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제가 그 어른이네요
여성이라서 겪게 되는 각종 차별, 비정규직 차별, 서울과 지방의 차이 등을 겪을 때, 이런 세상을 살아내야한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원망의 화살을 돌릴 곳은 기성세대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른들은 대체 뭘 했길래 고작 이런 세상밖에 우리에게 물려주지 못했나?
대학 졸업할 무렵 IMF가 터져서 그 어느 세대보다(세월호를 겪은 지금의 20대보다) 자신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주장하는 어른을 막상 직장생활 중에 만나보면, 취업도 했고 집도 있고 결혼해서 애도 있고 과장도 달았더라. 그런 어른을 만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속으로 원망하는 것이 다였다. 그리고 그 원망은 결혼식 전날 마지막 출근을 하는 것이 결정되었을 때 정점을 찍었다.
2022년 신간, 나의 첫 책 <우리가 알아서 잘 살겠습니다>에서도 적었지만, 퇴사 후 나는 몇 개월 간 밤에 통잠을 자지 못했다. 이유없이 새벽에 깼고, 다시 잠드는 대신 멍청한 나 자신을 탓하고, 이토록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 사회를 탓하며 헤어나올 수 없는 어둠 속으로 침잠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점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여느 날처럼 기성세대를 원망하던 날이었다.
'진짜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테야. 나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도록 노력할거야. 내가 어른이 되면......어? 근데 나 어른인데?'
머리를 갑자기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어른이라고? 아직도 아이 같고 갓 20대가 된 것 같았는데 성인이 된 지 한참된 삼십대였다. 어른을 욕하기만 했는데 나도 이제 어른이고, 어른으로서 본보기를 보여주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지금까지 내 나이 먹는 것만 알았는데,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책임을 자각하자, 갑자기 어깨가 묵직해져 왔다. 이제야 그 책임을 자각했으니 어른으로서 딱히 한 것도 없어 보였다. 내가 기성세대를 향해 날리던 원망과 욕은 나에게 돌아왔다.
'나는 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올해 책을 출간한 것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한 내 노력 중 하나다. 나는 이걸 '레퍼런스'라고 부르고 싶다. 다음 세대가 참고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 레퍼런스인 것이다. 이런 부부가 있을 수 있다고, 이런 결혼 생활도 있다고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것이 마땅히 어른된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J와 함께 페미니스트 부부로 살며 서로 동등한 관계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지지해나가는 모습을 나의 책에 담았다.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면서 어떻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한 분들에게 부디 나의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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