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아란 Mar 06. 2022

시댁에 한 달째 살고 있습니다

밀레니얼 며느리와 시어머니

2020년 3월 말에 쓰다가 만 아래글 <시댁에 한 달째 살고 있습니다>를 발견했다. 2020년이 벌써 재작년이라니...믿기지 않는구만. 2020년 3월부터 약 6개월 정도 우리 부부는 시댁에 살았다. 지금은 우리 둘 모두 대학원을 다니며 각자의 콘텐츠를 내보이고 있지만(나는 올해 책을 냈고, J는 미디어 아트 관련 연구, NFT art 제작 등을 한다) 그 때는 영락없는 백수였다. 사업자를 내고 일이 이제 들어오려고 하는데 코로나 시국이 되었고, 인구 밀도가 높은 서울이니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는 시부모님의 일을 돕기 위해 시골에 있는 시댁으로 내려갔고, 이 글은 그 때의 기록이다.



2019년 10월 남편과 영상 및 디자인 사업을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2020년 초, 나름 영상제작 건도 수주해서 이후 나비효과처럼 다음 일이 들어오길 기대했다. 하지만 일상을 파헤치고 들어온 코로나 바이러스는 들어올 것 같던 일마저 사라지게 했다. 코로나 사태도 장기화로 치닫자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던 중 시골에 있는 시댁으로부터 일을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시아버지의 일도 도와드릴 겸, 없는 살림에 생활비도 아낄 겸 차를 끌고 곧장 시댁으로 내려갔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있을 줄 몰랐다. '갔다가 언제 돌아올 지 몰라' 라며 짐을 싸던 J를 보고 갸우뚱했다. 중간중간 조금 여유있을 때 몇 일만이라도 집으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동상이몽을 꾼 채 서울을 출발한 지 한 달째, 집은 커녕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글을 쓰는 지금도 시댁이다. (이 때 이후 우리는 2주 간격으로 서울 신혼집으로 올라와 사흘간 우리만의 시간을 가지며 편히 쉬었다)


시댁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한 것: 미용


"어휴 저 머리를 어떡해"


식사를 하시던 시엄마가 숱 많고 덥수룩한 J의 머리를 보며 혀를 찼다. 그 때 J는 답답하다며 여기 한 웅큼, 저기 한 웅큼, 고무줄로 꽤 자란 머리를 우스꽝스럽게 묶고 있었다. 안그래도 사업장이 곧 집이자 집이 사업장어서 거의 집에서만 지냈는데, 코로나 때문에 바깥외출도 하지않는 바람에 미용실을 가지 않은 지 한참이 된 것이었다. 


보다못한 시엄마가 J의 머리를 잘라주겠다며 나섰고, 바가지 머리 되는 거 아니냐며 J는 시엄마의 손길을 한참 거부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나조차 시엄마 편을 들며 설득을 하자, 결국 J는 머리를 시엄마 손에 맡겼다.


어린 유승호가 "이만큼만 자르랬잖아ㅠㅠㅠ"하며 현실울음 터뜨리던 영화 '집으로'


J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수북이 쌓여갈 무렵, 깔끔한 모습의 J가 등장했다. 시엄마는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한다고 익히 들었지만, 미용 솜씨까지 일품일 줄이야. J의 미용시간이 끝나자, 시엄마는 내게도 머리를 자르겠냐고 물었다.


"너도 자를래?"

"네! 좋아요!"


우리 둘의 머리를 자르느라 내내 서 계셨던 시엄마의 다리는 아프셨겠지만, 지저분한 머리가 정리되서 마냥 기분이 좋았다. 시댁에 오자마자 이렇게 미용부터 하면서 시댁에서의 한 달 살기가 시작되었다.




시엄마는 J와 똑같은 자식으로 대하신다. J에게 베푼 호의는 똑같이 내게도 베푸시고, J와 나 둘 중에 편을 고르는 상황이 되면 일부로 더 내 편을 더 들어주신다. 저녁 메뉴를 정할 때 내가 된장찌개가 먹고 싶고 J가 제육덮밥을 먹고 싶다고 하면 내가 먹고 싶은 메뉴가 최종 선택이 된다. J가 5만원이라도 용돈을 받으면 내게도 같은 액수의 용돈을 주신다. 시엄마와 나, 여자끼리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는 J의 성격을 잘 안다며, 같이 사는 내가 제일 고생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베품과 대화 속에서 나는 시댁에 오랫동안 있어도 나 혼자 동떨어진 가족이라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는다.


결혼한 연차가 쌓이고, 그러면서 시부모님과 함께한 시간도 많아질 수록 시엄마에 대해 자랑하고 싶은 것이 한가득인데, 사실 이를 많이 글로 쓰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행복한 이야기를 쓰면 '그래 너 결혼 잘해서 좋겠다. 남편 잘 만나서 좋겠네.'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뭐 좋은 남편과 좋은 시부모님을 만난 건 인정하지만, 이를 글로 내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글을 쓰는 건 또 다른 차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에 썼던 글 <저는 기성세대가 정말 싫어요> 에도 썼듯 '레퍼런스가 되는 어른'을 기록으로 남기고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책도 그런 의미에서 출간을 했다. 밀레니얼을 대하는 시어머니는 어떠해야하는지, 지금의 어른도 몰라서 기존 관습을 반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다 풀어놓기엔 내 용기가 부족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고 갈아엎고 다시 썼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