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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처음 느낌 그대로 Dec 01. 2023

소설 세계의 허세

 지난 두 달간의 소설 강의가 끝났다. 약 8주간의 시간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가 되는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 걸로 보아 나름 열심히 학습에 임했던 것 같다. 첫 수업만 빼고 전부 소설을 써야 하는, 스파르타 식의 강의였다. 수업을 시작하면서 소설 이론을 조금 배우고, 수강생들이 써온 습작을 보며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식이다. 강사는 한 명이고, 수강생은 많다 보니 때로는 시간이 쫓기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선생님 의견을 들으러 온 것인데, 굳이 다른 수강생들의 이야기까지 들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한 명의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는 보통 2~3년의 습작 기간을 거쳐야 한다. 나는 고작 두 달했을 뿐이니 앞으로 갈 길이 아주 멀다.


 그런데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도 여럿 있었다. 우선 강사님...... 할 말이 많다. 나는 기억력이 나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간의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기억하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본이라 할 수 있다. 강사님은 "다음 주에 ~에 대해서 다뤄볼게요." 해놓고서 막상 다음 주가 되면 "그 강의 자료를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 나서 다음 주에 다룰게요." 하는 것이었다. 강사님의 머릿속에는 그 자료가 그다지 중요한 자료가 아니라는 인식이 있을지라도 본인이 그러겠다고 했으면 그 말을 지켜야 하는 게 미덕 아닌가.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내가 수업이 다 끝난 뒤에 어떤 질문을 했었다. 어떤 질문...... 나는 내가 무엇을 여쭤봤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면 강사님이 뒤에 한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강사님은 "○○ 씨가 책을 많이 안 읽어봐서......"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책 혹은 독서에 대해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지난 삶을 되돌아봤을 때 2016년부터 독서 모임에 참여해 왔다.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책을 읽은 건 아니다. 하지만 책을 늘 곁에 두려고는 했었다. 요즘 책이 읽는 사람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나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비약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강사님은 도대체 뭘 보고 내가 책을 많이 안 읽어봤다고 판단한 건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강사님을 보면서 이 사람이 아무리 날고 기는 소설가여도 한낱 인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소설가가 아무리 작품을 잘 쓰고, 잘 봐도 이런 식의 미리 사람을 재단해 버리고, 그 안에 가둬버리는 건 옳지 않다. 소설가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라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문춘예를 두고서 이런저런 말이 많다. 아마 이 말들의 출처 대부분은 신춘문예에 떨어진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문학 수업을 많이 들은 사람의 작품을 뽑아준다, 누구의 제자여서 그 작가가 당선된 것이다...... 이런 식이다. 신문사별로 연말에 딱 한 번, 딱 한 명만 뽑는 신춘문예 특성상 떨어진 사람들의 억울한 목소리가 더욱 강조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이 소설의 세계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모인 사람들의 '애씀'이다. 내가 수강했던 강좌는 소설 입문반이었다. 그렇다면 소설 심화반도 있을 것이고, 소설 합평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강좌의 수강 비용이 만만치 않다. 보통 한 강의는 2달 동안 진행되는데, 입문반은 약 30만 원, 심화반 이상은 약 60만 원 정도의 수강료가 든다. 자기 계발 활동으로 두 달에 30~6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쓰기가 사실 쉽지 않다. 또한 소설에 뜻이 있는 수강생들은 한두 번의 강좌 수강으로 끝내지 않는다. 일 년 내내 그런다...... 나는 그분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한 것이다. 나 또한 한 명의 글 쓰는 사람으로서 글을 향한 열정은 그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한다. 글을 쓰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일 년 내내 소설 강의를 수강한다구.......? 내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렇게 말해서 그분들께 불편한 감정을 줬다면 죄송하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바가 그렇다. 소설 습작생들이 원하는 것은 등단한 소설가가 내 작품을 보고 작품에 대한 의견을 듣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합당한 수강료를 내야 한다. 그러나 합평반 수업은 내가 쓴 습작을 대개 2번 정도 같이 읽는 데서 그친다. 여러 수강생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의문이 남는다. 아무래도 나는 전업 소설가가 되기엔 그른 것 같다. 글에 대한 열정은 이해하지만 굳이?라는 의문이 뒤따른다.


 지난 두 달의 시간 동안,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소설가이자 강사인 J의 속단과 허세가 불편했고, 이 세계에서 머무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소설 강의를 들을까 말까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일단 들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본격 소설가가 되지 못하더라도 소설 쓰기를 배운 사람들의 독서는 달라진다. 이른바 '고급 독자'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 내야 하는 기회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 또한 말하고 싶다. 진귀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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