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여기에 외삼촌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도 외삼촌이라는 존재는 시골이나 내려가야 볼 수 있을 얼굴들이었다. 지금도 외삼촌들과의 관계는 데면데면하다.


이런 이유로 내가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다. 부모와 조부모가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채워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과 나이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부모와 조부모보다는 가장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어른이다. 이런 점에서 내가 다른 어른들보다 아이들의 눈높이를 가장 잘 맞출 수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외삼촌은 말이 통하는 어른이다'하고 여겨줬으면 좋겠다. 이 생각을 실현할 계획의 일환으로 아이들과 맥도날드에 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떠올렸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서윤이와 서준이는 어렸을 때부터 인스턴트 식품을 입에 대지도 않고 자랐다. 누나의 철저한 교육의 일환이었다. 누나의 교육 방침을 고려해 볼 때,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맥도날드에 가는 건 절대 허가되지 않을 행동처럼 여겨졌다. 순전히 착각이었다.


내 계획이 당연히 실행에 옮겨지지 못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말이나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엄마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햄버거를 먹으러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아주 좋아하면서 좋은 생각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당황스러웠다. 누나의 교육 방침에 큰 영향을 끼친 게 엄마였으므로 맥도날드에 가려는 내 계획에 당연히 반대할 거라 생각했었다. 아마도 주 5일 동안 아이들 저녁밥을 챙겨주는 게 점점 힘에 부쳤었나 보다.


이제 누나 허락만 받으면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햄버거를 먹으러 가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누나도 그러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며 순순히 허락해 주었다. 역시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해서든 인스턴트 식품을 아이들이 먹지 못하게 하려던 엄마와 누나였다.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흔쾌히 허락을 받고도 어리둥절했다.


어쩌다 보니 가족 외식이 되어버렸다. 아빠도 그날 저녁에 일이 없으셔서 같이 가기로 했다. 다섯 명이서 햄버거를 먹으러 맥도날드에 가는 모습이 어쩐지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리하여 동네 중국집으로 장소를 바꿨는데, 장소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짜장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빠가 수업이 끝난 조카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기로 했다. 아이들을 기다리는 중에 엄마가 아침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아침에 아이들이 밥을 잘 먹지 않기에 "삼촌이 아침밥 잘 먹은 아이들만 데려오라고 했어. 아침밥 안 먹은 아이들은 초대 안 할 거래"했단다. 그러자 삼촌의 초대에 꼭 갈 거라며(?)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뭔가 이상했다. 내가 언제 아이들을 초대했지? 나는 아이들을 어딘가에 초대한 적이 없다는 걸 밝히고 싶었으나 삼촌의 초대로 밥을 다 먹었다고 하니 그냥 잠자코 있기로 했다.




앞에 앉아 있는 조카들을 보는데, 기분이 정말 묘했다. 서윤이와 서준이는 엄마아빠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는 아이들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외삼촌과 함께 낯선 장소로 외식을 하러 나온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싱글벙글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잠시라도 부모님과 떨어지는 게 무서웠는데, 요즘 아이들은 참 다르구나 싶었다. 아닌가? 서윤이와 서준이가 특이한 걸 수도.


"안 맵게 해 주세요."

쟁반 짜장 두 개와 탕수육 하나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가위를 들고 아이들이 먹기 좋게끔 짜장면과 탕수육을 잘랐다. 평소 면에 절대 가위를 대지 않는 나로서는 정말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또 앞접시에 비슷한 양을 담아주려 신경 써야 했다. 아이들은 '공평'에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누나 양이, 동생 양이 많으면 따져 물을 것이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그저 누워있기만 했던 아가들이 언제 이렇게 커서 스스로 밥을 먹는 걸까. 그 모습을 보며 엄마아빠가 어떻게 우리 넷을 키웠는지 생각하게 됐다.

"둘 키우기도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넷을 키웠어?"

"그땐 그냥 했어."

