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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란 Jan 01. 2020

비정규직 교직원, 결혼식 전날 마지막 출근했습니다.

인생은 롤러코스터

2019년 한 해는 어느 때와 다르게 인생의 굵직한 순간들이 반기에 하나씩 자리잡은 해였다. 전기에는 살면서 가장 큰 결심 중 하나가 되는 결혼을 했고, 결혼식 전날 예상치 못하게 퇴사도 했다. 후기에는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공부했고, 공부가 끝나자마자 창업을 해서 몇 가지 일을 받아 완수하기도 했다.


인생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고 하는데 늘 계획한대로 인생은 흘러가지 않았다. 결혼 이후에도 내가 가장이 되어 가정을 책임질 계획이었지만 나의 성과와 상관없이 정규직 전환이라는 예외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사측의 의사에 따라 퇴사를 해야만 했었다. 그것도 결혼식 전날 마지막 출근, 결혼식 당일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라는 소설같은 상황으로 마무리했다.


딱히 하고 싶은게 없다며 시작했던 직장생활이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점점 지치자 어떤 일을 해도 이렇게 힘들 바에야 좋아하는 일을 하는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에 지쳐 이직 노래만 부르다가 결혼 한 달여를 앞두고 통보받은 해고. 다행스럽게도, 계란 한 판을 채운 시간은 이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결혼과 퇴사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갑작스런 변화였지만, 인생을 돌이켜보고 그동안 선택해보지 못한 것을 선택해보는 용기로 이어지기엔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었다.


어릴 때 가장 또렷한 기억 중 하나는 빈 노트에 만화를 그리고 줄노트에 글을 써서 친구들에게 보여줬던 내 모습이다. 인기가 많아 계속 연재를 이어갔고, 새로운 페이지가 추가될 때마다 친구들은 노트를 서로 돌려가며 감상했다. 재밌다며 다음 얘기를 기다리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기묘하게 역사적 내용을 한 두가지 섞어 판타지 모험의 스토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는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읽어주는 친구들을 보며 창작의 고통을 나름 보상받았다. 좋아하고 즐거웠지만 중학교 입학 이후 내 기억 어디선가 먼지 켜켜이 사이로 묵혀진 선택지가 되었다.



출발 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롤러코스터처럼,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지가 다시 돌아왔다.


어딜 가도 일이 힘들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퇴사 후 집에 덩그라니 남아 묵은 선택지를 그렇게 십몇년만에 떠올렸다. 출발 후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롤러코스터처럼, 선택하지 않았던 선택지가 다시 돌아왔다.


좋아하는 일을 다시 시작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디자인 툴을 배우고, 내친 김에 개인사업자까지 냈다. 그렇게 비정규직 근로자에서 사장으로 수직상승했다. 그동안 해왔던 업무에서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의 도전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큰 고민없이 일단 해보자는 생각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결단이었다.


마냥 쉬웠던 건 아니었다. 디자인 작업에 대한 스트레스보다는, 매달 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진 것보다는, 이걸 내가 계속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의 싸움을 계속 해야만 했다. 그래서 낮아질 자존감을 방어하기 위해 최근의 성취에 주목했다. 디자인 수업을 몇 차례 수료했던 것, 내가 해온 디자인 과제에 대한 평이 좋았던 것, 첫 매출을 찍은 것, 취미로 시작한 수영 실력이 부쩍 늘어난 것, 양재를 배워 몇 가지를 만들어 본 것. 작은 성취라도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떠올리며 내 자신을 지켰다.


그러던 중 2019년 연말, 대학원 진학이라는 새로운 도전목표를 설정했다. 디자인 전공자가 아닌 내가 지원할 수 있는 대학원을 찾아보고, 디자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연중무휴 롤러코스터.


연봉을 꽤 올려 이직한 곳에서 2년만에 계약종료된 후 새로운 구간을 오를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 인생 최악의 순간이 될 뻔 했을 것이다.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앞으로도 나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며 고군분투하겠지만, 퇴사 후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이 순간 나는 가파르게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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