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무비록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yein Oct 24. 2023

우리는 '진리에게' 빚이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 ‘진리에게’(2023) 리뷰

"내 안의 꾹꾹이와 미친년을 찾았다"


고(故) 설리(최진리)의 유작 다큐멘터리 영화 '진리에게'(감독 정윤석)가 지난 7일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됐다. 이날 상영은 티켓 오픈과 함께 전석 매진 되며 영화를 향한 관객의 관심을 실감케 했다.


잠깐의 암전. 영화 시작을 알리는 부산국제영화제 트레일러가 나온 뒤 설리의 생전 모습이 나타나자 객석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스크린 속 설리의 밝은 얼굴과 반대로 객석은 그리움, 미안함, 안타까움 등이 섞인 먹먹한 공기로 가득했다.

영화 ‘진리에게’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연출을 맡은 정윤석 감독은 설리의 여정을 동화 '도로시'에 비유해 전개한다. '도로시'는 설리가 세상을 떠나기 4개월 전인 2019년 6월 발매한 데뷔 14년만 솔로 앨범 수록곡이기도 하다. 질투, 사랑, 진리, 화려함, 비겁함, 사막, 빙산 등으로 도로시를 수식하며 사라진 꿈과 미래를 위한 기도를 이야기한다.


설리는 당시 '도로시'를 비롯해 '고블린', '온더문' 등 솔로 앨범 전곡 작사에 참여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그려냈다. 그는 "'도로시'는 꿈꾸는 나, '온더문'은 잠들기 전의 나, '고블린'은 현재의 나를 담아 여러분이 못 보셨던 ‘나’의 여러 부분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윤석 감독은 설리의 이야기 중 '꿈꾸는 설리'에 집중한다. 도로시가 토토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리며 설리의 생전 일기, 남겨진 자택, F(x) 그룹 및 개인 활동 모습 등을 더해 설리를 추모한다.

영화 ‘진리에게’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1시간 30분가량 이어지는 다큐멘터리의 메인은 설리의 생전 인터뷰다. 배우이자 아티스트로서의 설리와 스물다섯의 최진리가 그 시절 느꼈던 다양한 일상의 고민과 생각을 인터뷰 형식을 담아낸다.


자기소개로 인터뷰를 연 설리는 아이돌 생활의 고통, 예쁜 아이 콤플렉스, 페미니즘 선언, 노브라 논란, 관종(관심에 목매는 사람) 타이틀, 악플 선처 등 자신에게 쏟아졌던 부정적인 시선에 답한다. 스스로의 행위에 답하는 설리의 모습은 진중하고 당당하다. 답을 찾아 오랜 시간 고민할지언정 던져진 질문을 회피하는 일은 없다.


"(아이돌 활동을 하며)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너는 상품이야. 사람들에게 최상의 상품으로 존재해야 해'였어요."


하지만 "왜 악플을 선처했냐"는 질문에 결국 눈물을 쏟아낸다. 힘겹게 내놓은 답은 고소를 진행하며 상처가 더욱 커졌다는 것. 사과를 받는 과정조차도 상처로 다가왔다고 고백한다.

영화 ‘진리에게’ 스틸컷.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진리에게'는 한 여성의 죽음을 다루며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회적 죽음의 올바른 추모 방식을 이야기한다. 설리에게 향했던, 혹은 아직 만연한 혐오를 마주하고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이면에 경종을 울린다. 설리 개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이내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로 확대된다.


정윤석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GV)를 통해 "고인의 말씀은 여성 문제, 사회적 약자 문제, 평등 문제 등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는 말이 많다"며 "주인공 진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분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진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참된 진리(眞理) 자체를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유작 공개 이유를 설명했다.


설리의 죽음 이후 엔터테인먼트 산업 내에서는 깊은 반성이 있었다. 한 젊은이의 삶을 방치하고 고통을 방조한 죄를 통감했다. 언론은 무분별한 보도 방식을 되돌아봤다. 이와 더불어 더 이상 같은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었다.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지는 않았지만 그를 그리워하고, 미안함을 느끼고,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이들이 노력이 계속됐다.


현 사회는 설리에게 빚을 지고 있다. 설리뿐만 아니라 더이상 우리와 함께하지 못하는 젊은 아티스트, 이름도 알지 못하는 젊은이의 목숨이 사회를 지탱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변화하는 사회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진리에게’는 단순한 추모의 영역을 넘어선 영화다. 다큐멘터리 속 최진리는 스물다섯에 멈춰있다. 하지만 열다섯, 스물다섯, 서른다섯의 진리는 계속해서 살아간다. 살아가야만 한다. 이 사실을 마주한 관객은 영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진리에게'는 설리 주연의 단편 극영화 '4: 클린 아일랜드'(감독 황수아, 김지혜)와 함께 '페르소나: 설리'에 속하는 작품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한 후 올 하반기 정식 공개 예정이다.



*해당 리뷰는 2023년 10월 8일 발행된 기사를 일부 재편집한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톰 형 1000% 착즙 '미션 임파서블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