누나들과 나를 키우기 위해 애썼을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어땠을지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더니, 정말 그랬다. 아이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했다.


스피커에서 서윤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왔다. '아이브'의 '러브 다이브'였다. 서윤이가 방과 후 활동으로 춤을 배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윤이는 요즘도 춤을 배우고 있다며 한 번 배운 춤을 까먹지 않는다고 자랑했다.

"삼촌, 근데 남자아이들은 아이브 다른 노래가 나와도 '러브 다이브'밖에 몰라."

"응?"

"그래서 알려줬는 대도 잘 모르겠대."

그 이야기를 들은 외삼촌은 남자아이들의 비밀을 폭로하고 싶어졌다.

"서윤아, 근데 있잖아."

"응."

"이거 비밀인데. 사실 남자아이들, 아이브 노래 구분할 줄 알아."

"아닌데, 걔네들 잘 몰라."

"삼촌이 어렸을 때 얘기해 줄게. 삼촌 어렸을 때 인기가 많았던 만화 중에 '세일러문'이라는 만화가 있었어. 들어본 적 있어?"

"아니."

"삼촌도 누나들 따라서 그 만화 봤었거든? 근데 학교 가서는 세일러문 모르는 척했어."

그러자 서윤이 눈이 똥그래졌다.

"왜?"

"왜냐면 그걸 말하는 게 부끄러웠거든."

"그게 왜 부끄러워?"

"남자가 여자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만화를 본다고 말하는 게 부끄러웠어."

서윤이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니까 남자 친구들도 사실 아이브 노래 다 알고 있을걸?"

"그럼 걔네들한테 가서 왜 모르는 척하냐고 물어봐도 돼?"

"아니, 그러면 안 돼. 걔네들은 서윤이가 다 알고 있다고 말해도 계속 모르는 척할 거거든. 이건 남자애들의 비밀이니까 서윤이만 알고 있으면 돼."

서윤이는 알쏭달쏭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는 표시를 했다.


후식은 배스킨라빈스에서 먹기로 했다. 가는 길에 차가 많아 까불이 서준이의 손을 꼭 잡고 있어야 했다.

"삼촌, 손 좀 놔줘."

"안 돼. 가게에 도착할 때까지 손을 잡아야 하는 게 삼촌 파티의 규칙이야."

"알겠어."

삼촌 파티의 규칙이 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파티에 초대된 두 명의 손님에게 급조된 규칙을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예전에 손을 놓고 갔다가 전력질주해 버리는 서준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는 이동할 때 절대 서준이의 손을 놓지 않는다.


아이스크림 가게에 도착했다. 아이들의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4가지 맛을 고를 수 있는 쿼터로 주문했다. 여러 가지 아이스크림을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에게 맛을 두 가지씩 고르라고 말했다.

"서준아, 그거 말고. 그거는 누나가 골랐잖아."

역시 서준이는 막내답다. 뭔지 잘 모르겠으니 무조건 누나를 따라 하고 본다.

"삼촌, 나는 이거. 아오리 사과."

"?"

서준이가 가리키는 아이스크림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서준이가 고른 아이스크림은 '애플 민트'. 사과 모양이 그려진 사진을 보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아오리 사과를 떠올린 거였다.

"삼촌, 이거 치약 맛 나서 못 먹겠어."

"삼촌은 이 맛 좋아해."

"삼촌은 치약 맛 좋아해?"

"응? 으응..."


집으로 돌아와 오늘 얼마를 썼는지 확인해 봤다. 다섯 식구가 밥 먹고 후식까지 챙겨 먹으니 5만 원 돈이 나갔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 걸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이 올랐을 거라는 건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세상을 배우게 됐다. 부모님, 조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므로 후회는 없었다.


다음 파티는 꼭 맥도날드에서 해야겠다. 거기서라면 아이들과 좀 더 많은 비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삼촌의 파티를 기다린 것처럼 나도 다음번 삼촌의 파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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