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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란 Feb 02. 2020

신부대기실을 박차고 나온 신부

J와의 결혼식, 그 뒷이야기




벌써 1년 전 이야기다. 결혼식 전날, 마지막 출근을 했고 신혼여행 갈 짐도 쌌다.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새벽부터 메이크업샵을 가야해서 일찍 잠들려고 애썼던 것 같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여권을 집에 두고 와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꿈을 꾸다가 깼다.


메이크업샵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머리는 샴푸만 하고, 스킨 로션만 간단히 바르고, 옷을 갈아입기 좋게 단추가 달린 셔츠를 입었다. 비용을 조금 아끼기 위해 J는 카메라도 챙겼다. 샵에서 변신되는(?) 내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J가 촬영한 영상은 추후 본식 영상에 함께 담겼다.)


들떠서였을까, 아님 내가 결혼식 전날까지 출근할 정도로 바빠서 결혼식 준비에 큰 신경을 못 써서였을까. 나는 순진하게 헤어메이크업을 마치고 헬퍼 대표님을 기다렸다. (우리는 이모님이 아니라 대표님이라 불렀다. 엄연히 개인사업자 대표인데 왜 이분들은 편하게 '이모'로 불려야 하는가.)


플래너 대표님이 나를 보고 당연하듯 "헬퍼 대표님 만나셨죠?" 라고 물었고, 아니라는 내 대답에 이내 사색이 되었다. 헬퍼 대표님을 아직 못 만났다는 건, 샵에서 내가 고른 웨딩드레스가 픽업조차 되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그 당시 플래너 대표님은 드레스가 다른 신부에게 중복예약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했다고 한다.



웨딩드레스 못 입을 뻔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잠시 후 낯익은 얼굴이 내 드레스를 가지고 샵에 도착했다. 본식 드레스를 함께 고르던 드레스샵 원장님이었다. 드레스를 만든 분이 손수 입혀주시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웨딩드레스는 뒷부분이 코르셋처럼 되어있어서 운동화끈 묶듯이 당겨야 한다.) 끈이 하나도 꼬이지 않고 한 번에 피팅이 되어서 원장님이 놀라셨고, 잘 살겠네, 덕담도 해주셨다. 그 드레스는 내가 처음 개봉하는 거라고 하셔서 기분이 또 좋았다.


플래너 대표님과 드레스샵 원장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중간 과정은 잘 모르겠지만, 두 분 기지 발휘로 도착한 헬퍼 대표님은 무려 연예인 결혼식까지 담당해보신 경력많은 베테랑이셨다. 드레스샵 직원의 실수로 우리 결혼 일정이 헬퍼 대표님께 제대로 소통이 안되었다는데, 오히려 좋은 일들만 생겼다.



신랑과 함께 하객을 맞이하는 신부


예식장에 도착해서 잠시 신부대기실에서 가족들과 사진을 찍은 후, 연회장 입구로 곧장 향했다. 그리고 신랑과 함께 서서 하객을 맞이했다. 신부 대기실에 꽃처럼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신랑과 함께 서서 하객을 맞이하는 건 결혼준비 초기부터 나온 얘기였다. 양가 부모님은 다행히 우리가 하고 싶어하는 거라면 다 지지를 해주신 덕분에 어른들을 설득해야하는 일도 없었다.


처음에는 너무나 당연하듯 J에게 신부대기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J도 매우 동의했다. 하지만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힐을 신고 계속 서있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부모님들도 반대하시기보다 힘든데 괜찮겠냐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 잠시 흔들렸지만, J 덕분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신부대기실에 계속 앉아만 있는다면, 나중에 아이에게 우리 부부가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혼 준비 초기부터 J와 얘기가 되었기에 본식 드레스를 고를 때도 서서 인사할 것을 염두에 뒀다. 드레스샵 원장님도 흔쾌히 괜찮다고 하셨다. 결혼식 당일, 연회장 입구에 서서 인사만 하고 여기저기 쏘다닐 일이 없어서 드레스도 크게 상할 일이 없었다.


누군가는 불편한 드레스를 포기하지 못한 모습을 지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홀의 분위기에 맞는 드레스코드였다고 생각해서 큰 후회는 없다. 게다가 손수 만드는 드레스샵이었고, 드레스도 예뻤고, 내가 처음 입는 새 드레스였고, 하객들도 이렇게 예쁜 드레스는 처음본다며 칭찬했으니까 지금까지도 만족한다.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을 '대기실 박차고 나온 신부들'


신랑과 함께 하객을 맞이하는 문화는 더욱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혀가는 것 같다. 예비신랑신부 커뮤니티에서도 심심치않게 신부대기실 사용하지 않는 법에 대한 문의와 후기가 올라오고 있고 관련 기사도 최근 포털 메인에 게시되기도 했다.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웨딩원피스 홍보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실제 서서 하객을 맞이해보니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NO다. 사실 일하면서 힐 신고 잘만 뛰어다녔다. 키작남 J 덕분에 10cm이상 매우 높은 굽의 구두가 아니기도 했다. 한 8cm정도였던 것 같다. 무엇보다 남녀노소할 것 없이 대기실 대신 연회장 앞에 서있는 신부의 모습에 깜짝 놀라는 하객들의 반응이 꽤 볼만하다. (친한 친구들은 힘들게 왜 서있냐며 마음 아파하긴 했지만.)


신부대기실을 박차고 나오지 않으면 평생 구경할 수 없는 하객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면, 조금이라도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에 관심이 있다면, 신랑과 함께 서서 하객을 맞이하는 걸 강력히 추천한다. 고민이 되는 분들은 신랑도 마찬가지로 대기실 사진이 없다는 점도 잊지 마시길.


아, 마지막으로 헬퍼 대표님과 웨딩드레스가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걸로 컴플레인은 따로 하지 않았다. 직원의 실수에서, 사색이 된 플래너 대표님의 얼굴에서 내 모습이 겹쳐져서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가슴이 철렁하고 발을 동동 굴렸을까. 전화통화는 또 얼마나 했을까. 일이 오히려 더 잘 풀린 데에 안도하며 끝까지 도움 주셔서 감사했다. 좋은 일에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나쁜 일 같았던 그 일도 좋은 일이 될 수도 있으니 인생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내 인생 큰 경사 중 하나인 결혼식 날 배웠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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