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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 Dec 19. 2018

거북이의 책가방

유예하지 않음에 관한 다짐

지금껏 내 꿈은 골백번도 더 바뀌었지 싶다. 10대 시절에는 과장을 조금 보태어, 자고 일어나면 꿈이 달라졌다. 법원에서 연애하는 법정 드라마를 보면서 판검사를 꿈꿨고, 병원에서 연애하는 의학 드라마를 보면서는 의사를 꿈꿨다. 그중에서도 제법 오래 버텨낸 꿈은 치과의사였는데 당시 교정 치료를 받던 치과 대기실에서 치과의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두당 오백씩 잡으면 오백, 천, 천오백, 이천....... 대기실을 빽빽이 채운 치아 교정 환자들의 머릿수를 세며 그렇게 꿈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문과, 이과를 정하면서 치과의사의 꿈은 포기했다. 아무리 애써도 수학과 과학의 벽이 높았다. 하지만 내가 그 꿈을 끝까지 '꿔내지' 못한 까닭이 수학을 못해서, 과학을 못해서, 단지 그뿐 만은 아니었다. 꿈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꿈을 찾는 것, 꿈을 꾸는 것의 방법의 몰랐다.



걱정을 이고 지고 걷는 아이


1교시부터 4교시. 중식을 먹고 5교시부터 7교시. 청소 시간 이후 보충 수업 8, 9교시. 석식 먹고 자율학습, 자율학습이 끝나면 심화 자율학습. 고등학생에겐 익숙한 시간표다. 이 긴 하루 일과에는 수권의 교과서와 노트, 참고서와 문제집이 필요하다.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 '수권의 교과서와 노트, 참고서와 문제집' 전부를 매일 같이 책가방 속에 이고 지고 다녔다. 사물함에 두고 다니면 편할 텐데 절대 그러는 법이 없었다. 집에 가서 그 책들을 일일이 복습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하루에 한, 두 과목만 봐도 많이 보는 편이었다.


그 많은 책들을 담은 가방은 내 상반신 몸집만 했다. 가방 무게 때문에 상체가 자꾸만 앞으로 기울었다. 집채만 한 가방을 이고 지고 걷는 폼이 딱 거북 같아서 친구들이 '꼬북이'라고 놀렸다. 심지어는 가방이 무거워서 어깨에 속옷 줄을 따라 멍이 드는 일도 더러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기 학대가 아니었나 싶은, 미련한 행동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했다. 정작은 이 책 저 책 훑기만 하다가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 끝낼 거면서, 늘 그래 왔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꼬북이'의 책가방 무게는 그 아이 걱정의 무게, 딱 그만큼이었다.


배회하는 꿈, 유예하는 삶


'꼬북이' 시절과 책가방에 관해 이야기하는 까닭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 과목 진득하게 보지 못 하고, 이 과목 저 과목을 배회하며 보냈던 무수한 밤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어느 하나 결정짓지 못하고 이 꿈과 저 꿈을 배회하며 보낸 나의 20년. 상황이 달라졌고, 고민의 대상이 바뀌었을 뿐 나는 여전하다. 미뤄둔 꿈들을 짐 가방처럼 어깨 위에 이고 지고 하루를 걷는다.


그러는 사이, 삶의 많은 부분을 유예하며 살아왔다. 수능만 끝나면, 종강만 하면, 졸업만 하면, 취업만 하면....... 내 삶에는 자꾸만 조건부가 붙었다. 마감 기한에 맞춰 입사지원서를 쓰는 일, 필기시험 일자에 맞춰 문제집을 푸는 일, 불안한 마음으로 인터넷 취업 카페를 전전하는 일들에 밀려, 책을 읽는 일, 글을 쓰는 일, 마음 편히 여행을 떠나는 일은 저만치 밀려났다. 하루의 'To do list'에 감히 오르지도 못했다.



막 내딛는 걸음


얼마 전 일본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같이 여행이나 가자던 연인의 말에 "이번 공채 끝나고"라고 답하려다 멈췄다. 시간의 속도를 체감하며 벌써 20대의 절반을 살아 내고 있는 나는 더 이상 오늘을 유예하고 싶지 않았다. 항공권을 알아보고 그 자리에서 예매를 했다. 면접 일정이 겹치거나 계획한 자격증 공부를 하지 못할까 봐 망설였지만 결과적으로 여행을 가느라 못 간 면접은 없었고, 자격증 공부는 돌아와 여태까지 시작도 안 했다.


마침 아주 오래 유예된, 중요한 꿈이 떠올라 책상 앞에 앉는다. 노트북을 열고 깜박이는 커서를 본다. 조심스럽게 문장을 담는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던, 묵혀둔 꿈을 더듬는다. 살면서 처음으로 꿈에 관한 진심을 터놓았을 때, 사람들은 '밥 빌어먹기 딱 좋다고'라고 만류했다. 나중에 여유가 되면 그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제는 그 말에 잠시 귀를 닫으려 한다. 오늘은 써야 하는 글 말고 쓰고 싶은 글을 써야겠다. 꿈을 찾는 법, 꿈을 꾸는 법에 대한 실마리가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유예하지 않는 것, 그 속에 있으리라 믿는다. 삶의 낯선 길목에서 막 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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